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설교자 : 조성훈
이 말씀은 짧으면서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항상 기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항상 기도하기도, 범사에 감사하기도 참 어렵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보면 기뻐할 때가 많습니까,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기뻐할 일들이 사라집니다. 저는 곧 태어날 손녀를 생각할 때 안쓰럽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공부해야 할 것을 준비해놓습니다. 직장생활을 생각할 때 어떻습니까? 그렇게 기뻐할 일이 없습니다. 가정을 보면, 사회를 보면 기뻐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북한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정치인들을 보면 기뻐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가끔 잠시 기뻐할지라도 대체로 그렇게 기뻐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 자신을 보고 기뻐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시선을 여러분의 환경을 보지 말고 여러분의 내부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어떻습니까? 더욱 탄식할 일이 많습니다. 실망하고 싶으면 환경을 보라, 절망하고 싶거든 내 자신을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들여다볼 때 더욱 절망스럽습니다. 내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누군가가 미국에서 1조원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제 마음이 어땠을까요? 전혀 마음이 기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지만 여러분이 1조원에 당첨되었다고 할 때 기쁠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내부로 향해 보면 기뻐할 일이 더욱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육체에서 해방되기를 더욱 간절히 기다립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아도 절망스러운 일 뿐인데 왜 기뻐하라고 말할까요?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 안에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할 때, 우리가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우리의 기쁨이 없는 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기뻐할 수 있는 요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쁨이 없는 곳을 바라보고 있기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기뻐했던가요? 그렇습니다. 다른 편지들을 보면 그는 계속해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가 그런 찬양을 불렀던 것은 마음속에 기쁨이 솟아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았던 환경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환경, 더욱 기뻐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시선이 환경과 자신이 아닌, 주님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환경을 보면서 탄식했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두들겨 맞고 강도의 위협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향했을 때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했습니다. 우리도 역시 그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향하게 될 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의 삶에서 시선을 어디에 두고 삽니까? 많은 분들이 여러분의 시선을 기뻐할 수 없는데 두고서 기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광주에 내려갈 때 3시간 거리를 7시간 걸려서 갔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목숨을 걸고 갔습니다. 제가 그 위험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갔을까요? 환경은 우리를 기쁘게 만들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금 기뻐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직장이 나아지면, 월급이 많아지면, 대통령이 좋은 사람이 되면 나아지리라 생각하지만 그런 기대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골로새서를 보면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고 말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하늘에 고정시키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나요?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위에 있는 성을 바라보고 땅에서는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많은 믿음의 신앙인들이 그들의 시선을 하늘에 두고 이 땅의 삶을 살았습니다.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런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시선을 하늘에 두고 이 땅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항상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렵습니다. 특별히 기도에는 사단의 방해가 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많은 것들을 쌓아두시고 원할 때마다 하나씩 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도를 하든지 안 하든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인도하시지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의 삶을 살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무릎을 꿇습니까? 내 힘으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삶에 어려움이 별로 없는 사람은 무릎 꿇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생기면 예컨대 갑자기 자녀가 사고를 당하면 바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별 어려움이 없으면,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싸움입니다. 기도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시면 이 땅에서 가장 복된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대화가 중요합니다. 주님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늘 주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기도를 해도 집에 가서는 기도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새벽 기도와 낮 기도가 다르지 않고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과 집에서 기도하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세 번째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할 때 기쁨의 요소를 찾을 것입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월급을 남들보다 더 받아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사에”라는 말은 모든 경우를 말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너무나 아름다운 동네이고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고 나무들이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데 살면서도 불평한다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불평을 했을까요, 안 헀을까요? 한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불평이 많았습니다. 환경이 좋아도 환경이 우리를 기쁘게 만들고 감사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미얀마에서 형제들이 와서 저희 집에 와서 지내는데 매 끼마다 달걀을 먹었습니다. 미얀마에서 달걀을 못 먹은 한이 있어서 매일 그렇게 먹었던 것입니다. 그가 아마 이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불평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왕들처럼 잘 먹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잘 사는 사람들과 비교하고 감사하지 못할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제가 외국에 가서 풍족하고 화려한 환경을 보고 와서 그런지 한국에 와서는 그것과 비교해서 자꾸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굶지 않고 먹을 것이 있다는 것, 건강이 있다는 것,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환경이 얼마나 풍족한지 매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광주에 갔을 때 치과 치료를 받았는데 정말 싫은 일이었습니다. 치아를 기계로 갈면서 주님을 믿을 것인가 핍박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참 제가 감사할 일입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 멋진 사람, 돈 많은 사람, 근사한 사람들을 두고 자신을 비교할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가난한 자 같으나 부한 자이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면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하늘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을까요?여러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안다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모든 것이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안다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과 생각이 머물지 말아야 할 곳에 머물 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단이 그렇게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그렇게 속였듯이 말입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계속해서 세상이 우리에게 심어주는 생각들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보고 자녀를 다른 자녀와 비교하여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경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환경은 우리가 기대할 수 없는 것인데 우리는 자꾸 기대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늘에 붙잡아 매지 않으면 이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께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고 감사의 제목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백성인 것이 나타나고 주님이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기뻐할 수 있기에 기뻐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시선을 환경이나 여러분 자신에게 고정시켜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할 이유는 한 시도 주님이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구속하신 은혜와 하늘나라의 영광을 생각하고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세상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