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린양의 진노 Part2
본문: 요한계시록 8장
설교자: 조정의
오늘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예배하는 날이다. 예수님의 탄생이 기쁘고 즐거우며 영원한 감사와 예배를 불러 일으키는 이유는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심각하게 단절시킨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때문이다. 그 어떤 권력과 부와 명예와 지혜와 힘을 가진 사람도 이 일에 합당하지 않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오직 예수님 뿐이다(행 4:12). 그래서 천국에서 죽임당하신 어린 양께 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찬송을 돌리는 것이다(계 5:12).
성탄과 심판은 극과 극으로 보인다. 성탄은 기쁘고 심판은 슬프다. 성탄은 즐겁고 심판은 고통스럽다. 성탄은 밝고 심판은 우울하다. 하지만 같은 점이 있다. 성탄과 심판의 주인공이 같다는 것이다. 구유에 뉘어 있던 아기가 바로 심판 보좌에 앉으신 왕이시다. 십자가에 달려 그 피로 죄인을 사서 하나님께 바치신 어린양이 곧 보좌에 앉아 모든 죄인을 심판하실 어린양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과 심판에서 똑같이 발견되는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1)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서 나셨고 심판하신다. 2)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나셨고 심판하신다. 각각의 교훈에서 우리가 무엇을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1.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서(1-5절)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상관있을까? 그렇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7-8,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대환난에 쏟아질 심판도 주의 종들이 부르짖는 기도의 응답이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했다(1절). 일곱째 인에 대응하는 심판은 일곱 나팔 심판인데(8:6-14:20), 본격적인 심판이 시작되기 전(8:6), 웅장하고 넘치는 찬양 소리가 가득했던 하늘이 갑자기 잠잠해졌다. 이 침묵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린양께서 곧 쏟으실 진노 앞에 경외감으로 답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이 다가왔으니, 주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어라”(습 1:7, 새번역). 침묵이 지속될수록 공포는 증폭된다.
요한은 본격적인 심판이 땅에 쏟아지기 전, 하늘에서 펼쳐진 굉장히 신비로운 광경을 봤다(내가 보매, 2절). 먼저,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았다(2절). 일곱 천사 앞에 정관사(the)가 붙어 특별한 천사 계급(천사장 가브리엘)이 아닐까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이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할 특별한 임무를 맡았다는 것이다. 나팔은 구약 성경에서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됐다(백성 소집, 행진, 전쟁 알림, 절기 기념, 민 10장). 여기서는 심판을 알리는 나팔,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나팔이다(에스드라서 6:23).
우리가 먼저 주목할 대상은 심판을 수행할 일곱 천사가 아니라 또 다른 천사다(3절). 이 특별한 천사는 금 향로를 가지고 제단 곁에 서서 있었다. 금 향로에 많은 향과 합하여 모든 성도의 기도가 담겼고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는데(분향단, 출 30:1-8, 히 9:4), 그 항연이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다(4절).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의 기도를 예배로 기뻐 받으시는 장면, 흠향하시는 장면이다(레 26:31). 성전에서도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모든 백성이 기도했었다(눅 1:10, 사가랴).
이후에 천사가 무얼 하는지 주목하라. 제단의 불이 담긴 향로를 가지고 땅에 쏟는다(5절). 성도의 기도를 들으신 주께서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천사를 통해 땅에 불같은 심판을 내리시는 장면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어린양의 진노가 모든 성도의 간절한 기도 응답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죄와 사탄의 패배를 구하는 기도, 순교자들의 원한을 갚아달라고 밤낮 부르짖는 간구(계 6:9-11), 속히 오셔서 온전히 공의로운 나라를 세우시기를 구하는 기도. 그 간절한 기도에 주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
땅에 내려질 심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과 거룩과 공의를 나타낸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그래서 동반한다(5절).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성도가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한 것에 관한 응답이다. 어린양이 처음에 심판의 두루마리를 취하실 때도 이십 사 장로가 엎드려 예배드렸는데, 그 손에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이 있었다. 그리고 그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었다(5:8).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신다. 심판하시는 어린양의 진노도 간절히 믿음으로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 응답이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죽임당하기 위해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도 이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던 성도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성전에 있던 시므온과 안나였다(눅 2:25-40).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던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란 성령의 지시를 받았고 아기 예수님을 보고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찬송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30-32). 84세의 과부 안나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했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아기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루살렘의 속량을(구원)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주님은 심판 날을 위하여 낙심 말고 항상 기도하면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이 질문은 초림을 기념하는 오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강력한 도전을 준다. 당신은 주 오심을 믿음으로 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 이천 년전 이 땅에 처음 오셨던 것같이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당신은 시므온과 안나처럼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 오심을 구할 수 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부르짖을 수 있다. 주가 오실 때 발견할 수 있는 믿음이 당신의 기도에 향기로운 향처럼 담겨야 한다. 매일 아침과 저녁 멈추지 않고 그 기도의 향을 하나님께 올려 드려라.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신 주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로 답하라.
2.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해서(6-13절)
어떤 사람은 6-12절까지 기록된 재앙을 상징으로 본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규모의 대재앙이 없었다는 근거로.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는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재앙은 신화가 아니라 실제다. 상징이 아니라 주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현실이 될 것이다.
심판은 만물 곧 땅, 바다, 강들, 하늘에 내려졌고, 그 결과는 각각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영역의 파괴, 피조물의 죽음이었다. 경제, 정치, 군사적 위기가 연쇄적으로 닥칠 것이다. 첫째 천사가 분 나팔 심판으로(7절) 땅에 피 섞인 우박과 불이 쏟아졌다. 왕성한 지진, 화산 활동과 뇌우가 동반되면 이런 재앙이 생길 수 있다(창 19:24; 욜 2:30). 땅, 수목의 삼분의 일, 각종 푸른 풀이 타 버렸다. 농작물을 비롯한 많은 동식물의 죽음을 낳을 것이다(목재).
둘째 천사가 분 나팔 심판은(8절) 바다에 미쳤다.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은 산이 아니라 산처럼 커다란 운석 또는 유성이 대기권을 통과하며 화염에 휩싸인 모습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됐다(출 7장). 그에 따른 연쇄반응으로 바다 생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큰 해일 등으로 해안에 세워진 배들의 삼분의 일이 파손된다(9절, 운송, 무역 파괴).
셋째 천사가 분 나팔 심판은 강들에 쏟아졌다(10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은 고대 문헌에서 혜성을 가리킨다. 이 별의 이름은 “쓴 쑥”인데, 파괴력이 강한 독성을 지녔다는 말이다(11절). 결국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영향을 미쳐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어 마실 수 없게 된다. 많은 사람이 그 독성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생수의 부족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낼 것이다.
넷째 천사가 분 나팔 심판은 하늘을 조준했다(12절). 해, 달,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았고 낮과 밤의 삼분의 일에 작동을 하지 않아(비추임이 없고) 어둠이 땅에 임했다(출 10:21-29). 지구는 온난화를 걱정할 게 아니다. 오히려 급격한 온도 하락을 각오해야 한다. 열 손실은 지구의 기후를 급격하게 바꾸고 바다의 조류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예측 불가의 폭풍이나 조류 및 기상 이변이 생겨 많은 생명이 파괴될 것이다.
우리는 땅과 바다와 샘물과 하늘에 미친 대재앙의 축소판을 애굽에 내려진 재앙에서 발견한다. ① 불덩이가 섞인 우박(⑦출 9:24), ② 피로 변한 나일 강(①출 7:19), ③ 고기가 죽고 악취가 나서 마시지 못하게 된 물(①출 7:21), ④ 삼 일 동안 내려진 흑암(⑨출 10:21-22). 주님이 애굽을 심판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그 재앙을 더 큰 규모, 더 무서운 강도로 이 땅에 내리실 것이다. 상징으로 보는 이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냐고 의심하지만, 그때 말씀대로 심판하셨던 하나님께서 그날에 말씀대로 심판하지 못하실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제 가장 중요한 심판의 목적을 살펴볼 차례다. 주님은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신 후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하실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 24:22). 대환난의 기간이 길면 남아날 육체가 없다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묘사된 재앙을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하나님께서 그 날이 길어지지 않게 조정하시는 이유는 “택하신 자들을 위”해서다. 그들이 멸망받기 전에 영생을 얻게 하려고.
대환난의 목적은 전멸이 아니다. 만일 그것이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삼분의 일에만 영향을 미치도록 통제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대환난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구원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철저히 믿으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무시하던 이들에게 그들이 의존하던 것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알게 하는 것이다. C. S.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메가폰이다.” 대환난의 고통을 통해 영적으로 눈멀고 귀먹은 죄인이 깨어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마주 한다.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계 6:16)
정말 충격적인 건 이런 무시무시한 환난 중에도 어떤 사람은 더욱 완고하고 딱딱한 마음,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항심을 노골적으로 품을 것이란 사실이다. 바로처럼(출 10:20). 이것이 진짜 재앙이다. 영적 죽음. 땅이 흔들리고 불이 떨어져도 회개하지 않는 돌 같은 마음: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계 9:20-21, 다섯째-여섯째 나팔 심판 후).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진노하시는 그날과 마찬가지로 어린양이 죽임당하러 오신 이천 년 전 그날에도 그분을 맞이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로 반응했다. 시므온은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라고 말했다(눅 2:34).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으며(흥),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패, 요 3:18). 만민을 비추는 빛 예수님께 나오거나(회개) 어둠으로 피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마리아는 자신을 통해 예수님이 탄생하실 것을 천사가 알렸을 때 다음과 같이 찬송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눅 1:51-53).
예수님은 이천 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종말에도 같은 일을 하신다. 교만한 자를 심판하신다. 자기 권세를 자랑하는 자를 내리치신다. 자기 부요함을 의지하는 자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신다. 오직 주 앞에 자신의 비천함을 인정하고 주린 영혼을 채워달라고 회개하며 부르짖는 자에게 영원한 만족과 기쁨, 부요함과 구원이 되신다. 성탄과 심판의 주님은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신다. 모든 사람이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 3:8).
요한이 본 나팔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 가지 심판 후 요한이 본 것은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였다(13절). 먹잇감을 찾아 빠르게 달려드는 독수리는 큰 소리로 땅에 사는 자들 곧 끝까지 어린양을 대적하는 이들에게 경고했다: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아직 세 번의 나팔, 전보다 더 끔찍한 세 번의 심판이 남았다.
성탄에 심판을 말하는 건 뭔가 유쾌하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성탄의 주를 거절한 자는 결국 심판의 주를 만난다. 심판 날에 당신이 믿고 의지했던 모든 것이 무너진다. 당신이 끝까지 거부하고 도망치려 했던 예수님이 당신의 영혼을 결국 잡아내신다. 그날이 이르기 전, 아직 회개의 기회가 남아 있을 때, 회개하라. 당신의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회개로 이끄시는 분께 구하라. 영혼의 갈증과 비천함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오라. 은혜의 구원을 얻을 것이다.
성탄의 주를 영접한 성도들에게 절대 어울리지 않는 일이 있는데, 첫째, 그분의 다시 오심을 구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순이다. 비정상이다. 어떻게 주가 오신 것을 기뻐하면서 주가 다시 오실 것을 구하지 않을 수 있는가? 어떻게 주가 오셔서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셨는데, 주님과 원수 된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가? 성탄의 주를 온전히 기뻐하고 찬양하기 원한다. 주가 오실 것을 간절히 구하는 것으로, 또 심판받을 세상을 철저히 미워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