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쓰리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본문: 로마서 12장 2절 외
설교자: 이병권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떤 말씀을 전해야 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성도님들께 필요한 말씀이 뭘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뭘까?’ 설교자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계속하게 되는 고민입니다. 이런 고민을 할 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우리가 믿는 자로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은 특별한 위기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에 대해서 “팬데믹”을 선언했습니다. 팬데믹은 그리스어인데 “팬”은 모두를 뜻하고, “데믹”은 사람을 뜻합니다. 그래서 팬데믹은 모든 사람이라는 뜻인데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전파되어서 모든 사람이 감염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팬데믹이라고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정말 많은 것을 바꾸었고 우리 삶을 흔들고 있습니다.
처음 코로나가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그런 병이 생겼나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세계적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중단되었습니다. 실업률이 올라가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국가적인 위기이고 또한 교회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이 무엇입니까? 거리를 두라는 말입니다. 모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정규예배를 제외한 각종 모임과 행사를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비대면, 비접촉이라는 수식어가 일상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교회가 모이는 일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비난거리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현장 예배는 축소되었고 여러 모임들은 중단되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 사역이나 성도의 교제는 약화되었습니다.
이 상황이 답답합니다. 서로가 조심하게 되고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바이러스 전파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경계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서로가 피해를 주지 않고 피해를 받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반갑게 악수를 하고 애찬을 나눌 수 있을지 마스크 없이 편하게 만나고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만큼 코로나19가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답답한 상황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애찬을 하지 않고 오후 일정이 모두 없어지니까 처음에는 너무 이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적응하는 겁니다. 애찬을 준비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일에 일찍 마치니까 주일 오후에 시간적인 여유가 생깁니다. 재난지원금으로 주일 점심을 사먹기도 하고 많이 편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예배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우리 예배는 어떠합니까? 전에는 어떻게든 교회에 나오려고 했고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느슨해졌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배가 선택사항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편의를 위해서 혹은 나의 게으름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소홀해지는 것입니다.
전국에 있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가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주일에 현장예배는 물론 온라인 예배에도 참여하지 않은 대상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가장 큰 이유가 ‘게을러서, 귀찮아서’였습니다. 29.6%로 가장 높았습니다. 코로나 시대에는 우리가 쉽게 예배에 대해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나의 신앙을 지탱하는 예배라는 기둥이 흔들리고 예배자로서 나의 삶이 무너지는 겁니다. 위기입니다. 코로나의 위기가 예배의 위기가 되었고 예배의 위기는 곧 신앙의 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멀어지고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서 멀어지고 개인적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에서 멀어집니다. 그렇게 세상의 영향을 받으며 점점 더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겁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신앙은 건강하십니까? 지난 몇 개월 동안,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 그동안의 시간이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시간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이와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지금처럼 혼란스럽고 불안한 때일수록 어느 때보다 더 주님 앞에 바짝 다가가서 그분 앞에 앉아서 그분과 교제를 나누며 그분을 느끼며 그분으로부터 힘을 얻어야 하는데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내 마음을 채우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예배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잘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코로나의 위기를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우리가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요?
그래도 어려운 코로나의 위기 상황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는다면 사람들이 질문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왜 이런 바이러스가 나타나서 많은 사람이 죽게 되는 걸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중국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생각해보면 상황은 다르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겁니다.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코로나19, 앞으로 또 어떤 바이러스가 생길지 모르지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등장할 것이고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 거라는 사실입니다.
첨단과학과 기술과 의학이 발달된 이 시대에, 인간의 능력이 떠받들어지고 인간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는 이 시대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한계를 봅니다. 그러면서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왜 고통과 죽음이 있는지, 죽음 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왔는데, 인생을 돌아볼 여유 없이 달려왔는데, 남들이 하는 것을 보며 따라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코로나의 위기 앞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게 되는 겁니다. 죽음 앞에서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직면하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어디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과학이 답을 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한다하더라도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한 번은 죽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어떤 경우로든 반드시 죽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질병에 노출될 수 있고, 약해질 수 있고, 병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에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 후의 일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언젠가 모든 사람이 한 번은 이 사실을 직접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고 자신을 지킨다 해도 아무리 많은 비타민을 먹고 건강식품을 챙겨먹는다 해도 아무리 유능한 의사를 주치의로 두고 살아간다 해도 성경이 말씀하는 이 진리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죽음을 만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 죄로 인해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야 했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했습니다. 예외 없이 우리가 다 그러한 자였습니다. 우리 인생이 끔찍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죄를 지으며 헛된 것을 좇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을 살다가 영원한 심판에 떨어질 자였습니다. 그런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비참한 인생을 주님이 완전히 바꾸셨습니다. 우리가 매주 기념하는 떡과 잔이 의미하는 주님의 희생,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우리 예배가 이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 예배가 이 사실을 다시 기억하게 하고 되새기게 합니다. 우리 예배가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나의 미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우리가 함께 함으로 드리는 이 예배가 주님의 은혜로 내 마음을 채우고 어려운 상황을 이기게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제에 대한 감사이며 내일에 대한 소망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삽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가 유익을 얻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누립니다. 하나님께 예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뭔가 부족해서 아쉬워서 우리에게 예배를 명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의 목적에 따라 행복하게 살도록 예배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의 예배는 어떠합니까?
누군가 드리는 예배를 구경하는 예배, 나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습니다. 단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는 예배, 기대하지 않습니다. 나의 삶에 하나님보다 다른 것이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중심이 뒤바뀐 예배, 혹시 내가 이런 잘못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건 아닙니까?
우리의 예배는 언제나 최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최상의 예배를 받으셔야 합니다. 온전한 예배,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드리는 예배가 마땅합니다. 그러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하는 예배의 위기 가운데 어떻게 우리가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가 쉽게 소홀해질 수 있는 예배를 건강하게 지킬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쓰리고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쓰리고, 첫 번째는 “버리고”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우리가 드려야할 영적 예배를 말씀하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시대의 풍조, 세상에 속한 것들, 세상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 우리는 세상의 속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혹시 나에게 세상에 속한 삶의 방식이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멀어지게 하는 세상에 속한 것들, 우리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교회로 함께 하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섬김의 시간이 줄었고 가르침의 시간이 줄었고 교제의 시간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내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면 늘어난 내 시간에 무엇이 들어왔습니까? 코로나의 위기를 보내면서 내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혹시 버려야 하는 것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사람들이 누군가를 소개하면서 칭찬할 때 이런 말을 쓰기도 합니다. ‘버릴 것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소개받으면 교제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같이 살아보면 알게 됩니다. 버릴 것들이 정말 많이 있을 겁니다. 우리 모두가 버릴 것 없는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버릴 것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정말 버릴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해서 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버리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계속해서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버릴 것들이 생기고 쌓이니까 계속 정리해야 합니다.
정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뉴스에서 쓰레기 집에 관한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집안이 온통 쓰레기로 가득 쌓여있고 그 상태로 쓰레기와 함께 사는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놀라면서도 한 편으로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버리지 않으면 정리하지 않으면 계속해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정리의 기본은 버리는 겁니다. 우리 인생을 지키기 위해서 버려야 합니다. 위험으로부터, 더러운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면 버려야 합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 된 본성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잘못된 습관을 고쳐버리고 주님을 가까이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내다버리고 주님을 예배하는데 걸림이 되는 것들을 던져버리고 계속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점검하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안에 쓰레기가 가득 쌓이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더러운 것들이 쌓이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코로나의 위기 맞으면서 내가 보낸 시간을 돌아보며 나의 삶을 정리하고 청소하시기 바랍니다. 뭔가 여지를 두고 한쪽구석에 남겨두지 말고 내다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쓰리고, 두 번째는 “바꾸고”입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을 때 우리 교회는 현장예배를 중단했고 온라인으로만 예배를 드렸습니다.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어떻게 하는 것이 정부의 지침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중요함을 놓치지 않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성도님들을 위한 일일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인도자들이 함께 고민하면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온라인 예배를 선택한 교회와 현장예배를 유지한 교회 사이에 크고 작은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중단할 수 없다. 과거에 전쟁 때에도 예배를 드렸다. 순교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무슨 말이냐!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우리는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자 삶으로 드리는 예배다 라고 합니다.
누군가 ‘무엇보다 예배가 중요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 말에 대해서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중요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는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기 위해서 특정한 장소에 모여야만 하는 걸까요?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참된 예배는 장소에 국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우리는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단지 주일 이 시간에 이 장소에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 삶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고 우리는 삶으로, 우리의 전인격으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지만 이 말에 대해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한 자리에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셨고 함께 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아주 중요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시작될 때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시작되면서부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교회가 모이기를 힘쓰며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가 날마다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성전에서 모였고 집에서 모였고 기쁨으로 함께 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 힘써 모여야 하고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떠합니까?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상황이 좀 어수선할 수 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까 마음껏 찬양할 수 없고 거리를 두고 앉으니까 여기 저기 빈자리가 보이고 허전합니다. 떡과 잔을 직접 떼지도 않고 뭔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1층에서는 영상으로 보면서 예배를 드리니까 현장감도 떨어지고 임시로 드리는 예배인 것 같아서 그냥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예배에 집중하고 마음을 다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영상으로 보고 계신 분들은 마음이 더 풀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예배의 중요성이 나도 모르게 낮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는 구나!’
우리는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예배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혹시 우리에게 예배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있다면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그 중요성을 잊고 있다면 그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바뀐 생각이 우리의 태도를 바꾸고 태도가 바뀌면 바뀐 우리의 태도는 우리의 행동을 바꿀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고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무엇보다 귀하게 생각한다면 예배를 우리 삶에 우선순위에 두고 예배드리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생각이 우리의 행동을 바꾸고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혼자 예배드릴 수 있고 가정에서 예배드릴 수 있고 우리 각자가 처한 곳에서 삶으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예배가 함께 드리는 주일예배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구별해서 함께 주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고 부어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안일한 마음을 바꾸고 함께 드리는 예배의 소중함을 되새기면서 예배의 감격을 새롭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꾸지 않으면 위기에서 기회를 만들 수 없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쓰리고, 세 번째는 “구하고”입니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기 민망해서 혼자 고민하는 질문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나는 왜 예배를 드려도 마음이 뜨겁지 않을까요? 매주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특별히 죄 가운데 있거나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닌데 왜 예배를 통해서 힘을 얻을 수 없을까요?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지금 위기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예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겉으로는 안 그런 것처럼 괜찮은 척할 수 있지만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면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예배에 대해서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다시 예배를 통해서 힘을 얻고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습니다. 은혜 없이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은혜 없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은혜 없이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없습니다.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얼마나 더 은혜가 필요한 상황입니까?
참으로 감사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동정하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과 16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두려워하지 말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사모함으로 그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나라 한 제약회사에서 정말 특별한 약을 개발했는데 그 약을 먹으면 코로나를 치료할 뿐만 아니라 예방할 수 있는 약입니다. 그 제약회사는 특별히 우리나라 국민에 대해서 무료로 그 약을 제공합니다. 다만, 약국이나 인터넷으로 판매가 되지 않고 본인이 직접 회사를 방문해야만 약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귀찮아서 약을 얻을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하겠습니까? 게을러서 약을 구하는 일을 미루고 그냥 그대로 살겠습니까?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면서 기쁨으로 기꺼이 제약회사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 약을 먹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살고자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만나는 은혜가 하는 일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구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면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우리를 살게 합니다.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죄를 이기게 하고 선을 행하게 하고 주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지금의 위기의 상황을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어떠함이나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는 일입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또한 은혜로운 분이시기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합니다. 은혜를 구하고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구합니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 영혼을 만족케 하시기를 우리 마음에 은혜를 채워주시기를 그리고 우리 삶의 자리마다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위기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손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은혜를 경험한 자로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때마다 필요한 은혜를 풍성히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쓰리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코로나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내 삶을 점검하며 예배자로서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함께 드리는 예배의 중요함을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은혜 없이는 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버리고 바꾸고 구하고, 하실 수 있습니까? 그러면 버리고, 바꾸고, 구하고 그리고 나서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결론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예배 가운데 주님을 만나고 우리 삶에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고 우리의 모든 상황 속에서 위기의 상황 속에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다시 말하면, “쓰리고, 위기에서 주님을 만나다”입니다. 우리가 위기의 상황에 있다하더라도 그곳에 주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가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면 위기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위기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을 때 위기의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만난 위기는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 버리고 바꾸고 구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 그러한 수고를 계속 하시겠습니까? 단지, 오늘만이 아니라 매주일 주님을 예배할 때마다 매일매일 삶으로 주님을 예배할 때마다 그러한 수고를 계속 하시겠습니까?
코로나의 상황 때문에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기사로 본적이 있는데 인도의 어떤 사람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수천 킬로를 걸어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합니다. 코로나도 막을 수 없는 사랑으로 그러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 여러분은 그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그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버리고. 바꾸고. 구하고. 그래서 예배 가운데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모든 문제는 그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위기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