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세례 요한의 질문
본문 : 누가복음 7장 18~23절
설교자 : 이병권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여러분, 의심하는 것은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의심은 필요한 걸까요? 아니면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의심을 합니다. 특히 새로운 것이나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른 것이 있으면 의심하게 됩니다. 의심이라는 것이 사람이 가지는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여러 상황들은 우리를 의심으로 이끕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나름의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계속 의문을 제기합니다. 착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악한 사람들이 번창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됩니다. 여전히 계속되는 나의 실수와 죄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용서하심과 사랑에 대해서 의심하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했는데 그 결과가 오히려 좋지 않을 때 우리는 의심이라는 수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도 그러한 의심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했던 이 질문은 모든 사람이 답해야 하는 너무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는 사람, 그래서 질문에 대해서 올바르게 반응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누구나 의심은 가질 수 있지만, 의심이 단순히 의심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의심에 대한 적절한 반응과 그에 대한 답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의심으로 출발하면 도착할 수 있는 두 가지 목적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의심으로 출발해서 믿음에 도착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의심으로 출발해서 불신에 도착할 수도 있습니다. 의심에 대한 우리의 적절한 반응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을 거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심하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반면에 믿음 더 분명히 하기 위해, 더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 의심하는 것은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요한의 질문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도 이 질문에 대해서 분명하게 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18절에서 35절까지 이어지는데, 세 개의 작은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본문은 세 단락 중에 첫 번째 단락입니다. 23절까지의 오늘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단순하게 요한의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 본문을 따라 요한의 질문부터 살펴보고 이어서 예수님의 대답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요한에게 전합니다. 그러자 요한은 제자 둘을 예수님께 보내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여러분, 요한이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오실 그이”라는 것은 메시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대로, 요한은 이미 예수님을 메시아로 소개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예수님께 임하는 것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왜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요?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우리가 세례 요한의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현재 그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요한도 메시아가 오시면 임하게 될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메시아가 두 번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구약에 초림과 재림이 예언되어 있는데, 이걸 같은 것으로 본 것입니다.
우리가 멀리서 두 개의 산봉우리를 보면 서로 붙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산 가까이 가서 확인하면 그 사이에 큰 간격이 있습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초림과 재림도 그러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초림과 재림의 시간적인 간격을 구분하지 못했고, 그래서 메시아가 단 한번 오시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세상 나라는 정복되고 모든 불의는 끝이 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며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은 이 땅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재림 때 완전하게 성취될 일입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그 메시아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떠합니까? 일이 되어 가는 것이 이상합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입니다. 예수님이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며 그의 나라를 세우실 것을 기대했는데, 아닙니다. 지금 자신이 전해 듣고 있는 예수님의 행적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악한 왕들은 여전히 그들의 왕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오실 그이가 왔는데, 기대했던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불의가 끝나기는커녕 로마제국이 정복되기는커녕 압제는 더 심해집니다.
게다가 지금 요한의 처지는 어떠합니까? 누가는 요한이 감옥에 갇힌 사건을 이미 3장에서 소개했습니다(3:19~20). 요한은 헤롯 안디바의 잘못을 지적함으로 그의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외쳤는데, 지금 요한은 감옥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택하심을 받은 선지자로 출생부터 남달랐던 요한, 많은 사람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며 강력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던 그가, 지금은 어두운 감옥에 갇혀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그분이 맞는 건가? 정말 우리를 구원하실 그 메시아인가?’ 이것은 요한에게는 풀리지 않는 숙제였습니다. 메시아의 오심에 앞서서 그의 길을 준비했던 요한, 그 요한이 지금은 자신이 소개한 그분에 대한 의심으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그분”이신가? 아니면 또 하나의 선지자에 불과한 것인가? 다른 이를 또 기다려야 하는가? 의심할만한 상황에서 요한에게 생긴 질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미 보았기 때문에 너무도 쉽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로 그 메시아, 오실 그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이 땅에 오실 때는 고난 받는 종으로 오셨고, 머지않아 다시 오실 때는 영광의 왕으로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요한을 통해서, 그리고 그가 예수님께 한 질문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기 위해 갈등해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의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확인하려고 합니다. 의심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심만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 열린 마음으로 진리를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 의심과 불신은 다릅니다. 의심하는 것을 두고 부족한 믿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의심하지 않고, 덮어두고 무조건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영문도 모르고 무턱대고 ‘믿습니다’를 외치며, 강단에서 무슨 말을 하든지 ‘아멘, 아멘’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앞에서 뭘 말하는지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무엇을 믿으라고 하는지 의심해 봐야합니다. 진리를 깊이 알기 위해서 질문하고 의심을 품는 것은 영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의심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거부하기 위해, 하나님을 끝까지 부인하기 위해 가지는 의심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위험한 것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더 알기 위해 하는 의심은 좋은 것이며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그래서 요한은 질문합니다. 자신의 의심에 대해서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0절을 설명하면 이러합니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말을 누군가에게 전한 것을 누군가가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의 말을 예수님에게 전한 것을 누가가 기록한 것입니다. 특별히 20절은 19절의 요한의 질문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요한의 질문에 대해서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했던 질문, 세례 요한의 이 질문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질문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정말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입니까? “당신이 참으로 진리가 되십니까? 제가 당신을 신뢰해도 됩니까? 당신께 제 인생을 맡겨도 되는 겁니까? 당신은 정말 제가 믿고 따라도 되는 분이십니까?“
여러분은 이 질문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당신이 그 메시아,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이 저에게 참된 인생을 알게 하신 분이십니다. 당신이 제 삶의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자가 진정으로 복 있는 자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바로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질문을 받으신 후, 그들에게 바로 대답을 주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많은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그런 후에 요한의 질문에 대해, 그의 의심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22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여러분, 이 대답이 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라고 물으면 ‘맞다’, 혹은 ‘아니다’ ‘그렇다, 내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메시아다’라고 대답해야 될 것 같은데, 예수님은 왜 이렇게 길게 대답하셨을까요?
이 예수님의 대답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이사야가 예언했던 메시아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실 때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예언이라는 포장을 하셔서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그 예언 가운데 이사야 35:5을 보면, 제가 읽어 드릴 테니 잘 들어보십시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사 35:5-6) 그리고 61:1을 보면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훗날 메시아가 왔을 때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믿게 하시려고,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들을 미리 7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예언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신 이유는 바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리시되 자신의 주장만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절대적으로 ‘그렇다’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메시아이십니다. 오시기로 약속된 그 분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라도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예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의 대답을 전해 들은 요한이 어떻게 반응했을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요한은 구약 성경을 잘 아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신 대답을 금방 알아듣고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단순히 ‘그렇다, 내가 오실 그이다.’라는 대답보다 훨씬 더 큰 울림으로 이 말씀을 받았을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다른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이 일로 인해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요한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자신이 성취하고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의심도 다루실 수 있고, 어떤 질문도 대답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에 대해서 의문이 있으십니까? 그가 어떤 분이신지 의심이 드십니까? 예수님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지 확신이 서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이런 의심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진리 위에 든든하게 설 수 있을까요? 나의 열심입니까? 나의 체험입니까? 나의 확신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들로 우리가 진리 편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로 우리의 의심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기초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자신을 증명하셨다면, 예수님이 말씀을 붙드셨다면,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마음에 의심이 있으십니까? 질문이 생기십니까? 괜찮습니다.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으십시오. 성경은 우리가 가지는 갈등과 의심에 대해 정직하게 열려 있습니다. 자신을 속이지 마시고 그 의심을 가지고 도움을 구하십시오. 나의 의심을 있는 그대로 다룰 때, 그 의심에 대한 해결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진리 위에 굳건하게 서기를 원한다면, 내 생각과 내 경험과 내 주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좇고 있는 것, 사람의 마음을 확 잡아끄는 뭔가를 붙들어야 할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결국은 아닌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진정한 성공은 오직 진리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진정한 축복은, 세상이 말하는 가짜 말고 진짜 행복은 진리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계시해주셨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본을 보여주셨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성령님을 통해서 지금도 가르쳐주시고 인도하심으로 우리가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계속해서 우리가 함께 믿음 안에서 이 진리의 길을 걸어갑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거절하며 진리를 떠나 멸망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떠나 방황하며 헤매고 있습니다. 진정한 복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23절입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실족하는 자는 비유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거나,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후로부터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기를 거절했고,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 되신 예수님을 부인함으로 실족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 되신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향한 믿음을 가지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참된 복을 얻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말씀에 대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께 걸려 넘어질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아니면 멸망의 길로 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받아주시고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진짜 복을 허락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미 믿은 분들도 살아가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의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였던 요한도 의심했습니다. 이게 정말 진짜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의심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믿는 바를 더 분명히 하기 위해, 의심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진리에 대해서 더 분명히 알고 그 진리 위에 굳건히 서기위해 수고하십시오.
혹시, 여러분 중에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의심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 나의 인생이 너무 힘겹고, 어렵게 느껴지십니까? 때때로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지금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지금 내가 너무 힘든데, 내 인생 가운데 당신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이 힘든 과정에 있는 나를 붙잡아주시기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 어려움이 내가 더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붙잡아 주고 계십니다.
그러니 의심을 뛰어넘어서 진리를 찾으십시오.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사람에게 필요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을 정복하고 이 땅에 속한 나라를 세우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먼저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러 오셨습니다. 사람들의 강퍅한 마음을 만지시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셔서 그들의 마음을 바꾸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며,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의심이 생길 때, 내 인생의 초점과 방향을 보다 덜 나 자신에게 두고,
보다 더 주님께 두십시오. 그러면 보다 더 선명한 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주님이 보여주시는 답을 받아들이며, 주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믿음으로 따라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들
1. 세례 요한은 현재 어떤 상황 가운데 있습니까?
2.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한 질문은 어떤 의미입니까? 요한이 오해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은 요한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4. 당신이 진리에 대해서 의심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보십시오. 어떻게 그 의심을 해결했습니까?
5.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된 자는 누구입니까? 어떻게 그 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6. 당신이 예수님을 신뢰하며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데 있어서 더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7. 오늘 말씀에서 당신에게 교훈되었던 내용을 나누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