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배우다
본문 :  창세기 12장 1~9절
설교자 : 이 병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새해를 맞으면 사람들은 누구나 작년보다는 나은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합니다. 스스로 각오를 새롭게 다지기도 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반영하듯이 새해가 되면 헬스클럽이나 학원에 등록하는 사람이 특별히 더 많아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듯이 새해를 맞아 시작한 새로운 시도는 지속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본성에 반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에,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에 저항하며 전에 해본 적이 없던 새로운 것을 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변화에 대해서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성향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강해진다고 합니다.

익숙한 것을 떠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작년 한 해를 돌이켜 생각해보십시오. 한 해 동안 전에 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까?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경우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일을 시도한 경우가 얼마나 있습니까?

아마도 그런 일은 많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편하고 어색하며 두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커다란 변화를 앞에 두고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가 있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변화를 거절하느냐? 그러한 선택의 때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앞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아브람은 ‘변화’를 선택할 수 있었고, 아니면 ‘안정’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과연 그는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요? 그리고 아브람의 선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 아브람에게 믿음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 아브람을 통해서 자신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을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먼저 우리는 아브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 그에 대한 신상정보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람은 상당히 큰 도시인 갈대아 우르란 곳에 살던 평범한 남자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 왔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지역 출신의 사래라는 아리따운 여인을 아내로 두었습니다. 그런 아브람에게 유일한 걱정거리가 있다고 한다면, 11:30에서 알 수 있듯이, 아내인 사래가 임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아버지는 데라인데, 여호수아 24:2에 의하면 데라는 원래 하나님을 믿지 않던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아마 아들인 아브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역사적인 일이 시작됩니다. 어느 날, 아브람은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될 한 사건을 경험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1절에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 명령을 들은 아브람은 어땠을까요? ‘아니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아온 정든 땅을 떠나라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 여기는 아브람의 안정된 생활이 있는 곳입니다. 친한 친구들, 든든한 친척들이 있는 곳입니다. 오랜 경험으로 쌓아온 삶의 방식과 익숙한 문화가 있는 곳입니다. 나의 살던 고향, 정들고 편안한 고향, 이 고향을 떠나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이곳을 떠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목적지를 알려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냥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우선은 그곳에서 먼저 보따리를 챙겨서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의 입장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아내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곳에서 지금까지 쌓아왔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 사회적 기반이나 경제적인 것들은 어떻게 하나?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 한숨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익숙한 것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안전한 곳을 떠나 알 수 없는 어딘가로 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예상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힘들고 불편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나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합니다. 요즘처럼 추운 날에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미 새가 때가 되었을 때 어린 새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듯이, 때로는 우리에게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떠날 것을 요구하십니다. 참된 축복의 경험을 위해 지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나오라고 도전하십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정말 복된 삶을 위해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제 더 이상 그곳에 멈추어 있지 말고, 나의 계획에 동참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세상의 가치와 만족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새로운 영역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새로운 목표를 위해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 온통 내가 중심이 되어서 살아왔는데.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인생의 의미와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목적대로, 그 방향으로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은 그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을 생각해보십시오. 아브람이 느꼈을 갈등과 고민을 헤아려보십시오. 그는 아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을 거듭했을 것입니다. 꼭 떠나야만 하냐고, 다른 방법은 없냐고, 하나님께 되물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람에게 이렇게 어려운 명령을 주셨을까요? 아브람을 괴롭히려고 했을까요?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복을 전할 한 민족을 세우기 위해 아브람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향한 놀라운 구원의 계획 가운데 아브람을 사용하시려고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고민과 갈등이 생길 때, 선택의 어려움 가운데 우리가 더 마음을 쓰고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서, 우리를 안내해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라’는 명령을 하시고 이어서 2절에 세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그 약속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내가 너에게 복을 주고', '내가 너의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이 세 가지 약속 다음에 또 하나의 명령이 이어지는데 그것은 ‘복이 될지라’, 즉 ‘복이 되라’는 말입니다. ‘가라’는 명령과 ‘복이 되라’는 명령은 서로 원인과 결과로 연결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람이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으면 복이 될 수 없지만, 명령에 따라 떠나면,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명령에 따른 약속, 부르심에 대한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이 되라’는 명령은 3절에 나오는 두 가지 약속을 통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 아브람을 축복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리고, 아브람을 저주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릴 것을 말씀합니다. 아브람을 지원하고 그의 믿음을 인정하는 자들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무시하거나 핍박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자들은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약속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복이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하시고 지키실 뿐만 아니라 그와 그의 자손을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복을 베푸실 것입니다. 갈3:8을 통해 이것이 궁극적으로 아브람의 자손 예수님을 통해 온 족속과 백성이 구원의 복음을 듣게 될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브람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그가 순종했을 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는 축복에 대해서 아브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제 아브람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나서 그분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나그네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익숙한 땅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대로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살 것인가?’ 그냥 머문다면 편안함과 안락함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사는 것처럼 일시적인 즐거움과 순간적인 재미와 피상적인 행복을 가끔씩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새로운 성장이나 영향력, 살아있음을 일깨워주는 사명감이나 진정으로 가치 있는 영적인 축복,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경험하기 힘들 것입니다.

둘 다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것에는 희생이 따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겁니다.

아브람은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과연 이 약속은 믿을만한가? 아니, 이 약속을 주신 하나님은 정말 신뢰할만한 분이신가? 그리고 이 약속은 내 인생을 걸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습니까?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그 복을 전하는 삶을 살기로 선택했습니다.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순종의 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과 사도행전7:2을 통해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하란에 잠시 거하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아브람이 하란을 떠난 것과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에 대해 크게 구분을 두지 않습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다루고 있고, 부르심에 대한 아브람의 순종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75세입니다. 그 나이에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땅으로 가려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 나이에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나이라는 장애물을 뛰어 넘고,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는 말씀을 좇아 길을 떠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비록 본문에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보이는 상황이나 현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굳게 믿었기에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얻은 모든 소유와 사람들을 이끌고 미지의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이 살고 있었고, 아브람이 살기에 결코 쉽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약속을 확인시켜주십니다. 아브람이 지금 밟고 있는 땅을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겁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아브람이 그 땅에 도착하자, 바로 그 땅을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아브람을 격려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할 때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이나 쉽지 않은 상황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때에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격려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말씀에 따라 순종의 걸음을 걷고 있다면 눈앞에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는 믿음으로 그 걸음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아브람은 자신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거주지를 옮겨가면서 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아브람은 자신을 부르시고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은 결국 예배로 이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아브람의 모습은 그의 삶에서 계속 나타납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거대한 남쪽 지역인 남방을 향해 이동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나그네로서 계속 여행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 아브람의 이 이야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람의 순종이 믿음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순종으로 반응했습니다. 자신의 현실적인 상황과 어려움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던 것입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자신이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하여, 고향과 친척과 정든 곳을 떠나 나그네의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브람의 순종을 방해할 만한, 다른 것을 선택할 만한 충분한 핑계거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브람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뛰어 넘게 하는 것,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순종으로 이어가게 하는 것,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러한 믿음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우리 주님을 향한 신뢰의 마음이 여러분에게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그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특별히 여러분이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아브람은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아브람을 부르셨던 그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 각자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 풍성히 누리는 인생이 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전한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신뢰함으로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신앙의 모험을 해보라고 도전하십니다.

어떤 분에게 그것은 지금까지 해오던 안이한 신앙생활, 이를테면 주일날 한 번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종교생활에서 떠나 보다 헌신할 것에 대한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 그것은 태도의 변화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늘 상황이나 주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아서 짜증내고 원망하고 부정적으로 반응했다면, 이제 믿음으로 반응하고 환경에 상관없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왕따가 되지 말고, 자신을 꽁꽁 감싸며 고립 시키지 말고, 사람들과 함께 하며 친밀한 관계를 개발하라는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 그것은 세상적인 문화와 가치관, 잘못된 습관에서 단호하게 떠나라는 부르심, 나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어떤 일을 중단하라는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 그것은 하고 싶지 않은 일, 정말로 하기가 꺼려지는 불편한 일에 대한 시도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 그것은 믿음의 결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믿음으로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일, 내가 가진 물질과 시간을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는 일,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 그것은 이기적인 생각이나 자신의 고집에서 떠나라는 부르심, 어린아이와 같은 연약한 신앙에서 벗어나 좀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다른 사람을 돌아보며, 배려하라는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여러분을 쓰시겠다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보다 우리의 믿음을 더 잘 나타내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신앙연륜이 오래되어도, 아무리 은사가 많아도, 아무리 귀한 직분을 맡아도, 아무리 성경 공부를 많이 하고 많이 알아도,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열정적으로 말해도,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했기 때문에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순종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름 없는 평범한 삶으로 끝날 수 있었던 그의 인생이 인종과 시대를 뛰어넘어 온 인류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위대한 삶의 시작은 바로 떠나라는 부르심에 대한 순종에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순종함으로써 축복의 삶은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로버트 슐러 목사의 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고요한 바다를 순항하는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때때로 우리를 폭풍 가운데로 이끌고 가십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겪는 상황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달라지고 믿음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 우리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순종하는 것, 바로 이런 순종이 우리의 삶을 보다 더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익숙해진 잘못된 습관들, 불신앙의 태도들, 희생하지 않고 받으려고만 하는 마음자세들,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행동들, 그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십시오.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그 축복을 나눠주는 인생이 되기 위해, 더 높은 부르심을 향해 믿음의 발길을 떼십니다. 안전에 대한 유혹을 떨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과감히 순종하여 믿음의 걸음을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 그 중심에 서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아침입니다. 떠나야 할 때입니다. 이제 그만 이불 속에서 나오십시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축복의 삶이 시작되는 겁니다.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달콤함에 빠지지 말고, 적당한 행복의 품에 갇혀서 길들여지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가 속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