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잊혀진 명령, ‘내 증인이 되라’

본문 :  사도행전 1장~ 12장

설교자 : 조정의

사도행전 강해를 다시 시작하면서, 어느 때보다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간의 차이가 이처럼 크게 느껴진 적이 없다. 목숨을 염려하여 모이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 가운데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증거했던 초대 교회 성도들의 삶을 다룬다는 것, 너무 이질적인 이야기 같다. 나 하나 혹은 우리 가족 하나 챙기기 버거운 현실 가운데 자기 것을 내어놓으며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으로 세상의 칭송을 받았던 성도들을 만난다는 것,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해서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초대교회가 믿는 예수님과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같다. 초대교회가 받은 성령과 우리가 받은 성령도 같다. 그들이 붙잡은 복음과 우리가 붙잡은 복음이 같다. 그들과 우리의 사명이 다른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왜 이렇게 차이가 느껴질까? 그들은 사명을 잊지 않고 목숨을 걸고 충성했고, 우리는 그 사명을 어쩌면 잊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강해를 하는 동안 주께서 우리가 받은 사명을 확실히 알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길 기도한다. 그래서 새로운 성도를 만나는 것도 감사하지만, 새로운 영적 가족이 태어나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한다. 가족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나아가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민족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충성하기 원한다.

1. 주님 주신 사명은 무엇인가?(使命: 사자로서 받은 명령)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그분의 첫 사자들(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명령을 주셨다(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내 증인이 되리라”는 것이 명령의 핵심인데, 누가가 평서형으로 쓴 이 문장을 마태는 명령형으로 기록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예수님의 제자로서 계속해서 제자로 삼는 것, 그래서 예수님 증거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얻은 새로운 증인이 그 일을 이어서 하게끔 훈련하는 것이다(가르쳐 지키게 하라). 제자를 낳는 제자. 증인을 낳는 증인.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증인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사명의 바통을 이어받은 상태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이 사명을 ‘지상대명령’, ‘대위임령’이라 부른다. 이 땅에서 가장 큰, 우리에게 위임된 명령이기 때문이다.

2. 초대교회는 어떻게 사명에 순종했나?

사명을 위해 사도를 충원하다(1장):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다락방으로 돌아온 초대교회 성도는 대략 120명이었는데(1:15),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열두 사도 중 배신자 유다의 자리를 채울 사도를 택하는 것이었다. 기도 후에 그들은 맛디아를 사도의 수에 추가했다(행 1:15-26). 왜?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행 1:22). 사명을 위해서다.

사명을 위해 성령 충만을 받다(2장):

며칠 후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다. 교회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고,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권능을 받아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전했는가? 복음이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2:38). ‘내 증인이 돼라’는 사명에 순종했다. 그 결과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다(행 2:41).

제자화: 교회는 더해진 성도를 제자로 훈련했다. 사도의 가르침, 교제, 떡을 떼는 것(성찬), 기도하기를 힘썼는데, 이를 통해 제자화 곧 예수님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한 것이다(행 2:42).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나타내는 사랑을 실천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는 진실한 사랑을 통해 세상으로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했다(행 2:42-47; 요 13:35). 이 일로 온 백성이 교회를 칭송하고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졌다(행 2:47). 사명을 위해서 많은 교인, 좋은 프로그램이 필요한 게 아니다. 참 제자가 필요하다.

사명 때문에 박해를 받다(3-4장):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쳤고, 그 표적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하지만 그 일로 박해를 받았는데, 예수님이 심문당한 공회 앞에 서게 되었다.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 및 예수님을 부당하게 사형 판결 내린 원수들이 그대로 모인 자리에서 사도들은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언했다. 다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위협했지만, 사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담대히 맞섰다(행 4:19-20). 죽어도 사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교회는 이 일로 더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렸다. 그 결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예수님 사랑을 나타내는 성도 사랑도 뜨겁게 실천했다(4:32-37).

사명을 안팎의 문제가 방해하다(5장):

안:

교회의 내부에 성령을 속이려는 범죄가 일어났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의 죄를 심판하시고 누룩을 제거하여 계속해서 예수님 증거하는 일에 막힘이 없게 하셨다(행 5:1-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5:11). 제자가 된다는 건 절대로 가벼운 일이 아니다. 교회가 증언하는 예수님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밖:

성령님은 사도들의 손을 통해 계속해서 표적을 나타내셨고, 이를 통해 사도들은 예수님을 증거했다(행 5:12-16). 대제사장과 사두개인 당파는 시기심에 불타올라 그들을 옥에 가뒀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다시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자(5:20), 이튿날 또 그들을 잡아 공회에 세웠다(행 5:17-27). 이번엔 위협으로 그치지 않고 채찍질을 했는데, 사도들이 어떻게 반응했는가? 예수님을 위해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며 날마다 성전, 집 가릴 것 없이 예수님을 가르치고 전도했다(행 5:41-42). 사명을 감당하며 매 맞는 일을 오히려 특권으로 여겼다. 그만큼 사명에 사로잡혀 있었다.

안(6장):

교회를 갈라놓을 만한 큰 문제가 생겼다. 유대인과 헬라인 과부 중 헬라인 과부가 구제에 빠진 것이다. 교회를 갈라놓을 만한 원망이 생겨났을 때 교회는 대사명을 뒤로 미루지 않았다. 성령 충만한 일꾼을 세워 그 일을 감당하게 하고, 계속해서 사도들을 중심으로 말씀과 기도 곧 예수를 증언하는 핵심 사역에 힘을 쏟았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6:4). 그 결과 하나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행 6:7).

밖(행 7장):

스데반이 예수를 증언하다 잡혔고 공회 앞에서 돌에 맞아 죽고 말았다. 하지만 스데반은 이 기회를 통해 구약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증언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설교 중 가장 강력한 설교였다. 또한 스데반은 죽는 모습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증언했다(59-60절). 그는 그가 증언한 예수님의 영광을 죽기 전에 보았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음도 유익하니라(바울). 스데반이 먼저 그런 삶을 살았고 그런 죽음을 택했다.

사명이 확장되다(행 8장):

스데반의 순교로 본격적인 핍박이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닥쳤다. 사도들 외에는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 곳곳으로 흩어졌는데, 오히려 예수님 말씀대로 복음이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유대와 사마리아에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흩어진 성도들이 숨어지낸 것이 아니라 흩어진 곳곳에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8:4). 대표적인 인물로 빌립이 등장한다. 교회는 핍박으로 삶의 터전과 안녕을 포기해도 사명은 포기 안 했다.

원수를 사명자로 삼으시다(행 9장):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한 주범은 사울이다. 그는 흩어진 성도까지 모두 잡아 교회를 완전히 잔멸하기 원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허락 하에 다메섹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은 아나니아에게 바울을 가리켜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라고 말씀하셨다(행 9:15). 주님은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은 그렇게 예수를 증언하는 사명자로 바꾸셨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 사명자가 세워졌다.

사명이 땅끝까지 확장되다(행 10-12장):

교회가 예수를 증언하는 일, 제자를 삼는 일에 이토록 헌신했지만, 그들의 고정관념 때문에 소외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이방인이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이방인의 구원은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성령님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 그리고 베드로에게 각각 말씀하시고 이방인들이 예수를 영접할 때 오순절과 똑같은 권능을 베푸심으로 베드로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렇게 고백하게 하셨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행 11:18). 이제 사명은 이방인까지 확장되었다. 모든 민족에게 열린 것이다.

복음은 민족적으로 모두에게 열렸지만, 지역적으로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에만 선포됐다. 이제 누군가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되어야 했다. 성령님은 이제 그 일을 행할 사자들을 세우실 것이었고(13장), 그 전에 그들을 파송할 교회를 안디옥에 세우셨다(11장 19-30). 안디옥 교회는 주님이 세우실 일꾼들인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섬기는 교회였다(행 11:26).

12장과 13장을 연결하는 마지막 지점에 흥미로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큰 역할을 감당했던 야고보가 순교했다(행 12:2), 베드로도 거의 죽을 뻔했다가 주의 사자가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옥에서 빠져나왔고 무대에서 사라진다(행 12:5-19). 핵심 인물이 베드로에서 바울로 전환되는 것이다. 사명이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에서 모든 민족에게로 전달된다. 

12장 마지막엔 헤롯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다.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한 장본인이다. 그는 하나님 영광을 가로막고 교만하게 자기를 높이는 범죄의 대가로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행 12:20-25). 그리고 이제 13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민족에게 나타낼 이들, 예수를 증언할 이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선포할 증인들이 세워질 차례다.

3. 우리는 어떻게 사명에 순종할까?

사도행전 1-12장 기록을 보면서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사명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초대 교회는 사명에 충성했다. 일상을 포기했다는 말이 아니다. 사도들이 말씀 사역과 기도에 헌신했고, 성도들도 일상을 살면서 사명을 잊지 않았다. 교회 안팎의 문제가 일어나도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명을 감당하느라 당하는 고난을 오히려 특권으로 여기고 기뻐했다. 흩어지면 흩어진 곳에서 사명을 감당했다. 가르침과 교제와 예배와 기도, 섬김에 오로지 힘쓰는 참 제자가 되어 교회가 함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에 똘똘 뭉쳤다. 이제 우리 차례다. 우리는 어떻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떻게 충성할 수 있을까?

먼저 예외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구원받은 자는 사명자다. 성경엔 구원받은 목적을 여러 가지로 밝히는데,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딛 2:14),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롬 8:29),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엡 2:7),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벧전 2:9), 모두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면 선하신 주님이 증거된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으면 아들의 형상을 세상이 본다. 풍성한 은혜를 나타내면 은혜의 주님이 선포된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할 때 주인공은 단연 아름다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원받은 사람은 사명을 위하여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성경은 직장인에게 “주께 하듯” 일하라고 한다(엡 6:7). 그러면 주님이 증거된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으라고 명령한다. 십자가에서 악을 선으로 바꾸신 예수님이 나타나도록.

성경은 부모에게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명한다(엡 6:4). 주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다(제자화). 자녀 양육은 확실히 대위임령의 일환이다. 

남편이 아내를 주가 교회를 사랑하듯 사랑하는 것, 아내가 남편을 교회가 주께 하듯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 그럴 때 누가 증거되겠는가? 예수님이다(엡 5:22-33). 부부생활도 대위임령의 일환이다.

성도를 사랑하되 주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뜨겁게 끝까지 오래 참고 온유하고 이타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이 우리를 누구의 제자로 알아보는가? 주님의 제자다(요 13:35). 성도 사랑도 대위임령의 일환이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다 ‘내 증인이 돼라’는 예수님의 사명과 직결되어 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아들을 통해 나타나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전 10:31). 그러므로 사명을 잊으면 우리는 일상의 목적을 잃는 것이다. 주님 앞에서 결산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청지기는 맡겨진 임무를 땅에 묻고 살 수 없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세우라. 사명을 붙들고 죽도록 충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