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 충만 증인

본문: 사도행전 2장 1-13절

설교자: 조정의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건을 살펴보기 원한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열흘 뒤, 오순절 날에 일어난 사건이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주의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실 때 아버지께 요청하여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4:16-26; 15:26-27; 16:7-11). 성령은 그들을 고아처럼 방치하지 않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예수님을 증언하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분이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고 말씀하셨는데(눅 24:49), 그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 성에 머물렀던 120여 명의 제자가 함께 기도에 힘쓸 때, 예수님의 약속대로 위로부터 능력의 성령이 그들에게 입혀졌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다(행 1:5).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다(행 1:8).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땅끝까지 전파될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은 성령 하나님의 강림으로 시작되었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임하여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하게 입혀주심으로 그리스도의 증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준비 시켜 주셨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어쩌면 당신은 왜 오늘날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지금도 많은 오순절 주의 교회들에서 뜨거운 찬송과 함께 모든 성도가 방언으로 기도함으로 오늘 본문에서 일어난 사건을 똑같이 재연한다. 성령 하나님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증인에게 같은 방법으로 능력을 부어주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우리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능을 주신다고 믿는가? 우리 가운데 임하고 계신다고 믿는가? 말씀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자.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당신에게 진실로 성령께서 함께하시고 충만한 능력으로 증인의 일을 하게 하신다고 굳게 믿어 기쁨으로 증인의 일을 담대하게 하기를 원한다.

1. 초자연적인 성령의 강림(1-3)

먼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는지 누가가 기록한 구체적인 역사 증언을 살펴보자. 성령 강림의 역사는 단지 제자들의 착각이나 환상 체험이 아니다. 제자들이 만들어낸 허구가 아니다. 초자연적인 성령 하나님의 역사다.

언제: 사건은 오순절 날에 일어났다(1절). 오순절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절기인 칠칠절과 같은 날이다(출 34:22; 신 16:10). 유월절 다음날 보릿단을 하나님께 바치고 나서 7주째(7X7, 50일째-‘펜테코스테스’) 되는 날에 지켰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 불렀다. 밀을 추수한 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라서 “맥추절”이라고도 불렀다(출 23:16). 기본적으로 오순절(맥추절, 칠칠절)은 추수감사절과 같이 수확의 기쁨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며, 유월절, 초막절과 함께 유대인의 3대 절기로 유대 성인 남성이 모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 날이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식사하시고 첫 열매로 제물로 바쳐지신 후, 오십일 째 되는 날 성령이 강림하셨고,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모인 수많은 사람 중 삼천 명을 수확하게 하셨으니 오순절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났다고 볼 수 있다. 주님의 승천 후 열흘 뒤 있었던 이 사건 이후로 오순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강림절’로 기념되고 있으며 다음 주일이(5/31) 바로 성령강림 주일이다(2:5, 41). 

어디서: 장소는 그들이 다같이 모였 한 곳이다(1절). 2절에서는 “그들이 앉은 집”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모든 제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했던 다락방이었을 것이다(1:13). 그들은 1장 14절에 나오는 것처럼 다락방에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공중 기도로 모였는데, 그 첫 시작은 오전 9시(“때가 제삼 시니”, 2:15)였다.

어떻게: 성령 강림은 홀연히, 갑자기 일어났다.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능력이 자연적인 일상을 깨고 일어났다. 어디서부터? 하늘로부터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신 초자연적인 역사였다(눅 11:13).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내려온다. 가장 좋은 선물, 은사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셨다(약 1:17).

성령님은 영이라서 볼 수 없지만, 성령의 강림은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일어났다. 먼저 소리가 있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했다.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 같은 소리였다. 공기의 흐름이나 이동이 없는, 하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 때 일어나는 매서운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다. 집 안에서 집 밖에서 일어난 무서운 태풍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는가?

성령은 또한 불의 모양처럼 보이도록 임하셨다(3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였다. 마치 갈라진 혀의 모양 혹은 갈라진 불꽃 모양으로 성령이 나타나셨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임재는 불을 동반할 때가 많았다.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 떨기나무에 붙은 불 속에서(출 3:2),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실 때 불기둥으로 함께하셨다(출 13:21; 신 4:33).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바로 그 하나님의 영광을 마치 불이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모양 속에서 목격했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마치 갈라진 혀의 모양으로 나타나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든 증인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하셨다(3, 11절). 판타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실제 역사 속에 그런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120여 명의 제자를 수퍼 증인으로 세우신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능력이 생겼을까?

2.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증인(4)

성령은 단지 제자들 위에 임하여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충만하게 하셨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어떤 능력을 받았을까?

지혜: 구약시대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성막을 지었다(출 35). 리더십: 여호수아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지혜가 충만하여 모세를 이어 백성을 율법대로 인도했다(신 34). 파워: 삼손은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사자를 찢어 죽이고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을 천명을 죽였다(삿 14-5). 영향력: 세례 요한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사역을 담당했다(눅 1). 표적: 예수님은 성령 충만함을 받고 권위 있는 말씀 사역과 능력 있는 기적을 베푸셨다. 그러면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증인은 어떤 능력을 받았는가?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4절). 외국어 능력. 학습의 결과가 아니다. 기존에 익혔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 것이 아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전혀 알지 못했던, 연습한 적이 없는 말을 초자연적으로 한 것이다. 성령의 능력에 따라서 말이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말하기 시작한 것은 외계어 혹은 천사의 말이 아니란 것이다. 그들은 다른 언어들로 말했다. 실제 사용하는 언어(디아렉토스-지역 언어), 그것도 이어서 등장할 청중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했다(8절).

성경에서 이와 같은 방언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 12-14장에만 언급된다. 어떤 사람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 방언을 두 종류의 다른 방언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은 인간의 언어, 고린도전서는 천상의 언어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바울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라고 말했기 때문에, 천사의 말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늘의 소리 방언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금 말씀에서 바울은 과장법을 사용한다. “내가 만일…할지라도.”

같은 논리로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고전 13:2),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고전 13:3), 이 표현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바울은 “부분적으로 알고”있다고 이어서 말했다(고전 13:9). 또한, 바울은 “방언도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고전 13:8).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방언은 외계어가 아닌 외국어로 사도들이 활동했던 시기, 그들을 통해 신약성경이 기록된 시기 이후로 그쳤던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였다고 볼 수 있다.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은 모두 외국어를 통해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같다.

또한 사도행전의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성령 충만하여 방언하는 경우는 오직 세 차례, 오늘 본문에서 한 번, 첫 이방인 고넬료 집안 사람들이 구원받고 세례받을 때 한 번(10:46),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리며 요한의 세례만 경험한 이들에게 바울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을 때(19:6)뿐이다. 모든 믿는 자가 구원받을 때 방언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면 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들이 방언을 했을까? 증인의 사명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사명을 주셨다. 장차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사람을 모든 민족과 방언 가운데 불러 모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언어는 그들이 복음을 전해야 할 다양한 민족을 의미했다.

많은 사람이 오순절에 내린 성령의 능력은 바벨탑 사건 때 벌어진 저주를 극적으로 역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창 11).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지려던 교만한 죄인들을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온 지면에 흩으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증인을 통해 흩어진 민족을 하나로 모으시려 하신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부르신다. 그래서 성령께서 충만한 능력을 더하셔서 제자들의 입으로 여러 언어를 말하게 하신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큰 일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오래된 유대인의 관습과 편견 때문에 제자들은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꺼렸고, 그들이 구원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방인 그리고 요한의 세례만 경험한 이들이 그들과 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들이 모든 민족에게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행 10:47-48; 19:6). 

결론적으로 방언은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복음 전파와 사명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신호탄이었다. 표적이었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전달할 메시지, 증인으로서 증거할 내용이다. 표적만으론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당시 일어난 반응을 보자.

3. 성령 충만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5-13)

그때에 곧 오순절에, 율법에 철저한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5절). 유대 주요 명절인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왔을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의 우여곡절 많은 역사 가운데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디아스포라 유대인, “나그네”-10절). 

그들은 9절부터 기록된 대로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그리고 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구레네, 리비야, 로마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그레데인, 아라비아인이었다(15곳, 9-11절). 오늘날 인터넷으로 세계 지도를 확인할 수 있는 우리가 볼 땐 천하 각국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당시엔 알려진 모든 장소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토종 유대인도 있었고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다(10절).

실제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각 지역마다 체류하고 있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으며, 오늘날 대륙의 구분에 따라 6대륙으로 볼 때, 발견되지 않았던 남극과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빼고,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증인들의 예행연습, 훈련 과정처럼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모든 민족의 일부를 예루살렘에 불러모아 증인의 역할을 하게 하셨다. 그리고 성령 충만에 따른 방언은 확실히 주목을 이끌었다.

방언의 소리가 나자 큰 무리가 모여 소동하였다. 소동했다는 말은 경악하고 혼란스러워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모두 다 놀랐고 신기하게 여겼다. 행색이나 발음을(사투리, 억양) 보면 분명히 갈릴리 사람이 맞는데, 제자들이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아마도 다락방에서 나와 큰 무리와 함께 있을 만한 장소로 이동했을 것 같다. 무리는 다시 한번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이 어찌 된 일이냐”라고 말했다(12절). 확실히 성령 충만에 따라 나타난 방언은 표적으로서 무리의 관심을 집중하게 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종종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를 보면서 그 아기가 “내가 말 못 하는 줄 알았지?”라고 말하면 얼마나 놀라고 무서울까 상상한 적이 있다.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모두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놀라며 당황하고 신기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그 놀라운 일은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다. 표적이 그렇다. 표적은 그에 따른 메시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성령 충만에 따른 방언의 표적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오해만 산다.

13절에 나오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오히려 제자들을 비웃었다. 조롱했다. 새 술 곧 발효되지 않은 포도 곤죽에 꿀을 첨가하여 더 높은 알코올 농도와 달콤함을 자랑하는 술에 취하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증언이 없는 성령의 능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능력은 증인이 증인의 역할을 하라고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하나님의 큰 일, 구원의 일을 이루라고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놀라고 당황하고 신기해하고 오해하여 조롱하는 무리에게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소리 높여 외친 것이다(2:14). 증인의 첫 증언이 시작됐다. 표적이 가리키는 참 메시지가 선포된다.

이것이 오늘 그리스도의 증인인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의 증인인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엡 5:18).

존 스토트는 이런 말을 했다.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불가능하기까지 할 것이다. 생명을 주시는 분이 없으면 생명은 있을 수 없고, 진리의 영이 없으면 깨달음이 없으며, 성령의 연합이 없으면 교제가 없고, 성령의 열매를 떠나서는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지닐 수 없고, 그분의 권능 없이는 효과적인 증언을 할 수 없다. 호흡이 없는 육체는 시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이 없는 교회는 죽은 것이다”(사도행전, BST, 83p).

물론 성령은 오늘날 우리에게 방언의 표적을 주지 않으신다. 하지만 성령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교제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지니게 하신다. 그래서 효과적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신다. 

성령이 주신 지혜로 말씀을 깨달아 가르치는 다섯 마디 말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데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고전 14:19). 그리스도를 닮아 겸손하고 사랑하고 온유하고 오래 참고 자비를 베풀고 절제하고 충성하는 삶이 일만 마디 방언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된다(갈 5:22-23). 참된 성령의 능력은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보다, 세상 사람이 겪는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을 똑같이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큰 사고를 당하게 하신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내게서 빼앗아 가신다면, 그래도 오직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으로 만족하며 기쁨으로 증인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나아가 사도들의 순교사를 보며 과연 이런 극적인 상황에서 주를 배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해 봤다. 사실 그럴 자신도 능력도 우리에게 없다.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눅 12:11-12). 

성령께서 하신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성령이 일하신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과 환난, 고난과 슬픔, 비방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기쁨으로 담대하게 선포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다.

일만 마디 방언보다 그 능력이 훨씬 더 크고 강력하다. 그 능력을 구하라. 매일의 삶 속에서 조금 더 말씀의 지혜를 얻게 해 달라고 구하라. 조금 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성품과 인격 속에서 성령의 열매 맺게 해달라고 구하라. 세상을 이기고 염려와 자랑과 유혹을 피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대상을 오직 그리스도로 삼게 해달라고 구하라. 성령님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증인인 당신과 함께하신다. 성령님은 언제든지 말씀을 통해 당신을 충만하게 하실 수 있다. 능력을 더하신다. 성령이 함께 하시니, 매일 기쁘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며 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