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생활 속 마음 두기
본문: 요한삼서
설교자: 조정의
지난 2월부터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성도들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성도와의 교제에서 멀어지고 있는 위기감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생활 속에서 특별한 마음을 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 마음은 오늘 우리가 살펴볼 요한삼서에서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성도에게 권했던 마음이다.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이 서신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시대 반드시 품어야 하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성도를 향한 마음을 배우게 하시길 기도한다.
먼저 요한삼서를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요한삼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 자신을 제외한 열한 사도가 이미 순교한 시점인 90-95년, 에베소에서 사역하며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교회를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돌아보면서 쓴 편지(서신)가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이다. 그중 요한 삼서는 가이오(‘기쁨’)라는 특정 인물에게 쓴 편지이고, 300자가 되지 않는 짧은 서신이다.
아주 짧고 개인적인 편지이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쓴 사도 요한의 이 편지를 통해 우리는 장로가 자신의 영적 돌봄을 받는 사랑하는 성도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이 권한 그 마음이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전달되어 위기의 시기 마땅히 힘써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1. 당신이 진리 안에서 행하기를 원합니다(1-4절)
요한삼서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구절은 2절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품은 깊고 친밀한 사랑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표현은 가이오가 뭐든 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막연한 기대와 거리가 멀다(장사, 건강). 무게중심은 영혼의 잘됨(건강함)에 있다. 이미 요한은 가이오의 영혼이 건강하다는 걸 알았다. 형제들을 통해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증언을 듣고 심히 기뻐했다(3절). 사도 특별히 영혼을 돌볼 책임이 있는 장로로서 요한에게 있어서 최고의 기쁨은 성도가(내 자녀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4절).
직접 대면하여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요한은 편지를 통해 가이오가 진리 가운데 행하고 있음에 참으로 감사한다. 그의 영혼이 진리를 통해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육체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건강하고 형통하기를(풍요롭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축복한다.
코로나 19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면서 장로로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면, 사도 요한과 같은 마음이 절실해진다. 성도의 건강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성도의 경제적 상황을 하나님께서 돌아보시기를 그래서 필요한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공급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바라는 것은 성도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 영적인 건강, 영혼의 잘됨이다.
어떤 성도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지만, 가장 기쁜 것은 그가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소식을 듣는 일이다. 심지어 건강과 경제적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고 진리 가운데 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랑하기 때문이다.
요한의 가이오를 향한 사랑은 아주 특별했다. 이 짧은 편지에 다섯 번이나 “사랑”이라는 말을 썼다(1, 2, 5, 11). 가이오를 “사랑하는 가이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불렀다(1절). 원래 사도 요한이 사랑꾼인 건 사실이지만(120번 ‘사랑’ 사용), 그의 사랑은 막연한 느낌과 감정이 아니었다. 1절의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는 우리말 성경에서 “나는 진리 안에서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번역되었다(‘참으로’ = ‘진리’).
이처럼 성도의 사랑은 진리 안에서 시작되고 자란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진리가 성도가 함께 나누는 사랑의 뿌리이다(요이 1:1-3). 그래서 진리를 더욱 사랑할수록, 성도는 더욱 서로 깊이 사랑할 수 있다. 반대로 진리를 완전히 떠난 형제자매는 기도의 대상이 될지언정 친밀한 사랑의 대상에서 끊어진다. 우리의 사랑은 영원한 진리 안에서 시작되고 자란다. 그래서 성도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 된다.
생활 속 거리 두기가 계속되면서 진리에서 거리를 두는 성도가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각 사람이 진리 안에서 행하기를 더욱 힘쓰기 원한다. 우리가 서로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랑의 뿌리인 진리에서 뽑히지 않고, 힘없이 겨우 붙어있지 말고, 더욱 강력하고 건강하게 뿌리 내려 견고하게 심겨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므로 진리의 하나님을 간절히 찾자. 진리의 말씀을 항상 가까이 두자. 은혜와 진리가 풍성하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깊이 생각하자.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간구와 더불어 기도에 힘쓰자.
2. 당신이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기를 원합니다(5-12절)
요한은 편지 본론에서 가이오를 칭찬한다. 가이오가 나그네 된 자들에게 신실한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5절). 나그네는 주 안에 한 형제였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는 순회 사역자들이었다(7절). 그들은 이방인 곧 주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뭔가 바랄 수 없고 요구할 수 없었다(7절). 가이오는 그런 그들을 영접하고(8절), 하나님께 합당하게 섬기고 전송했다(6절). 순회 사역자들이 쉴 곳, 먹을 음식,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여 돌려보낸 것이다. 가이오의 접대를 받은 이들은 나중에 교회 앞에서 가이오가 베푼 사랑을 증언했다(6절). 그래서 요한은 가이오를 칭찬한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하며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8절).
하지만 모든 성도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된 것은 아니다. 매우 교만하여 자기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요한은 그의 실명을 공개하여 꾸짖었다. 디오드레베(9절).
디오드레베(‘제우스에게 양육을 받은 자’)는 가이오와 한 교회 사람이었는데, 그는 가이오와 180도 다른 마음을 품었다. 9절에 기록된 것처럼 요한이 두어 자를 써서 교회에 사역자를 천거했는데(12절에 편지를 들고 간 데메드리오를 소개하듯, ‘데메테르 여신을 섬기는 자’), 디오드레베는 요한이 보낸 형제를 맞아들이지 아니하고(9절), 악한 말로 요한을 비방하고(10절), 심지어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막고 교회에서 내쫓았다(10절).
도대체 왜 그랬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으뜸되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9절). 어쩌면 그는 교회 안에서 권력을 잡기 위해 사도 요한의 요청을 거부했을 것이다. 요한을 비방하며 자신이 더 큰 권위를 가졌음을 내세웠을 것이다. 요한의 말에 따라 형제를 영접하려는 자들에게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기 위해 징계를 내렸을 것이다. 요한은 사도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니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이 편지를 통해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라고 무섭게 경고했다(10절).
이처럼 교만한 사람은 성도를 돌아보고 섬기는 일에 인색하다. 자기만 안다. 자기 유익을 먼저 구한다. 자기 인생만 챙긴다. 장로의 권위를 인정하는 마음도, 성도에게 신실히 행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심지어 다른 성도가 신실하게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도 부담스럽고 꼴사납다. 더 큰 문제는 교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의심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11절에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다고 말했다.
코로나 19로 성도와 거리를 두면서 우리는 이 점에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점점 성도를 섬기고 돌보는 일에서 멀어지면서 우리는 교만해질 수 있다. 자기 삶만 챙기고 성도를 돌보고 사랑하는 일을 행하는 것은 마치 원래부터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까맣게 잊고 살 수 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성경으로 가르쳐도 ‘지금 이 시국엔 가만히 있는 게 좋지, 왜 쓸데없이 부담을 주는 거야’라고 비방할 수 있다. 말씀에 순종하여 어려운 상황에도 신실하게 성도를 섬기고 돌아보려는 이들이 부담스럽고 꼴사납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의 권면을 들어야 한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11절). 무엇이 선한 것인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영접하고 돌아보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섬길 수 있다.
가장 먼저 성도를 향한 거리 두기가 아니라 마음 두기를 실천하라. 성도에게 연락하여 영혼이 잘 되고 있는지 안부를 물어라. 특별히 점점 진리에서 멀어질 것 같은 연약한 형제자매를 돌아보라. 성도를 집으로 영접하여 위로하고 격려하라.
첫 번째로 요한이 가이오게에 말한 “진리 안에서 행하라”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라면, 두 번째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라”는 성도와 성도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첫 번째가 영원한 진리이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일이라면, 두 번째는 같은 진리 안에 하나 된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일이다. 생활 속 거리 두기가 계속될수록 우리는 하나님과 거리 좁히기, 성도와 거리 좁히기에 더욱 힘써야 한다.
3. 당신과 대면하여 말하기를 원합니다(13-15절)
마지막으로 요한은 가이오에게 끝인사를 남기는데,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볼 때 굉장히 의미 있는 말을 했다.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13-14절).
비대면. 대면. 요즘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 있다(쓸 것이 많으나). 하지만 그는 글로 쓰기를 원하지 않았고 직접 대면하여 말하고 싶었다. 요한만 그런 것이 아니다. 15절을 보면 여러 친구가 가이오에게 문안했다. 가이오와 함께 한 친구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들어 내 대신 문안해달라고 요청했다.
요한이 편지할 때 그리스도인이 처한 환경은 코로나와 똑같진 않았어도 결코 편안하고 쉬운 환경은 아니었다. 그리스도인의 집회는 유대인과 로마인의 비방과 핍박을 받았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순교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요한의 편지와 바울의 편지 등 사도의 편지에서 우리는 성도가 함께 모이기를 원했던 간절한 마음을 발견한다. 비대면 하는 상황에 슬퍼하고 속히 대면하여 말하기를 원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이 서로를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카톡이나 문자나 전화로 연락할 수 있지만, 속히 보고 대면하여 말하고, 서로의 영적, 육체적, 경제적 건강을 확인하고 문안하고 싶어하게 되기를 원한다. 직접 만나서 서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하며,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도록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기를 원한다.
마틴 루터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 시에서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라고 노래했다. 코로나 19가 우리의 재물과 건강을 빼앗아 갈지 몰라도, 절대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진리를 빼앗을 수 없다. 그 진리 안에서 행하는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영원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더욱 함께 힘써 일하는 자가 되자. 코로나가 우리의 거리를 멀게 만들어도, 간절히 보기 원하고 교제하기 원하고 격려하고 세워주는 자가 되자.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중에도 하나님과 성도를 향한 마음 두기에 항상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