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사람 낚는 어부
본문 : 마가복음 1장 16-20절
설교자 : 염창훈
막 1:16-20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16절의 시몬은 베드로를 가리킵니다(마 4:18). 누가복음 5장을 보면 이 일이 있기 전에 주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가르치시고, 전날 저녁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와 일행들에게 바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그렇게 했을 때 많은 고기를 잡았고 베드로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고 그들이 주님을 따릅니다. 이 말씀은 세 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말씀입니다(마 4, 눅 5).
‘사람을 낚는 어부’는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또 다른 제자들을 부르시며 같은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영혼을 구하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17절).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4,15). 주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세우시고 자신과 함께 있게 하시며 보내시고 전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은 주님을 믿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가족과 이웃을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입니다. 지옥에 가게 될 운명인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이적을 보여주신다면 사람들이 많이 믿지 않겠느냐고, 왜 주님은 사람들을 통해 전도하게 하시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7-18). 우리를 하나님의 대사로 부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영혼들을 인도하시는 일에 쓰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서 그들을 주님께 인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막중한 임무이며 우리에게는 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에 대해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고기를 잡지만, 어떤 사람들은 옆에서 술을 먹고 떠들어 오히려 고기를 쫓아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이끄는데 노력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반대의 일을 합니다. 그들의 불친절한 행동, 주님의 사랑을 본받지 않는 삶으로, 주님께 오는 자를 오히려 쫓아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역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16절). 그들은 당시 유명한 학교를 다녔거나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직업을 가진 뱃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부르셔서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농사를 짓는 분도 있고 직장에 다니는 분, 가정주부, 작은 회사를 경영하는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요한을 부르신 것 같이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주님의 일에 쓰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신 사람들은 우리가 보기에 배움이 없거나 가난하거나 멸시 받는 천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 없는 사람을 부르셔서 주님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 주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해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베드로처럼 한 번 설교했을 때 3-5천명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사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도 모든 제자들이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와 은사, 영역이 다릅니다. 주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구해주셨을 때 그는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지만 주님은 “집에 가서 너희 친족들에게 네게 일어난 일을 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이는 선교사로 부르시고 어떤 이는 큰 교회에서 설교하게 하시며, 어떤 사람은 가족과 이웃을 인도하는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에 충실한다면 우리는 어디서든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18절). 이것은 제자들의 결단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능력을 보았으며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자신의 가족과 직장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즉시 결단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께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님을 믿자마자 전도를 위해 직장을 버리라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영혼을 인도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결단은 바로 해야 합니다. “제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겠습니다.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겠습니다”라는 결단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이 특별했던 점입니다. 그들은 말씀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부자 청년은 주님께서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고 영혼을 인도하는 것에 일생의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고기를 잡고 살아가는 것보다, 자신의 부모를 모시는 것보다 영혼을 구원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우리는 말씀을 깨닫는 것으로 말씀에 순종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제자들도 주님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했을 때 그저 그 말씀이 옳다고 인정함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실제로 자신에게 일이 있어서 주님을 좇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점은, 참 많은 말씀을 듣고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만 제자들처럼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위해 우리의 삶을 투자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알고만 있고 배우기만 하며 “오늘 설교 잘 들었다”, “참 좋았다”라고만 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진들은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드리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많은 이들이 주님께 순종하고 있지 않습니다.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겔 33:31,32).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며 듣지만 속으로는 이익을 생각해서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는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을 낚는 비결에 대해 주님께서는 매우 간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주님은 여러 기술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주님을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낚시 기술보다 낚시꾼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더 주목하셨던 것 같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전도훈련이나 기술을 가르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보다 영혼들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3년 반 동안 훈련하시면서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 섬기는 법을 가르치셨고 친히 본을 보이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가시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제자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멸하기를 원한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꾸짖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사람들, 죄인으로 알려진 창녀, 세리들을 사랑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함께 식사하시고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여러 남편이 있던 여인을 받아들이셨고 주님께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나왔습니다(눅 15:1-2). 죄인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섬기고 사랑할 것을, 거룩한 삶을 살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영혼들을 인도하는 낚시꾼들의 본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왜 전도하기 힘든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얼마나 많이 주님께 인도하는가 하는 것은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분량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생을 통해 만난 사람들 중 몇이라도 주님께 인도하고 소개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께 인도할 수 있을까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가정의 생활 목표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로 정했다고 합니다. 가족들끼리 하루에 세 번씩 칭찬해주기, 일주일에 한 번 동네 쓰레기 줍기로 정하고 실천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동네에 쓰레기들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하기만 했지 제가 그것을 치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분은 만 명 정도 되는 도시에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장례식에 그 도시 사람들이 가게 문을 닫고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 분이 생전에 한 일은 동네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나누고 그들의 이름을 부엌에 써놓고 늘 기도한 것입니다. 집안일을 할 때나 수시로 그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에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생을 살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눅 16:9).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우리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명령에 즉시 따랐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했고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을 하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 중 하나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는 것, 이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선교사나 설교자로 부르시지는 않았지만 각처에서 가족들, 이웃들을 인도하도록 부르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고 실질적으로 어떻게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지에 대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