제목: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8-31절
설교자: 조정의
고린도 교회 가운데 있었던 분쟁의 양상은 표면적으로는 그들의 일꾼 중심으로 파벌이 나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분쟁을 일으킨 본질적인 원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보다 다른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그것이 세상의 지혜라는 것을 발견한다. 고린도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지혜보다 세상의 지혜를 자랑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메시지보다 세상에 속한 자랑거리를 귀하게 여겼다.
교회는 오직 복음으로 견고하게 세워진다(마 16:18). 그런데 교회를 함께 지어가야 할 성도들이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들이 세운 교회는 절대로 건강할 수 없다. 교회 규모가 크고 재정이 넘치고 체계적인 양육과 행정 및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더라도, 금세 무너져 내릴 만큼 연약하고 부실한 상태가 된다. 교회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보화가 감춰진 밭을 산 사람들의 모임이다(마 13:44). 모든 소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가족), 심지어 자기 자신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이 바로 성도다(마 10:37-8). 본문을 통하여 혹시 우리가 그리스도 외에 자랑하는 것이 있지 않은지 철저히 진단하자.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하여 교회를 견고히 함께 지어가자.
1. 분쟁의 원인: 세상의 지혜
바울은 정확하게 고린도 교회 성도가 그리스도 외에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꼬집어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충분히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다. 지혜13를 굉장히 많이 언급하고, 또 그 지혜를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로 나눠서 대립 관계로 설명하기 때문이다(24-5절). 고린도 교회 성도 중 일부가 세상의 지혜를 중요하게 여기고 자랑으로 삼았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리스 철학과 웅변에 탁월한 아볼로를 추종하게 만든 원인이었을 것이다. 단지 지혜만 추종했던 게 아니다. 바울은 그들의 출신을 돌아보게 하는데,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은 그들의 현주소를 들춰냈다(26절). 이는 그들이 세상의 지혜를 동경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높이 평가받는 지혜와 부와 학식 쌓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사실을 가정한다.
세상에서 그들은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 없는 것들이었다(28절). 그리스보나 스데바나처럼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나 부를 누린 사람도 있었지만, 고린도 성도 대부분은 세상에서 자랑할 만한 지혜나 재물, 학벌, 혈통이 없어서 멸시받는 자들이었다. 한편, 바울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에 베냐민 지파였다. 자랑할 만한 혈통이었다(빌 3:5). 그는 바리새인으로 당시 최고 랍비였던 가말리엘에게 엄한 율법 교육을 받았다(행 22:3). 세상에 내놓을만한 신분과 학벌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자랑하고 신뢰할 만한 것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겠다고 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좋다고 했다. 그리스도 예수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빌 3:8). 고린도 교회 성도도 마땅히 그래야 했다.
고린도 교회 가운데 있던 분쟁의 원인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교회가 계속해서 쫓아내야 하는 방해물이다(요일 2:15). 세상과 벗 된 것은 명백히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인데, 교회는 하나님께 속했다고 밤낮 고백하면서도 은근히, 때론 노골적으로 세상의 것을 가까이하려 한다(약 4:4).
재물에 따라 성도를 차별한다(약 2:3). 돈으로 직분을 산다. 부자가 교회의 모든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형제자매’라는 호칭 외에 ‘박사’, ‘회장’, ‘사장’, ‘검사’, ‘변호사’, 판사’, ‘원장’이라는 호칭을, 특정인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다. 최종 학력이 중요하다. 유명한 학교, 직장 간판을 내세운다. 교회에서 일꾼을 세울 때, 세상의 지위, 학벌, 재물을 따진다. 성도 간 교제의 손을 내밀 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기준이 세워져 있다. 수준에 맞는 사람, 더 나은 사람과 가까이하려고 하고, 나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성도는 알게 모르게 무시한다. 우리는 이런 공동체를 교회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세상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세상 지혜를 비롯한 세상의 것을 자랑하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바울은 분명히 그들 가운데 피어오르는 분쟁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냄새를 맡았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측면에서 강력한 처방을 내린다. 1) 십자가 복음메시지, 2) 하나님 구원사역. 첫째, 십자가 복음은 세상 지혜를 미련하게 만든다. 둘째, 하나님은 세상이 미련하게 여기는 자를 구원하셔서, 오직 주님만 자랑하게 하신다. 그리고 따라오는 결론은 31절 그러므로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이다. 그리스도인이 왜 십자가 복음만 자랑하고, 그리스도만 자랑해야 하는지 바울의 논증에 귀를 기울여 보자.
2. 분쟁의 처방: 하나님의 지혜
1) 십자가 복음: 세상 지혜를 미련하게 한다(18-25절)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를 통하여 전도된 구원의 메시지를 가리킨다(18절). 23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의 내용을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신이 사람을 그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메시지는 세상의 지혜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바울은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다(18절).
바울은 세상에 속한 자들, 그래서 멸망이 곧 그들의 종착지인 자들을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나눠 왜 그들이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설명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22절). 둘 다 자기의 기준을 만족시켜야 믿을 수 있다. 자기를 납득시키는 기적을 베풀거나, 고상한 지혜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다. 어떻게 원수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속량할 메시아가 원수의 사형 틀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죽을 수 있는가? 유대인에게 거리끼는 것이다(23절). 너무 수치스러워서 시민권자에게는 부여하지도 않는 십자가 형벌을 어떻게 범접할 수 없는 신중의 신이 받을 수 있는가? 이방인에게도 미련한 것이다(23절).
바울은 단지 세상의 지혜로 십자가 복음을 보면 미련해 보인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십자가 복음을 세상의 지혜로는 알지 못하게 막으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도다”(21절). 하나님은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미련하게 여기는 전도(메시지)를 통해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예수님은 같은 의미로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바울 또한 성경을 통해 이것을 확신했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19절, 사 29:14).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포위될 것이나 그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알리시면서,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믿기보다 애굽을 이용하여 살길을 모색하는 자, 곧 자기 지혜와 총명을 의지하는 자들은 결국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이 세대의 지혜 있는 자, 선비(율법 교사), 변론가(논쟁가)가 자랑하는 지혜는 모두 헛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기 때문이다(20절). 이 세상 지혜로는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복음은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믿는 자들, 구원을 받는 우리)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24절). 그러므로 사람의 지혜와 강함을 자랑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어리석어 보이고 약해 보여도 명백히 하나님의 지혜가 이 세상의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강하기 때문이다(25절). 그래서 십자가 복음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절대 세상 지혜를 자랑하지 않는다.
2) 하나님 구원: 오직 주님만 자랑하게 한다(26-31절)
바울은 두 번째 논증으로 앞선 논증의 실례를 제시한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26절). ‘하나님께서 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자를 미련하게 하신다는 증거가 바로 너희 아니냐?’라고 묻는 것 같다. 그들을 면박주려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누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지 그들의 사례로 입증하려는 것이다.
27-28절까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세 번 반복하여 강조된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셔서 있는 것들을 폐하신다. 뒤에 들어가는 말을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 자들’,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는 자들’, ‘스스로 있다고 자랑하는 자들’로 바꾸면 뜻이 더 정확하게 전달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육체를 신뢰하는 자, 육체에 속한 무언가를 자랑하는 자를 의도적으로 버리셔서 종말에 그들이 의지하고 자랑하는 모든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하신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아무 짝에 쓸모 없다는 것이다. 택함받은 자들 또한 자랑할 것이 없다. 내세울 것이 있어서 택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택하신 것이기 때문이다(사실 대부분 세상 기준으로 볼 때도 별볼일없다). 결국 하나님이 이렇게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29절). 신자가 자랑할 분은 오직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왜 그런가?
모두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이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30절). 하나님이 하신 일로 인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다. 믿는 우리가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지혜, 의로움, 거룩함, 구원함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외에 자랑할 것은 없다.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영생을 위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지혜는 오직 이것뿐이다. 그래서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그러므로 결론은 분명하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31절, 렘 9:23-24). 우리가 세상의 것을 자랑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의 학벌, 재물, 사회적 위치, 명예, 신분을 생각해 보라.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사 53:2). 그러나 그분은 모든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계 5:12). 세상 지혜로 볼 때, 그리스도는 자랑할 것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볼 때,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자랑이 되신다.
3. 적용: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그러면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명령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먼저, 오해하지 말자. 지혜, 부, 힘 모두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폄훼할 대상은 아니다. 주신 분께 감사하며 성실하게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면 아름다운 것인데, 그 자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 배후에 있는 잘못된 믿음은 결코 주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에서 발견된다.
반대로, 주님과 상관 없이 세상이 내세우는 것들을 교회에서 그대로 내세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고린도 교회 가운데 있던 분쟁의 불씨를 우리 가운데 두지 말자. 가문, 출신, 지역, 학벌, 언변, 외모, 나이, 성별, 사회적 신분, 지위, 재물 등은 교회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받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성도를 사랑으로 섬기는 데 사용할 뿐이다. 우리 모두가 힘껏 자랑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셋째, 참으로 세상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귀하게 여기라. 당신은 정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한 것으로 여기는가? 당신의 자녀에게 세상에서 학식을 쌓고 많은 재물을 얻는 직장을 얻는 것보다 십자가 복음을 아는 지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는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자녀에게 무엇을 더 많이 말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점검해 보라. 결국엔 우리를 멸하고 폐하게 하여 실망시킬 세상 지혜가 아니라 영생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부지런히 배우고 또 가르치라.
교회가 함께 건강하게 지어져 가려면, 반드시 같은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잃어도 좋다고 고백하는 교회가 되자. 주께서 그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