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본문 : 누가복음 1:1-4
설교자 : 조 정 의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오늘부터 우리는 누가복음 말씀을 공부하게 됩니다.“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고 있는 책은 4복음서들인데, 그중에서도 ‘누가복음’은 예수님에 대해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40%는 다른 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마가가 예수님의 행적을 헤드라인 뉴스처럼 빠르고 간결하게 전달했다면, 누가는 그분을 풍부하고 완벽하게 서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야고보서 공부에서 ‘믿는 자의 참된 삶’에 대해서 배웠는데 바로 그 참된 믿음의 근본이 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빌립보서 말씀에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음도 유익하니라”고 했던, 그 삶과 죽음의 이유가 되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시편에서 예언하고 있는 분, 베드로전서에서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라고 했던 그 대상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누가복음을 통해 그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 누가복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신약성경의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두 책을 공부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역사도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에 대한 말씀을 매주 듣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 이 시간들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풍성해지고 그것이 삶에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의 서두 부분입니다. 이 말씀이 원문에서는 한 문장입니다. 이 부분은 모든 신약성경 가운데 헬라어적으로 가장 격조 높은 문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가장 완벽한 구성으로 이뤄진 문장인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영어로 논문을 써서 제출했는데 그때 저의 논문을 보시고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 글은 문법에 틀린 것은 없지만 논문 수준의 영어 문법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논문은 학술 자료로 도서관에 보관이 되기 때문에 권위 있고 믿을 수 있는 책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첫 장의 배열, 편집, 심지어 여백까지도 중요합니다. 첫 장을 폈을 때부터 믿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서두 부분도 이후의 말씀과는 달리(5절부터는 평범한 헬라어체) 4절까지는 격조 높은 표현으로 쓰였던 것입니다. 성경학자 바클레이는 이에 대해 마치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이야기를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하는 듯한 어조라고 말했습니다. 저자는 이것이 자신의 일기 같은 잡다한 글이 아니라, 아주 철저하고 신중하게 연구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누가 기록했나요? 물론 원문에는 누가복음이라는 제목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의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누가가 기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누가복음을 누가가 썼다는 것은 외부적인 증거와 내부적인 증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외부적인 증거로는 역사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이라는 제목은 초대시대 교부들이 사용한 제목인데 이들의 증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벌초하러 전라도에 내려간 적이 있는데 산소 하나는 산속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워 작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야만 그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버지는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 그 위치를 잘 알고 있었기에 제가 믿고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증거는 이러한 효과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이 기록된 후 얼마 되지 않은 2세기를 살았던 교부, 저스틴이 이를 확증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라토리아 정경과 P75 사본 본문 끝부분(175~225년)이 역사적인 증거로 남아있고, 2세기 교부인 이레네우스가 “바울의 친구 누가가 바울에 의해 설교된 것을 책으로 기록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3세기의 터툴리안 역시 증인입니다. 초기교회의 목사들과 교부들이 이 복음서를 누가가 기록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저명한 박사들이 아니라 해도 당시에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것입니다.
내부적인 증거로는 성경 자체가 말하고 있는 증거들입니다. 이에 대한 힌트는 3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3). 사도행전의 앞부분을 보면, 을 보면, 1:1-2을 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행1:1-2). 누가복음 서두에서는 ‘처음 책을 쓴다’고 말하고 사도행전에서는 ‘전에 쓴 책에서’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여러 차례 등장한 ‘우리’라는 표현입니다. 우리에는 사도행전의 저자가 포함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사역할 때, 3차 전도여행에서, 사도 바울이 붙잡혔을 때 계속해서 ‘우리’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도 바울과 함께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을 동역했던 사람들은, 마가, 아리스다고, 디모데, 디도, 실라, 아굴라, 브리스길라, 바나바 등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누가와 디도 뿐입니다. 저자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은 것입니다. 누가와 디도 중에 많은 시간 사도 바울과 동행했던 사람, 헬라어를 이 정도 수준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뿐입니다.
누가는 헬라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신약성경 전체의 저자들 중 유일한 이방인입니다. 그가 이방인이었기에 나타난 누가복음의 특징들이 있습니다. 이 복음서에는 로마 황제나 관료들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마태는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들에 대해 자주 말하는데, 누가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가 이방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용한 명칭들도 최대한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랍비’를 ‘선생’으로 번역하여 사용함). 유대인들은 남자를 높이고 여자를 낮게 여겼습니다. 아침 기도문에 ‘하나님 저를 이방인이나 노예나 여자로 만들지 않으신 것에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에는 여자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억눌린 사람, 연약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도 많습니다. 골로새서 4:4에서는 누가를 가리켜 “사랑하는 의사”라고 말합니다. 바클레이는 “목사는 사람의 가장 선한 것을 보고, 법관은 사람의 가장 나쁜 점을 보며, 의사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말했는데, 누가는 누가복음을 기록하면서 최대한 현실적이고 분석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의학적인 내용들이 나옵니다. 열병에 대해 “중한 것”이라고 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고, 문둥병도 “온몸에 퍼져있는 문둥병”이라고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그는 역사적인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고 복음의 동역자로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칭찬을 받는 자”(고후 8:18)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빌립보에서 동행했었고, 3차 전도여행에서 함께 했으며 바울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로마로 후송되어 배가 난파되는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누가는 사도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바울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유일한 동료가 누가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역사학자가 아니었고 주님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전해주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바로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이 ‘언제’, ‘어디서’ 쓰였는지는 추정하는 내용입니다. 기록 시기는 61-62년으로 추정합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사건 기록이 62년 경에 있었던 일인데, 그 이후로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도(바울의 행적, 62년 야고보의 순교, 64년 로마 황제 네로의 기독교 박해, 70년 예루살렘 멸망 등) 누가가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중요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누가복음은 그 전에 기록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을 보면 에베소 장로를 모아놓고 그들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후에 쓰여진 서신서를 보면 그들이 다신 만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종합해 볼 때 누가가 기록한 시기는 그 이전인 것입니다.
이 시기에 사도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잡혀서 벨리스, 베스도, 아그립바에게 심문을 당합니다. 가이사랴에서 바울과 함께 투옥되었던 때 바울은 오랜 기간의 심리 과정에 있었고, 함께 있었던 누가가 이 때 누가복음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복음은 누구에게 쓴 것일까요? 3절에서 알 수 있듯이, ‘데오빌로 각하’입니다. ‘각하’라는 호칭을 통해 볼 때 그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로마 정부 관료, 지방 관료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때론 학문적인 책의 서두에 나오는 사람은 그 책이 나오게 하는데 도움을 준 후원자일 경우라고 합니다. 그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거나 누가복음이 나오는데 도움을 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기록한다고 말합니다(4). 즉 데오빌로는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거나 믿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목격자들은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방인 지역에 널리 퍼져서 복음을 전했는데 이방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기록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믿음을 확증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1). 구약 성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해 가리키고 있고 신약은 ‘오신 메시야’에 대해 확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약속된 메시야로서 어떤 일들을 이루셨는지, 어떤 말씀을 하셨고,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등장부터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등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스스로 자신이 메시야임을 증거하는 내용도 나오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면서 그분이 하나님으로서 베푸시는 인자하심, 이적들, 말씀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이어지는 사도행전에서는 예수께서 이루신 모든 일의 결과물들, 즉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힘으로 모든 증거를 예루살렘으로 시작해서 땅 끝까지 이르는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과 그 영향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우리 중에 이뤄진 사실”이고 더 나아가 여러분과 제 안에 이뤄진 일들입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3). 누가는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의 직접적인 목격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누가복음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2). 당시에 예수님의 목격자들이 있었고 그것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고 증언했고,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셨습니다(고전 15장). 이러한 목격자들을 통해 누가는 예수님에 대한 사건 기록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기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찰스 스윈돌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그분이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코고시는 소리를 듣고, 무더운 오후에 그분의 체취를 맡았던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사람들은 그분의 사역이 펼쳐졌던 현장에 있었다. 그들은 그분의 변모를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겟세마네에서 그분이 고뇌하시는 모습을, 참혹한 매질을 당하시면서 온 몸을 뒤트시는 모습을,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보고 전율했다. 누가는 자료들을 면밀히 조사해서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이 아닌 것들을 가려내고, 누락된 상세한 정보들을 채워 넣고, 오류를 수정하고,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들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찾아낸 자료들을 모두 모아 조사하고 나서야 비로서 펜을 들었다”. 누가는 철저하고 신중하게 조사하여, 목격자의 진술에 따라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누가의 기록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가 이제부터 쓸 내용은 떠도는 소문을 주워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눈으로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누가는 이 기록을 “차례대로” 써 보낸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묶었다는 말입니다. 누가가 의도적으로 묶은 것입니다. 1-2장은 유년기, 3-4장은 사역의 준비기간, 4-9장은 갈릴리에서 사역, 9-19장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시면서 하신 일, 유대인들의 거부와 새로운 길에 대해, 그리고, 19-24장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입니다. 누가는 이러한 주제별 구성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건들을 전달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왜 이것을 기록했을까요?“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4). 60-61년에는 사도들과 목격자의 시대가 지나고 복음의 제 2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보다 전해진 말씀을 들었던 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했던 이방지역은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도 소아시아 지역 성도들에게 “너희가 보지 못하였다, 지금도 보지 못한다”라고 말햇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말씀이 있어 성령께서 그들에게 조명하여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3, 25).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한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었을 때 하나님을 알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보여주고 믿음을 확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고난 중에 있었습니다. 오직 전해 들은 정보로만 믿음을 붙든 채,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믿음을 선택할 때 의심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누가는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에 대해 세세히 기록한 것입니다. 마이클 윌코크는, “누가는 자기 독자들이 복음의 확실성을 이성으로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알기 원한다. 그래서 복음의 확실성이 그의 존재의 일부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누가는 그런 지식이 당신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어떤 신비로운 체험에 의해? 철학을 깊이 연구함으로써? 그렇지 않다. 여기 그의 복음서에 나온 예수 이야기의 명확한 사실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 당신은 삶의 기본적인 확실함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우리는 보다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삶을 의지하고 있는, 소망과 미래와 생명을 맡기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말씀들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연약한 어린아이의 울음을 우셨던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소명을 알고 계셨던 소년, 어린 나이에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하셨던 모습, 세례 요한과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확증으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시는 모습, 가난하고 억눌린 자를 돌보시는 인자하신 하나님, 병들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치시는 전능의 하나님, 진리를 선포하시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로 죄를 이기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입에서 나온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들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과 성품과 표적에 놀라고 감사하며 찬송했던 사람들과, 반대로 차갑게 돌아선 사람들의 모습도 보게 될 것입니다. 기대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