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명을 감당하려면
본문 : 디모데후서 2장 1절~2절
설교자 : 이병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시작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말이 맞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일들은 시작만큼이나 과정도 힘들고 또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많은 수고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일처럼, 단기간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장기간의 준비가 필요한 일들은 단지 시작뿐만 아니라 긴 시간동안 성실하게 수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끈질기게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하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일도 그러합니다. 시작은 쉽지만 꾸준하게 그 일을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방해가 있고 처음 가졌던 마음이 언제든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 끝마치는 편이십니까? 아니면 시작은 잘 하는데 끝까지 가지 못하고 그만 둘 때가 많으십니까? 제 자신을 생각해봤는데 시작한 일을 끝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둔 일들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필 받았다’는 말을 하는데, 필 받아서 어떤 일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유익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 일에 대한 열정이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그 일을 계속하려는 마음도, 힘도 사라져서 그만두게 됩니다.
어떤 일은 그만두더라도 별문제 없고 괜찮을 수 있지만 어떤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만 둘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일을 마음이 없는 상태로 마지못해 하게 되고 그래서 그 일은 나에게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단순히 나의 유익이나 자기 계발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의 신앙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라면 어떨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대해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이고 우리 믿음이며 우리 인생이라 할 수 있는 일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세상에서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것, 사랑을 실천하며 섬기며 사는 것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 사명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사명에 대해서 무기력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기꺼이 기쁨으로 감당해야 할 일인데, 억지로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핑계로 미룰 수 있고 두 손을 놓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명 감당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일은 평생에 걸쳐서 계속되는 일이기에 쉽지 않습니다. 그 기간 동안 수많은 방해와 공격들을 만나기에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연약하여서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며 주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을 정말 가치 있게 하고 의미 있게 하는 귀한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계속해서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가치를 알기에,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기에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위해서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도중에 그만두거나 포기하거나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기분에 따라 내 마음대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변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우직하게 주님이 맡기신 사명에 대해서 끝까지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계속해서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일들, 맡겨주신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은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아들과도 같은 디모데도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디모데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진리를 지키며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주님이 허락하신 사명을 완수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꼭 필요한 두 가지를 명령합니다. 디모데가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잊지 말고 따라야 하는 명령입니다. 디모데가 이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여 지킨다면 디모데는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명령은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명령에 순종한다면 우리도 주님이 허락하신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두 명령은 우리에게 있어서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한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한 명령이 무엇인지 본문의 두 명령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딤후 2: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1절 마지막에 “강하고”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이 명령입니다. “강하라”는 말입니다. 첫 번째 명령은 “강하라”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특별히 “너는”이라고 부르면서 강조해서 이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장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버린 일과 자신이 복음으로 인해 받고 있는 고난을 언급했습니다.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자에게 고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바울은 사명을 감당할 때 따라오는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도 사명을 감당할 때 여러 가지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강해져야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경험했던 고난에 대해서 디모데가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알기에 디모데에게 “강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힘내라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그러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방해와 공격이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장기전이기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계속되는 인내와 수고가 따릅니다. 그래서 힘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로를 향한 격려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서로에게 힘을 내라고 말하고,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겨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도움이 될까요? 이 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는 힘을 내고 싶지 않아서 그럽니까!’ ‘낼 힘이 있어야 힘을 내죠! 말이야 쉽지, 힘이 없는데 어떡하라고요.’
‘힘내’라고 하는 말이, ‘강하라’고 하는 이 명령이 그럴 수 없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명령이 되는 건 아닐까요? 오리에게 뒤뚱뒤뚱 걷지 말고 똑바로 걸으라고 명령하면 될까요? 타조에게 날개를 뒀다 어디 쓰냐고 뛰지 말고 날아라고 하면 될까요?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강하라”는 명령도 이와 같을까요?
우리는 “강하라”는 명령을 이런 불가능한 명령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명령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하라는 명령은 무작정 ‘너 강하게 되어야 해! 강해져!’ 이런 말이 아닙니다.
강하라는 이 명령은 수동태입니다. 다시 말하면, 강하게 되라는 말입니다. 여기 단어의 원래 의미를 살려서 표현하면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힘을 받으라’ 힘을 받는 것이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우리는 그 힘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딤후 2: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가 이 일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에게 힘을 내라고 격려하는 말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하는 말과 다를 수 있습니다. 힘의 출처가 어디인지 그 능력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강하라는 명령은 내가 너에게 힘을 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힘없는 사람에게 어떻게든 힘을 쥐어짜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힘의 근원 되시고 힘을 공급하시는 분이 계시기에 그분에게 힘을 얻어서 그분의 은혜로 강하게 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강하라는 명령은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모든 일들을 능히 감당하게 하시며 모든 것을 그 뜻대로 이루어 가시는 그분을 의지하여 그분으로부터 힘을 얻으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하라는 명령은 불가능한 명령이 아닙니다. 할 수 없는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드는 가혹한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계속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 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로 주어집니다. 그 힘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분도 주님이시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마치 우리는 전자제품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핸드폰을 쓰는데 핸드폰을 무한정 사용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는 안 됩니다. 일정 시간을 사용하면 반드시 충전을 해야 합니다. 충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공급받는 것이 없으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방해와 적대적인 세상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힘을 얻어야 합니다.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주님이 부어지는 은혜 없이는 우리는 강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철저히 무능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며,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는다면 우리는 강할 수 있습니다. 강할 뿐만 아니라 유능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사명을 감당하며 주님이 맡기신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을 위해 살며 주님을 섬기는 일을 계속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 능력을 계속 공급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밥을 먹어야 힘이 나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힘을 얻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명령입니다.
딤후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부탁하라”는 명령입니다. 여기 “부탁하라”는 명령은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지 대상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무엇을 부탁해야 하는지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첫째, 누구에게 부탁해야 합니까?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말씀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라는 것입니다. 앞서 바울이 언급했던 사람들을 예로 생각한다면 부겔로와 허모게네 같은 사람이 아니라 오네시보로와 같은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무엇을 부탁해야 합니까?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부탁하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가 바울에게 들은 진리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 진리는 많은 증인 앞에서 증거 되었고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입니다. 은밀하게 전달되어서 몇몇 사람들만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전달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다고 특권처럼 여기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것은 많은 증인들도 알고 있는 것이고 바울이 1장 14절에서 언급했던 디모데에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 진리의 말씀이며 바울의 사명인 복음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이것을 또다시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해야 했습니다. 바울이 충성된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처럼 이제는 디모데가 또 다른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 충성된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진리가 전달되는 4단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단계,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바울에게 계시되었습니다. 2단계, 계시를 받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합니다. 3단계,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에게 전합니다. 4단계, 충성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합니다.
몇몇 주석가들은 이것을 올림픽 성화에 빗대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성화가 여러 주자들을 거쳐서 목적지에 이르는 것처럼 복음도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진리는 우리가 받은 것이기에 우리는 이 받은 진리를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부탁하라”는 명령은 명령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지키고 진리를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부탁하라”는 명령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탁하라”는 명령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탁하라는 명령은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사명을 계속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명을 혼자서 감당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충성된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탁하라”는 두 번째 명령은 “강하라”는 첫 번째 명령을 보완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님의 능력을 공급받아서 주님이 맡기신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그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고 주님의 일을 함께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교회를 통해서 교회와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지 않습니까? 그런 내가 사명을 감당하려면,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려면 어떠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고 도움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가 서로를 돌아보고 협력하여 서로에게 맡겨진 일을 함께 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혼자하면 쉽게 지치고 힘들지만 함께하면 힘을 얻어서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함께 일하는 것이 무조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입니다. ‘그냥 내가 하지 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 뭔가를 부탁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런데 주님 안에서 이런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일을 함께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닙니다. 괴롭히는 일이 아닙니다. 선한 일, 가치 있는 일에 초대하는 것입니다.
뭔가 일을 맡게 되거나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수고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일이 가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러한 수고와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함께 하는 것은 너무도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은 괜한 일이 아닙니다. 섬기는 일은 각자가 주님이 맡기신 일에 충성하는 것이며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함께 섬기는 일은 주님을 높이고 성도를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는 함께 하는 일의 가치를 기억하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수고를 아시고 은혜를 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수고하는 모든 일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함께 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교회로서, 한 지체로서 서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존재합니다. 주님이 맡기신 일을 함께 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계속해서 여러 모양으로 수고하는 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주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것을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고 나의 인생을 주님이 기뻐하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영원한 것을 위한 투자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 방해와 공격이 있고 주님 만날 때까지 계속되는 과정이기에 부족한 우리에게 큰 짐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기쁨 없이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포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어려움을 이기고 계속해서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오늘 두 명령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명령은 강하라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강해지십시오.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계속 힘을 얻으면 지치지 않습니다. 쓰러지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사명을 계속 감당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명령은 부탁하라입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충성된 사람이 되셔서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동참하십시오. 사명을 계속해서 잘 감당하려면 함께 해야 합니다. 혼자서는 쉽게 지치고 오래가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함께 부르셨으니 서로를 섬기고 함께 함으로 주님의 일을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사명을 함께 감당했던 충성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사명을 계속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계속해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끝까지 충성할 수 있도록 여러분 각자가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을 뿐만 아니라 함께 함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교회의 각 지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