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용과 여자 : 박해와 돌봄
본문: 요한계시록 12장 13-17절
설교자: 조정의
국가로서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의 위협과 침략에서 벗어났던적이 거의 없던 나라다. 지정학적으로 문명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집트를 연결하는 좁은 통로에 있어 제국의 힘이 세져 국토를 확장할 때, 반드시 점령해야 할 땅이 됐다. 구약시대 애굽을 시작으로 앗수르, 바벨론에 차례로 정복당한 이스라엘은 극적으로 회복됐지만, 신약시대에도 그리스, 로마의 식민지가 됐다. AD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당했을 땐, 110만 명이 사망했고, 10만 명 가까이 노예가 됐다(요세푸스).
성경 시대 이후로도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박해당했다.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 때 수많은 유대인이 죽거나 노예로 팔렸고,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에서는 유대인을 강제 추방했다. 19세기 러시아 스탈린 치하에선 누명을 쓰고 수만 명이 살해당했고, 수십만 명이 쫓겨났다. 최악은 1930년대 독일 나치당에 의해 일어난 박해다. 학살당한 유대인만 600만 명(유럽 내 유대인의 절반). 국토를 잃고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1948년 흩어진 백성이 모여 국가를 회복하여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특별히 대체 신학자들).
성경은 이스라엘이 받은 박해를 정치, 경제, 군사적 관점으로 설명하지 않고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언약의 백성, 제사장 나라로 하나님을 예배하여 모든 민족을 하나님께의 언약 아래 모으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역할을 내팽개쳤다. 모든 민족을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이끌어야 할 그들이 민족의 우상들을 섬겼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신부”라 부르셨는데(사 62:4), 그들은 신랑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간음했다. 그 결과 박해가 그들에게서 끊이지 않았다(사사기).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고, 계속해서 회복하셨고 또 회복하실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이렇게 물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동족 이스라엘이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던 바울은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종말에 마침내 회복되는 과정을 본다(20장). 그들은 마귀로부터 극렬한 박해를 받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강력한 돌봄을 받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미래는 확실하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신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가? 이스라엘과 함께 접붙임을 받은 교회도 확신할 수 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돌보시고 끝내 승리로 이끄실 것이다.
1. 하나님의 백성은 박해받는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환난은 예고된 현실이다. 각오해야 할 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고 말씀하셨다(요 16:33). 바울 역시 하나님 나라 상속자들이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마땅히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롬 8:17). 요한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라고 말했다(요일 3:13).
여기서 말하는 환난, 핍박, 미움, 박해는 우리 죄 때문에 당하는 결과가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시련을 말한다. 예수님은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이유를 예수님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요 7:7). 우리를 세상에서 택하셨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거다(요 15:19). 종말에 하나님 나라 백성, 이스라엘이 마귀와 그에게 속한 세상에게 미움받는 이유도 같다.
마귀는 하늘 전쟁에서 패배하여 땅으로 내쫓겼다(13절). 이제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기간, 무저갱에 잡혀가기 전까지 활동할 수 있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12절). 마귀는 크게 화가 났는데, 그 분노를 남자를 낳은 여자에게 쏟아부었다(13절).
여기서 여자가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주목하라: 남자를 낳은 여자.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유대인 민족, 종말에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을 말한다. 마귀는 그들을 박해(적대적 추격)하는데, 그 이유는 여자가 낳은 남자 곧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승천하여 하나님 앞 보좌에 앉아 심판 주로써 다스리시고, 계시록에 기록된 심판을 수행하실 것이다. 마귀는 그리스도를 해치려는 계획이 실패하자 그분께 속한 백성을 핍박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마귀의 박해를 받는 건 바로 주님 때문이다(마 4:11).
마귀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할까? 15절에 보면 마귀가 옛 이름인 뱀으로 소개된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요한이 12장에서 본 것은 “이적”이기 때문에, 용, 여자, 아들뿐만 아니라 여기 뱀의 입에서 나온 강 같은 물도 문자 그대로 이해할 수 없다.
요한이 차용한 구약 성경에서 땅을 강같이 덮는 물, 홍수는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을 의미했다(삼하 22:17, 시 18:16, 144:7). 이방 군대 세력을 가리키기도 했다(사 8:7, “큰 하수 곧 앗수르 왕”, 렘 47:2-3,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군마의 발굽 소리”, “달리는 병거 바퀴 소리”). 그러므로 우리는 알 수 있다: 종말에 마귀가 여러 가지 정치, 경제, 군사적 방법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박해할 것이다. 마귀는 자신이 세운 지상 통치자(짐승,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를 다 죽이고, 그 표를 받지 않은 사람은 매매도 불가능하도록 하나님 편에 속한 자들을 박해할 것이다(계 13장). 생존이 위협받는 극심한 고난이다.
또한 마귀의 공격은 영적이기도 하다. 옛 뱀의 입에서 나온 거짓이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한 것처럼(창 3장), 마귀는 자기 입에서 강같이 토한 온갖 거짓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참 진리, 참믿음에서 떠내려가게 만들 것이다. 마귀는 욥의 모든 소유와 건강을 빼앗고 하나님을 불신하도록 유혹했다. 마귀는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 하여 믿음에서 떨어지도록 시험했다(눅 22:31). 누가 마귀의 거짓을 대적하여 진리 위에 굳게 설 수 있을까? 용과 여자를 대조해보라. 크고 사납고 무서운 용과 한 여인의 전쟁처럼, 마귀와 하나님의 백성 간의 전쟁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처럼 보인다.
2. 하나님의 백성은 돌봄받는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주 빠지는 오류가 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내 힘으로 악한 세력과 싸워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당신은 마귀와의 싸움이 쉽다고 생각하는가?
죄 없던 아담도 미혹됐다. 세상에서 가장 온유하고 강력한 지도자 모세도 넘어졌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 다윗도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고, 대표적인 의인으로 분류되는 욥도 출생을 저주했다. 예수님을 위해 거꾸로 달려 순교한 베드로도 한때 실족하여 예수님을 부인했다. 우리는 약하다. 정말 쉽게 흔들린다. 엘리야처럼 어제 승리에 축배를 들고, 오늘은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간청한다. 어제 홍해를 건너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가, 오늘 물이 써서 불평한다. 자신만만해하지 마라. 우리를 돕는 손길 없이 마귀와 맞서 싸우면 우리는 백전백패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계심을 믿지만, 영적 전쟁을 오로지 내 몫으로 여긴다. 그래서 싸움에서 패배할 때, 죄책감과 수치심에 빠진다. 하지만, 기억하라. 우리의 싸움에 하나님이 지원군으로 참여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전쟁에 우리가 군사로서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군사를 적진 앞에 앞세우고 뒤에서만 돕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보다 먼저 싸우시는 분, 우리와 함께 싸우시는 분, 항상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다(요 16:33).
마지막 때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어떻게 돌보시는지 보자(14절).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대환난 기간인 삼 년 반(마흔 두달, 천이백육십 일)이 다니엘이 예언한 방식대로 표현되었다: 한 때, 두 때, 반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보호하시고 마귀의 박해를 피하게 하실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모세는 “마치 독수리가…자기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이스라엘) 인도하셨”다고 말했다(신 32:11-12). 다윗도 여러 번 박해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노래할 때,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한다고 말했다(시 57:1 61:4).
하나님은 광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양육하기 위해 특별히 예비하신 그곳으로 백성을 인도하시고(6절), 그곳에서 그들을 양육하실 것이다(“부양”, 새번역). 먹이고, 기르고, 입히고, 돌보실 것이다. 마귀의 지상 세력을 숭배하지 않고 하나님만 예배하면서 종말의 이스라엘 백성은 생존이 불가능한 극심한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자기 백성을 만나와 바위에서 낸 물로 먹이고 축이신 것처럼 마지막 때 자기 백성을 돌보시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신 8:3, 16).
오늘날 하나님 나라 백성도 이 땅이라는 광야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신다(마 6:32). 세상 백성이 자기 신에게 구하듯 애걸복걸 빌어야 하나님이 주실 것처럼 여기지 말라고 하셨다(눅 12:30). 하나님이 돌보신다고 하신 말씀을 굳게 믿으라는 것이다.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을 향해 광야 길을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해보라. 그들이 무엇 때문에 실족했는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했고, 그분께 불평했으며, 다른 신을 만들어 숭배했는가?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다. 마귀는 이렇게 하나님이 돌보시겠다고 하신 것에 대하여 불신하게 하고 넘어지게 한다.
이 땅에 살면서 필요한 무엇 때문에 믿음이 흔들릴 때, 마귀가 당신을 염려하게 하고, 하나님께 실망하여 돌아서게 만들 때, 그때, 반드시 기억하라. 하나님은 당신을 돌보시는 분이시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반드시 돌보신다. 하나님은 오랜 세월 자식이 없어 실망한 아브라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밤하늘의 별을 세게 하셨다. 그만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당신에게 공급하신 것, 당신을 돌보신 것을 생각해보라.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 139:17). 그 많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돌봄을 묵상하라. 육신의 축복 너머의 영적 축복까지 그 풍성함을 헤아려보라.
용의 맹렬한 공격 또한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무력화될 것이다. 16절.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마귀는 그 입에서 강물을 토해 이스라엘을 떠내려가게 만들려 하겠지만, 하나님은 땅의 입을 벌려 그 공격을 막으신다(민 16:28-33; 신 11:6). 마귀가 사용할 모든 정치, 경제, 군사적 공격을 하나님은 능히 막으신다. 자기 백성을 완벽하게 보호하신다. 기억하라. 마귀는 분명 우리를 박해하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마귀의 순수한 악을 우리를 거룩하게 연단하시는 일에 딱 필요한만큼만 허용하신다. 그 이상은 철저하게 금하신다. 절대 우리 삶을 침범할 수 없도록. 하지만 때로 하나님이 순교처럼 죽는 것도 허락하시지 않는가? 그렇다.
실제로 마지막 때 많은 그리스도인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17절을 보라.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과 용이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하나님께서 광야로 숨긴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보호를 받지만, 그 외 여러 민족의 그리스도인들이 마귀가 세운 권세(짐승)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13:7,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많은 그리스도인이 마귀의 박해를 받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이 영적 전쟁에서 절대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침내 하늘 성전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영원히 주와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 불린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박해 가운데 하나님 의 돌봄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의 이름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이름이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어떤 환경 속에 있어도, 그것들을 통해 마귀가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를 미혹하고 박해해도, 설사 우리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주의 뜻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하나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인내한다. 그 말씀을 끝까지 따른다. 하나님이 끝까지 우리를 돌보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여, 그러니 이 믿음의 광야 길을 함께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