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본문 : 로마서 15장 22-33절
설교자 : 이병권
여러분은 여행을 좋아하십니까? 이런 여행은 어떤지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여행은 총 세 곳을 방문하는데 최종 목적지까지 두 곳의 경유지를 지나게 됩니다. 첫 번째 경유지로 가는 여행길은 1300킬로미터 정도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 비교하면 대략적으로 한반도, 남한과 북한의 두 끝까지의 거리보다 더 먼 거리입니다. 두 번째 경유지로 가는 길은 그 두 배입니다. 한반도를 왕복하는 거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목적지는 다시 한반도 거리 정도 됩니다. 그래서 총 여행 거리로 따지면 한반도를 두 번 왕복하는 것보다 더 먼 거리입니다.
어떤 여행인지 감이 오시나요? 그만큼 먼 거리를 가야한다는 것이고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만큼 고생하는 여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거리는 모두 배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입니다. 육지로 이동하는 거리까지 한다면 여행은 더 길어질 것이고 무엇보다 이 여행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여행입니다.
이 여행의 특징을 한 가지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함’ 이 여행에서 확실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미리 교통수단을 예매를 하고 미리 숙소를 정하고 식당을 알아보고 미리 준비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여행이 이러하다면 여러분은 그에게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렇게까지 고생할 필요가 있냐고 그런 여행은 하지 말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고생이 훤히 보일뿐만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은 이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을 하는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말하는 여러 비유들이 있는데 여행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의 여행 계획과 여행의 목적을 알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여행은 비유가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서 여행은 곧 그의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바울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바울은 어떤 대답을 할까요? 아마도 지난주에 살펴봤던 대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은혜를 주셨기에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기에 그는 이 여행을 생각했고 이제 떠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이 곧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에 충성하는 일이기에 뻔히 예상되는 어려움과 고생과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나 자신에게 질문해봅니다. 나는 이런 여행을 떠날 수 있는지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여행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함께 하시겠습니까? 바울과 동행하시겠습니까? 우리도 바울처럼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전하며 주님을 위해 삽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며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바울과 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은 바울과 똑같은 사명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울과 같이 여행이 곧 나의 인생이 되어야 하고 사명에 충성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에서 우리에게 사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같지만 그 사명을 이루는 과정이나 방법은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행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각자에게 주어진 개인 여행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인생은 개인 여행이면서 또한 함께 하는 단체 여행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여행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여행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바울 곁에서 직접 그 여행에 동행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소수입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한 없이 모두가 바울의 여행에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방법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바울이 계획한 여행을 살펴보고 그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바울의 여행 계획입니다.
롬 15: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롬 15: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바울은 그동안 여러 번 로마로 가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일이 막혔습니다. 로마로 가려고 했는데 바울의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고”(롬1:11) 말했었습니다. 바울은 여러 해 동안 로마에 오기를 원했지만 그 바람은 번번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에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를 통해 로마에도 복음이 전해졌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에게 있어서 로마 방문은 우선순위의 일이 되었습니다. 사명에 충성하기 위해 해야 하는 우선적인 일이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복음을 전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들이 있고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은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미 세워진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바울은 주요 도시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에 지금의 상황에서 다음 목표가 분명해졌습니다. 다음 목표는 서바나(지금의 스페인 지역)입니다. 바울은 이제 서바나 지역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로마를 거쳐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롬 15: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바울에게 있어서 로마는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입니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로마 교회가 서바나 선교의 거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동참해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로마 교회가 바울의 여행에 함께 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직접 같이 여행할 수는 없지만 바울을 보내줌으로써 함께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서바나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할 때, 보내다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가 그러합니다. 음식, 돈, 동행 및 여행 수단을 준비함으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경에는 후원이나 도움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으로 파송한다는 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파송한다는 것은 ‘난 모른다 알아서 해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방법으로 그 사역을 함께 하며 그를 돕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서바나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해줄 것을, 그 여행에 동참할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여행에 동참하는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서바나로 가기 위해 로마를 방문하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먼저 예루살렘을 방문해야 합니다.
롬 15: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바울은 현재시제를 씁니다. “예루살렘에 가노니” 바울의 출발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여행이 이미 시작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잠시 바울의 여행을 정리하면 바울의 목적지는 서바나입니다. 서바나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로마를 방문할 것이고, 로마 교회가 이 일에 동참할 것을 바랍니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가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지금 바울이 있는 곳은 고린도입니다. 고린도에서 서쪽으로 이동해서 로마에 가고 그리고 다시 서쪽으로 더 이동해서 서바나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여행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반대 방향인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고린도에서 서바나까지 가는 것보다 더 먼 거리를 다녀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만큼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26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롬 15: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바울이 먼저 예루살렘에 가야했던 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함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교회가 즐거움으로 그들을 위해 연보하였습니다.
여기 “연보”로 번역된 단어가 ‘코이노니아’입니다. 사귐, 교제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성도를 섬기기 위한 헌금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합니다. 지금처럼 계좌로 보낼 수 있는 때가 아니기에 직접 전달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여행에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 “연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연보, 물질을 드림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연보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롬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연보, 물질을 드리는 일은 모순처럼 보이는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발적인 면이고 다른 하나는 의무적인 면입니다. 다시 말하면, 연보는 자발적이며 또한 의무적입니다.
26절과 27절에 특별히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기쁘게”, “기뻐서”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같은 단어입니다.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자원함으로 기쁨으로 물질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연보를 드리는 교회에 대해서 “빚진 자”로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로서 허락하신 물질을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의무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이고 성도를 섬기는 일입니다.
서로 반대되는 것 같지만, 이 두 가지가 연보에 있어서 동시에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아내에 대해서 남편으로서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며 아내를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그것이 남편으로서 마땅한 의무이고 아내를 섬기며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의무감으로만 하지 않습니다. 부부라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아내를 사랑함으로 아내를 기쁘게 하고 싶어서 섬기는 일을 합니다. 단순히 하기 싫고 피하고만 싶은 의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보도 그러합니다. 연보는 자원함으로 드리고 책임감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물질을 드림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여행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누군가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에, 우리도 그 일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위한 일에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전하는 일에 우리가 내가 가진 물질로써 그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도 그 일에 동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의 일을 마치고 로마를 방문할 때 그들과 함께할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말합니다.
롬 15: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롬 15: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바울이 말하는 복에는 바울이 로마 교회에 방문함으로 그들이 바울의 섬김과 돌봄으로 얻을 수 있는 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로마 교회가 바울의 선교사역에 동참함으로 앞으로 누리게 될 복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가 이 충만한 복을 생각하며 자신의 방문을 기다리며 그의 여행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물질로써 그와 함께 했던 것처럼, 로마 교회도 물질로써 함께 할 것을 기대하며 그렇게 하리라고 확신합니다.
두 번째로 로마 교회가 바울의 여행을 함께 하는 방법은 “기도” 입니다.
롬 1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롬 15: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바울은 불확실한 여행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도 힘을 같이하여 함께 기도해주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방문을 앞두고, 두 가지 제목으로 기도 부탁을 합니다. 첫째는 예루살렘에 있는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그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루살렘에 있는 믿는 자들에 대해서, 예루살렘 성도들이 바울이 전달하는 연보를 기꺼이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가 힘을 같이하여 기도함으로 바울의 여행에 동참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그 선하신 뜻대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했을 때 이러한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롬 15: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바울이 기도합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도 함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될 것입니다.
존스토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뜻에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자주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그 모든 일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바울과 로마 교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우리는 이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지 사도행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바울을 지켜주셨습니까? 바울은 결박당했고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죄수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면서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유대인 무리들의 폭동으로부터 그를 건지셨고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의 음모로부터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난파되는 위험을 겪기도 했지만 안전하게 로마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가 로마에 이를 수 있도록 지켜주셨습니다. 두 번째 기도 제목에 대해서 사도행전에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벨릭스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이런 말을 말했습니다.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행 24:17) 이방인 교회가 보낸 연보가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에게 받을 만한 것이 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하는 필수품입니다. 절대로 빠뜨리면 안 되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아이템입니다. 우리를 보호하는 안전장치이고 우리를 지키는 무기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섭리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 사랑하는 누군가의 인생에 선한 영향으로 주며 그 인생에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참여할 수 없는 그 많은 일들에 대해서 기도로 함께 할 수 있고 기도로 그 사역에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바울은 기도하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구합니다.
롬 15: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바울의 여행의 특징을 한 가지를 언급했는데, 그것은 ‘불확실함’입니다. 바울의 여행에서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합니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확실한 건 별로 없습니다. 참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고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확실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분이 알 수 없고 불확실한 우리 인생에 기준이 되신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그분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그 일을 하신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이 확실함을 가지고 짙게 내리깔린 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인생, 그 속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인생의 수많은 불확실함을 하나의 확실함으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인생에서 무엇을 더 힘써야 하는지도 분명해집니다. 불확실함 속에서 확실함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전하는 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으로 인생이라는 여행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허락하신 기회를 따라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 직접 동참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간접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에 물질로써 동행할 수 있고 기도로써 동행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교회에서 진행되는 모든 사역에 직접적으로 함께 할 수는 없더라도 하나님이 그 모든 일 가운데 함께 하시니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신 물질을 드림으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인생이라는 우리의 여행은 외롭지 않은 여행이 될 것이고 보다 풍성한 여행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