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산 소망
본문 : 베드로전서 1:3-5
설교자 : 조정의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저는 지난 시간에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베드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연약한 인간 시몬 바요나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도로 세우시고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는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이어서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 소아시아 성도들이 하나님께 어떠한 택하심을 받았는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으로 택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성령님을 통해 거룩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인하여 택하셨다는 사실, 그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 안에 은혜와 평강이 넘치리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으로 이 편지의 인사말 부분을 마친 베드로는, 오늘 본문인 3-5절에서 매우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3절이 원어 성경에서는 “찬송하리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구약의 시편에서 자주 사용하던 표현으로(“여호와를 찬양하라”, “송축하라” 등) 찬송시의 표현입니다. 즉 이 말씀은 베드로가 기록한 찬가(讚歌)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편지의 인사말을 마친 후 바로 찬송시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받는 소아시아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1:6). 소아시아 성도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6절을 다시 보면, 근심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크게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어려움 중에 있던 사람이 크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지만 작은 희망을 보게 될 때 기뻐합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으면 재정적으로 도와줄 든든한 친구를 만날 때 그래서 그가 도와줄 수 있는 희망이 보일 때 기뻐합니다. 임산부는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 고통이 곧 멈출 것이고 사랑하는 아이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아시아 성도들이 여러 시험을 당하는 중에도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소망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베드로가 찬송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들의 기쁨의 이유는 ‘소망’이었습니다. 3절에서는 ‘산 소망’, 4절에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 그리고 5절에서는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베드로가 찬송하고 있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3). 바로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말에는 ‘아버지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거하는’ 원리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이시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그리스도께서 연결하신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주는 이름, ‘그리스도’를 베드로는 1-3절에서 4번이나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유업을 받을 자이시고(갈 4:7), 우리 역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유업을 잇게 된 것입니다.
찬양의 대상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찬양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신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시고 어떻게 지키시며 보호하시고 이루고 계신지, 베드로가 찬양하고 있는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구원의 창시자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3) 여기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시작하신 동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동기는 바로 하나님의 많으신 긍휼 때문입니다. 긍휼은 자비와 비슷한 말인데 ‘궁핍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은혜’가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는 호의’를 가리킨다면, ‘자비(긍휼)’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죄인의 비참한 상태를 아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그 자비와 긍휼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비참하고 불쌍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모든 죄인은 참담하고 무력하며 거짓된 마음과 악한 정욕, 부패한 영혼을 가지고 영원한 멸망 길로 달려가고 있는 “진노의 자녀”들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4,5)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는 우리가 뛰어나서, 우리에게 가치가 있어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유익을 얻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암울한 환경에서 태어나 버려진 아이를 입양하는 양부모처럼 말입니다. 베드로는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친히 구원을 시작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구원을 시작하실 때 사용하신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3)입니다. 버려지고 불쌍한 아이를 입양하는 부모는 있지만 그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친자녀의 목숨을 내어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 자신에게 있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택하신 방법이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가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진노의 자녀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베드로가 찬양한 것은 이와 같은 구원을 시작하신 하나님입니다.
둘째, 구원의 책임자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셨을 뿐 아니라 구원을 지키시고 계십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4). ‘산 소망’의 다른 표현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입니다. ‘유업’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 200번 이상 사용되고 있는데 장차 받게 될 땅, 재물, 재산 등을 가리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땅을 말씀하실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이라는 형용사는 세상의 재물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썩지 않는 것’은 변질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세상의 어떤 물건도 변질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또한 ‘더럽히지 않는 것’은 오염이나 얼룩이 묻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 역시 세상에는 없습니다. ‘쇠하지 않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름답게 핀 꽃이 바람이 불고 시간이 흐르면 땅에 떨어져 말라 버리고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게 되는데,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 ‘쇠한다’는 말입니다. 가치가 변질되고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은 모두 시간이 흐르면 그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변질되고 더렵혀지며 화려한 것이 초라해지고, 싱싱한 것이 썩어집니다. 새로운 것도 헌 것이 되고, 좋은 것은 쓸모 없는 것으로, 강했던 것은 약해집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 세상의 재물과 재산을 소망으로 두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찬양하고 있는 소망과 유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유업입니다. 이것을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간직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 마태복음 6장에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하면서 그곳은 썩지 않고 도둑도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유업은 하나님이 지키고 계신 영원한 것입니다.
셋째, 베드로는 구원의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5).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시고 그것을 하늘에 간직하셨으며 이제 오늘날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점에서 구원을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순간 의롭다 하심을 얻지만(그것은 하늘에 간직하신 절대 변하지 않는 굳건한 것이지만), 우리는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더욱 거룩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화(聖化)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끝내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가기까지 이 세상에서 맘대로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화롭게 되기까지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일 성도의 삶에서 구원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영화롭게 되기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5) 보호하고 계십니다. 이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이고, 우리에게 새생명을 불어넣으신 능력이며, 천사도 세상의 권세자들도 거스를 수 없는 능력입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실 때, 베드로는 그 구절 바로 앞에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도 언급한 이 “믿음”이 삶에서 더욱 단련되고 확고해져서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라는 것을 증명하고 구원의 확실함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의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구원의 성취자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으신 분이나 구원에 대해 오해하고 계신 분은 ‘현재 우리가 받은 구원이 여기서 끝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죄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구원의 전부일까요?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5). 베드로는 구원의 최종적 실체를 보여주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여전히 죄와 싸우고 시험 중에 있으며 눈물과 수고가 많은 삶을 살아가지만, 완벽한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날 우리에게는 찬송과 영광과 존귀가 있을 것입니다(7). 슬픔과 수고가 없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완벽한 구원의 날이 올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예비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세”는 우리가 죽고 그리스도를 만나는 날이나,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공중으로 부르실 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우리의 구원의 실체가 그 날 밝혀질 것입니다.
베드로가 찬송했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노래했던 유업과 구원이 우리의 것입니다. 베드로가 아름다운 단어를 사용해서 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이 찬송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드려야 하는 찬송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어려움과 시험을 겪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주님이 되신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놀라운 유업을 받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심으로 구원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하늘에 간직하셔서 누구도 빼앗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매일의 삶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인도하실 것이고, 마지막 날에 찬송과 존귀와 영광이 존재하는 구원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날마다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이 구원과 산소망은 어떤 환경에서도 가치를 잃지 않습니다. 이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기업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