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린양의 진노 Part4:죽음의 마병대
본문: 요한계시록 9장 13-21절
설교자: 조정의
튀르키예, 시리아 강진의 파괴력을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이 예언하신 세상 끝에 일어날 재난을 상상하며 두려워한다. 예수님이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 제자들이 조용히 물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가짜 그리스도 행세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난리와 난리 소문이 있을 것이며, 전쟁과 기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4:3-6). 예수님은 이것을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재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훨씬 더 크고 무서운 재앙이 닥칠 것이다(대환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특별히 사도 요한이 본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환상을 통해 그 생생한 참상을 미리 보고 있다(계 6-18장).
전 세계적인 전쟁과 기근이 일어나고, 산과 섬이 옮겨질 만큼 엄청난 규모의 강진이 일어나며, 별이 떨어지고 하늘이 흔들리는 우주적 지각변동으로 인류의 1/4이 죽게 될 것이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떨어져 땅과 수목과 풀의 삼분의 일이 타고, 유성이 떨어져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며, 바다 생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의 삼분의 일이 파괴될 것이다. 혜성이 떨어져 강과 물샘의 삼분의 일이 독물이 되고 그 물을 마신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광명체(해, 달, 별)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암흑에 빠질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환난의 참상이다.
대환난 기간 동안 하나님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구원과 심판의 역사를 동시에 일으키실 것이다. 이마에 인치신 유대인 종들을 통해(144,000) 셀 수 없이 많은 민족과 나라의 사람을 구원하시는 한편 하나님을 대적하고 끝까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이들을 무참히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는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 심판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두 심판은 특별히 악한 영을 통한 심판이고, 오직 악인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다섯째 나팔 심판은 고문이다.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 같은 악령을 통해 하나님은 악인을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게 하신다(5개월). 그리고 여섯째 나팔 심판은 사망이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악인을 하나님은 마병대 같은 악령을 통해 결국 죽이실 것이다.
아버지께 심판의 권세를 받으신 어린양 예수님께서 악인에게 어떻게 무서운 죽음의 진노를 쏟으시는지 먼저 대략적으로 살펴보고(13-19절), 도대체 악인의 문제가 무엇이길래, 이처럼 분노하시는지 20-21절을 통해 심층 분석하기 원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회개에 이르기를 구하고,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들이 말세에 깨어 있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지 깨닫기를 원한다.
1. 악인의 죽음(13-19절)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요한은 한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은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났다(13절). 금 제단은 성막과 성전에 있던 분향 제단을 가리키는데, 제단의 네 돌기는(네 모퉁이 위에 뿔, 출 27:2) 모든 속죄제물의 피를 바르게 되어 있었다. 계시록 6장에서는 예수님을 위해 제물처럼 죽임당한 성도가 금 제단 앞에서 악인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달라고 구했다(9절). 8장에서는 모든 성도의 기도가 향로에 담겨 금 제단에 드려졌다(3-4절). 이로 보건대 악인에게 쏟아진 여섯째 나팔 심판은 그들에게 죽임당한 성도의 기도 응답임에 틀림이 없다.
성도의 기도에 따라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는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었다(14-15절). 성경 어디에서도 거룩한 천사가 결박된 적이 없다. 결박한 네 천사의 정체는 타락한 천사들, 악하고 파괴적인 영적 존재다. 유프라테스강 너머는 이스라엘의 대적이 자주 출몰했던 곳이다(앗수르, 바벨론, 로마 시대 파르티안). 어쩌면 이 귀신들은 그 지역 강대국들을 통제하던 악한 영이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거대한 군대를 일으켜 침략과 파괴를 일삼던 귀신들이 이번에도 대규모 군대를 일으킨다.
16절을 보면 귀신들이 일으킨 군대는 마병대였다(16절). 그 규모는 이만 만인데(2×10,000×10,000), 계산하면 이억 마리의 말과 병사에 육박한다(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 17절). 당시 로마제국 전체 인구가 이억 명에 달했는데(로마 군대 전체의 천 배), 요한은 마병대의 수를 직접 들었다고 확실히 증언했다(16절).
그런데 이 마병대는 일반적인 마병대가 아니다. 17-19절에 묘사된 그들의 모습을 보면, 불빛, 자줏빛, 유황빛 호심경으로 무장하고,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왔다. 꼬리는 뱀 같았는데,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사람을 공격했다(19절, 이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호심경과 입에서 나온 불(불빛)과 연기(자줏빛), 유황(유황빛)은 각각 대응하는데, 귀신 세력의 초자연적 맹렬함, 치명적인 고통, 지옥의 강렬하고 파괴적인 광포를 나타낸다. 불로 태워 없애고 연기와 유황 가스로 질식시켜 죽인다. 참고로 욥기에 기록된 무저갱의 괴물 리워야단도 입과 콧구멍에서 불과 유황이 나왔다(욥 41:19-20).
확실히 이 마병대는 일반 마병대가 아니다. 어떤 주석가는 “불을 뿜고 뱀의 꼬리를 가진 2억 마리 말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날뛴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윌코크, BST, 116p). 그래서 말의 입은 화염 방사기, 말의 꼬리는 폭격기, 유브라데강은 러시아와 중국을 의미한다고 억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한은 마병대가 “환상”이었다고 말했다(17절).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님께서 악한 귀신 수하에 있는 수억에 달하는 맹렬하고 파괴적인 귀신 세력을 통해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란 사실이다.
이 심판으로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18절). 불, 연기, 유황 가스로(세 재앙) 고통스럽게 죽음에 이를 악인이 현재 인구로 계산하면 약 20억에 달하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일어난 세 차례 세계 대전과 나치, 스탈린, 마오쩌둥에 의해 죽은 모든 희생자의 수를 넘는다. 우연한 사고로 일어날 참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아래 정확하게 그 년 월 시에,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귀신을 통해(15절) 악인을 무섭게 심판하실 것이다. 애굽의 장자를 하룻밤에 모두 죽이신 것처럼.
2. 악인의 문제(20-21절)
그러면 하나님이 이토록 무섭게 악인을 심판하시는 이유에 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이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얻는 교훈이 크다.
삼분의 일이 죽었다는 말은 삼분의 이가 살아남았다는 말이기도 하다(정확하게는 절반). 죽음의 마병대 심판도 나머지 절반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님 은혜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하지만 악인의 뻔뻔한 태도는 변함없다(20-21절).
20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두 가지 악인의 완악함이 뚜렷이 보인다. ① 첫째, 우상숭배(하나님보다 다른 대상을 앞세우고 사랑하는 것). ② 둘째, 범죄(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 것). 사실 십계명의 첫째와 둘째 되는 계명을 어기는 문제다(마 22:37-40).
① 만일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창조 목적이 하나님을 영원토록 사랑하고 찬양하는 일이라면(실제 성경이 말하는 진리),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언가를 두는 행위는 반역이다. 성경은 이를 자주 결혼에 빗대어 설명한다(이스라엘, 교회를 신부라 부르심).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 절대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둘의 관계 속에 어떤 누구도 들어와서는 안 된다(배타적). 남편이 아내보다, 아내가 남편보다 사랑하는 대상은 결국 결혼을 파괴한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 저지르는 영적 간음이다. 배우자의 모든 흠과 결점은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관계를 지켜낼 수 있다. 하지만 간음은 안 된다. 이미 한쪽에서 관계를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간음은 그래서 관계 개선이 될 여지가 전혀 없다.
그래서 우상숭배는 무서운 죄다. 하나님을 위해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께 매 순간 생존과 형통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받으면서 그 신실하고 풍성한 사랑을 간음으로 갚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간음에서 절대 돌이키지 않는 악인을 살려두실 이유가 없다. 다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은혜를 베푸실뿐.
② 21절에 기록된 범죄 목록은 십계명의 제6계명(살인), 제7계명(음행), 제8계명(도둑질)이다. 복술은 우숭 숭배 의식 때 사용된 약물로 살인, 음행, 도둑질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다 살인과 음행과 도둑질을 일삼는가? 그 질문에 답을 찾으려면 예수님이 설명해주신 이 계명들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은 분노하고 욕하는 것도 살인과 같다고 하셨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은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다(마 5장). 거룩하신 하나님의 기준은 이만큼 높다.
우리는 쉽게 분노하고 음란한 생각을 자주 품고 누군가의 소유를 탐하는 마음을 항상 갖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존재로, 하나님 형상을 닮은 선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하지만 죄는 우리의 본성을 바꿨다. 우리는 계속해서 분노하고, 음란을 품고, 시기하고 탐한다. 이 본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한 번 해 보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타락한 세상에서도 습관적, 상습적, 반복적 범죄는 강하게 처벌한다. 계속 음란한 행위, 도둑질, 살인을 저지르면 벌금을 내고 감옥에 간다. 하나님의 처벌 기준은 더 높다. 습관적인 분노, 상습적인 음행, 계속되는 탐심은 하나님의 처벌 대상이다. 갱생이 전혀 안 되는 범죄자에게 불완전한 세상도 최후 판결을 내린다(사형). 거룩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 것이 옳은가? 사형 판결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회개할 기회를 주실 뿐.
대환난의 무서운 고문과 사망의 심판을 당해도, 영적 간음을 절대로 회개하지 않고, 범죄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행할 만큼 악인의 마음은 완악하고 견고하다. 누가 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해답은 바로 어린양 예수님께 있다.
그분은 일찍이 죽임을 당하신 분이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바로 완악하고 견고한 죄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다. 딱딱하고 견고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다(히 9:14).
그러므로 구하라. 계속 목이 곧은 자세로 반항하지 말고, 당신의 완악하고 견고한 마음을 무너뜨려 달라고, 나의 마음을 변화시켜 달라고 간절히 구하라. 하나님은 당신이 그렇게 구하기를 기다리신다. 그 기회를 오늘도 주고 계신다.
흥미롭게도 주님은 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 악인이 아니라 교회에게. 우상을 멀리하라고 경고하셨고, 죄에서 돌이키라고 요구하셨다. 왜? 이미 구원받은 자에게도 반복적인 회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악인은 우상숭배에서 돌이키고 범죄를 멀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지만, 의인은 하나님 은혜로, 예수님의 공로로,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싸움이 가능한 상태다. 그래서 바울은 말세에 이렇게 싸우라고 말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1-12)
그리스도인의 삶은 싸우는 삶이다. 하나님보다 무언가 앞선 것이 있다면 부단히 뒤로 보내는 싸움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가 내 삶을 얽매고 있다면 끊임없이 벗어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5)
만일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나태하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주가 오시는 그 날에 우리가 어느 편에 서 있는 사람으로 발견 되든지 상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외국에 나가기 전 수십번 가지고 있는지 여권을 확인하고 만져보고 점검한다. ‘어딘가 있겠지’하고 내버려 두는 사람은 공항에서 낭패를 입어도 소용없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지속적으로 회개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마지막 날에 죽음의 마병대에 공격을 받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정말 당신은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더욱 사랑하는가? 당신이 가지지 못한 그 무엇보다, 당신이 상실한 그 무엇보다? 당신은 하나님으로 인해 진심으로 감사하는가? 기뻐하는가? 당신은 얼마나 자주 하나님 앞에서 그 선하고 온전하신 뜻에서 멀어진 삶에 대해 자백하고 회개하는가? 매일 시간을 내서 당신의 삶을 돌아보라.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 일을 매일 하라. 그것이 당신이 어느 편에 속한 사람인지를 분명히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