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위로부터 난 지혜
본문 : 야고보서 3장 13절-18절
설교자 : 이 병권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조종사와 세 명의 승객이 탄 경비행기가 고장이 났습니다. 승객은 우주 과학자와 할아버지, 그리고 학생 이렇게 세 명이었습니다. 조종사가 말합니다. "나는 곧 제트항공기 조종사로 승진될 것이기에 여기서 죽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내의 물건은 모두 내 권한입니다. 여기 낙하산이 세 개가 있는데, 하나는 내가 쓰겠습니다.” 조종사가 낙하산을 가지고 사라지자 이번에는 과학자가 말합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기에 내가 죽는 것은 엄청난 손실입니다. 다음 낙하산을 내가 써야 합니다.” 그러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른 뛰어 내립니다. 먼저 탈출한 두 사람을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학생에게 말합니다. "얘야, 하나 남은 것은 네가 쓰도록 해라. 나야 살 만큼 살았으니 괜찮단다.” 그러자 학생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할아버지 우린 둘 다 살았어요. 아까 지혜롭다던 아저씨는 낙하산이 아니라 제 배낭을 가지고 갔어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름의 지혜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행동하지만, 오히려 어리석은 결정을 하거나 잘못된 결과를 얻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특별히 오늘날에는 너무도 많은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무엇이 중요한 한지,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쓸모가 있는지, 어떤 것이 나에게 유익한지 잘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계획을 세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지혜는 삶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하고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가 어떤 지혜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고보가 오늘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야고보가 말하는 두 가지 지혜에 대해서 살펴보고 어떤 것이 참된 지혜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참된 지혜를 추구하도록 마음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야고보는 13절에서 질문 하나를 던지며 지혜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야고보는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요”하고 손을 들어 표시해 주기를 바라고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가 그들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군지 몰라,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지혜와 총명을 가진 자라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말하기 위해서 이 질문을 하고 있는 겁니다. 분명 이 편지를 읽은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롭고 총명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총명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정말 그러한지, 그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너희의 지혜를 시험해볼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행함이다.”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야고보는 지혜를 ”행함으로“ 증명하라고 말합니다. 정말 너희에게 참된 지혜가 있다면, 그 지혜를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라고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는 온유함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참된 지혜는 선을 행함으로 드러납니다. 온유함 안에서 행해지는 선한 행실로 참된 지혜가 증명되는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온유함은 다른 사람에게 굴복당하는 연약한 사람의 특징으로 보고, 추구하지 않았던 덕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온유하다고 말씀하셨고 온유한 자를 복 있다 하셨습니다. 온유함은 성령의 열매이며, ‘자기 절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온유함은 잘 길들여진 야생마를 표현하는데 사용된 단어입니다. 길들여진 말은 타고난 힘을 잃지 않으면서 그 힘을 주인이 원하는 대로 적절하게 발휘합니다.
따라서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함을 보이라는 것은, 지혜가 가지고 있는 힘을 삶에서 선을 행하는 일에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고보가 말하는 지혜입니다. 온유함 안에서 행해지는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올바로 인식하고 겸손하게 이웃을 사랑하는 태도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의 말을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너희에게 지혜가 있느냐? 그렇다면 너희는 그 지혜를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야고보서 공부를 통해서 참된 믿음을 점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목록을 살펴봤습니다. 참된 믿음은 시련을 견디며 기뻐합니다. 참된 믿음은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참된 믿음은 차별을 거부하고 긍휼을 실천합니다. 참된 믿음은 자신의 믿음을 행함으로 보이며, 입술을 통제하여 다스립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목록에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이 추가됩니다. 그것은 지혜입니다.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혜를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지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지혜는 믿음을 증명해주는 도구가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지혜의 모습을 대조하며 우리가 어떤 지혜를 가지고 있는지 체크할 수 있도록 합니다. 마치 하얀 종이 위에 다른 색깔의 물감으로 두 개의 그림을 그리듯이 두 가지 지혜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그려주는 두 지혜를 보면서 나는 어떤 모습을 닮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두 가지 지혜를 살펴보겠습니다. 야고보는 두 가지 지혜 중 먼저 위로부터 오지 않은 지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14-15) 야고보가 말하는 이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라, 땅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온 것입니다. 이 지혜는 세상의 것입니다. 정욕의 것입니다. 마귀의 것입니다. 이 지혜는 결국 우리를 죄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이 지혜를 가진 사람은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갑니다. 이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 육체의 욕구를 따라 살아갑니다. 이 지혜를 가진 사람은 마귀의 권세를 따라 그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지혜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독한 시기와 다툼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독한 시기와 다툼으로 나타납니다. 독한 시기는 잘못된 열심에서 나오는 적대심입니다. 분한 마음을 품어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더 높은 위치로 가기 원하는 야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여 자신을 가장 우선시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독한 시기가 있고 다툼이 있습니다. 남을 짓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열심이 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릇된 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할 수 있는 악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로부터 오지 않은 지혜의 모습입니다. 이 거짓된 지혜는 마치 진짜인 것처럼 우리를 속이고 세상의 방식으로,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의 법칙으로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헷갈리게 만듭니다. 다양한 이유를 들이대며 정신 못 차리게 우리를 속이는 겁니다.
세상은 어떤 일에 대해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기에 나를 위해 다른 것을 이용하는 것을 지혜라 말합니다. 나에게 방해하는 것들은 어떠한 핑계와 이유를 붙여서라도 없애고 어떻게 해서든 나의 불이익을 줄이는 것을 지혜라 말합니다.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지혜라 말합니다. 그래서 불법을 행하고 원칙과 기준이 무시되는 겁니다. 어떠한 악이라 해도 나에게 도움이 되면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러한 지혜가 없는 사람들을 가리켜 ‘미련하다’, ‘세상 살 줄 모른다.’는 말로 조롱합니다.
이것은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거짓된 지혜입니다. 위로부터 오지 않은 지혜의 특징이 이러합니다. 따라서 그 결과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은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열매로 맺게 됩니다. 이런 거짓된 지혜는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지혜를 가지고 서로를 공격하는 겁니다. 이 거짓된 지혜의 결과로 배가 침몰하기도 하고, 건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다리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혜로 인해 사람의 소중한 생명이 어처구니없이 희생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악이 조금 드러난 것뿐입니다. 사실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더 많은 악들이, 더 많은 문제가 이 세상에는 가득합니다. 지혜라는 가짜 이름으로 숨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해보십시오. 이러한 거짓된 지혜가 우리 가정에 있다면, 이러한 세상의 지혜가 우리 교회에 들어와 행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의 혼란과 악한 일들을 내가 속한 곳에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지혜는 내가 속한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병들게 할 것입니다. 거짓된 지혜, 세상의 지혜, 육신의 속한 지혜를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의 대적 마귀가 주는 지혜입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던져버려야 하는 악한 지혜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볼 지혜는 위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참된 지혜는 위로부터 옵니다. 바로 하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 지혜는 어떤 지혜일까요? 여러분 참된 지혜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제 참된 지혜의 특징, 여덟 가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지혜의 특징을 살펴볼 때 우리는 참된 지혜를 가진 자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결입니다. 야고보는 성결을 말하면서 첫째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순서상의 첫째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요함에서도 첫째라는 것입니다. 성결은 지혜에 있어 가장 중요합니다. 성결은 모든 악으로부터 깨끗하여 더럽혀지지 않은 경건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외적 행위뿐 아니라 내적 동기를 순수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성결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결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결한 생각과 그 행위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그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합니다. 깨끗합니다.
다음은 화평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화평한 관계를 낳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지혜가 다툼과 분쟁과 혼란을 낳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싸우기 좋아하며, 논쟁적이고, 성내기를 쉽게 하지만,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생명은 진리 안에서 화평의 삶을 살도록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화평을 추구합니다.
다음, 세 번째는 관용입니다. 관용은 더 높은 가치를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을 관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생각되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싸우려 들고 자신의 권리를 차지하려고 열을 냅니다. 그것은 다투기 좋아하며, 이기적이고, 속이 좁은 세상의 지혜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는 관용을 베풉니다.
이어서 야고보가 말하는 지혜의 특징은 양순 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이곳에만 사용되었는데 ‘잘 설득할 수 있는’ 순종적인 자세를 뜻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겸손한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리숙하게 잘 속는 사람, 귀가 얇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잘 받는’, 즉 자신의 생각이나 고집을 버리고 진리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영이신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 그분은 우리 마음을 양순하게 만들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양순합니다. 겸손히 순종합니다.
다섯 번째는 긍휼입니다. 은혜가 자격이 없는 자에게 복을 베푸는 것이라면, 긍휼은 벌을 받아야 할 자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사람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서 비난하고 정죄하지만, 긍휼은 용서와 자비를 나타냅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분 긍휼하심을 좇아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러한 긍휼이 참된 지혜의 특징인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는 긍휼히 여깁니다. 자비를 베풉니다.
다음으로 선한 열매입니다. 선한 열매는 앞서 말한 긍휼과 연결되는데, 긍휼과 선한 열매를 하나의 특징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불쌍히 여김으로 나오는 행함,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한 열매는 선한 행위로써 드러납니다. 도움이 필요한 자를 직접 돕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실천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선행으로 나타납니다.
다음, 일곱 번째 특징은 편견이 없는 것입니다.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악한 생각으로 사람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차별이 죄라는 것을 야고보는 이미 2장에서 강조하여 말했습니다. 차별은 참된 지혜의 모습이 아닙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을 가집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고, 사람을 향해서는 선입견이 없이 공평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편견이 없습니다. 차별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 특징은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연극배우를 표현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당시 연극에서는 배우,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배역을 연기했습니다. 그래서 배역에 맞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었는데, 재미있는 인물을 연기할 때는 크게 웃고 있는 가면을 쓰고, 비극적인 인물을 연기할 때는 슬픈 표정의 가면을 씁니다. 그리고 악한 인물을 연기할 때는 성난 얼굴의 가면을 쓰고 연기합니다. 이것이 거짓입니다. 거짓이 없는 것은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을 벗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외식하지 않는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를 진실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는 거짓이 없습니다. 외식하지 않습니다.
8가지 위로부터 난 지혜의 특징을 생각해보십시오.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는 것. 이 특징들이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누군가의 삶에 이러한 지혜가 가득하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특징을 완벽하게 보여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완벽한 본을 보여주셨고, 우리에게 최고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야고보가 여덟 가지 특징으로 그려준 아름다운 지혜의 모습은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참 지혜가 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화평하게 하는 자로서 의의 열매를 거둡니다. 참된 지혜는 거짓된 지혜의 결과였던 “혼란과 모든 악한 일”과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결과는 질서와 모든 선한 일입니다. 의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가지 지혜를 살펴봤을 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지혜는 어느 쪽과 더 닮아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며 질투심으로 괴로워합니까? 화평을 희생하면서 개인의 목표를 이루려는 열심으로 충만하진 않습니까?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거나, 나의 감정을, 나의 생각을 앞세우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기보다 잘못을 지적하기를 즐겨하지 않습니까? 내가 속한 곳에 늘 다툼이 일어나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까? 좁아터진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부정적인 태도로 반응하고, 말씀의 기준보다 나의 논리를 따르며 세상의 가치를 우선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나의 삶을 온유와 겸손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나를 긍휼, 진실, 평화의 사람으로 기억합니까? 내가 가정에서 보여주는 행동과 직장이나 교회에서 보여주는 행동은 일치합니까?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고 도와주는 것을 기뻐합니까?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나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습니까? 죄를 멀리하고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가 살아가면서 맺고 있는 열매는 어떠합니까?
이 질문들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답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지금 실제 모습 그대로를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이 질문에 대해서 같은 대답을 할지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위로부터 난 지혜로 살아 갈 것을 명하십니다.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부터 난 지혜를 허락하셨기에 이 지혜를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지혜는 위로부터 온 것이기에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지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야고보가 지금 우리에게 말합니다. “지혜가 있다고 말하는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이냐? 그것이 위로부터 난 지혜인지, 아닌지를 점검하고 그 지혜를 너희의 삶으로 증명해 보이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