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적 성숙
본문 : 히브리서 5장 11절-14절
설교자 :  조성훈

11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저의 머릿속에는 두 장의 사진이 들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유평교회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입니다. 어떤 분은 처음과 지금이 참 많이 변해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많이 성숙해진 것입니다. 저는 책상 위에 아내의 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의 사진인데, 지금 아내의 모습과는 참 많이 다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유평교회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어떨까요? 어떤 분은 그동안 영적으로 성숙하여 그 모습이 참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변화된 모습으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더러는 처음 모습 그대로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적인 어린 아이의 모습인 것입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12절) 아직까지 어린 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을 때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성숙은 시간이 지나면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시간이 지나도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많은 세월동안 영혼의 성숙을 가져오지 못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적으로 가난했을 때는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다가 물질이 부해지자 떠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적인 지식이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세상의 지식이 주님을 섬기는데 유용합니다. 물질이 많고 적음, 지식의 많고 적음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유평교회는 주님을 섬기기 쉬운 곳이 아닙니다. 다른 교회는 매 주일 헌금봉투를 갖다놓고 목사님이 축복기도를 하고, 누가 얼마나 헌금했는지를 공개하여 사람들이 알게 하는데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일을 해도 누가 잘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진정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섬기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교회 일지 모르지만, 사람의 평가를 기대한다면 좋은 곳이 아닙니다. 저는 얼마 전 행주를 가지고 상을 닦는 형제님들을 보면서 마음에 기뻤습니다. 걸레를 빨아 널고 정리를 하기도 하면서 나 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섬길까를 생각하는 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개인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깨닫는 것이 장성한 사람은 어린 아이와 다릅니다. 성숙한 사람은 말하는 것에도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습니다. 그의 언어생활은 불평에서 점점 감사로 변해갑니다. 주위를 보면 불평할 것이 참 많지만 동시에 감사할 것도 참 많습니다. 영적 어린아이는 감사할 것보다 불평할 것을 찾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미숙한 아이는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입니다. 물론 갓 구원받은 사람이 하루 아침에 성숙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자의 태도를 찾으라면 성경의 ‘욥’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질이 아무리 많아져도 그것은 욥의 영적인 것에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물질이 많아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 중심이었습니다. 자식들과 재산을 잃고 자신도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는 오랜 세월 성경공부를 해왔는데, 그것이 성도님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에게는 그러한 공부가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했으면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과거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그들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공부를 했고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그것이 영적인 성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근에 공부한 야고보서에서는 시련이 있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나서 수많은 시련을 만날 때, 왜 그 같은 교훈이 도움을 주지 못했을까요? 우리는 시련을 통해 연단을 받으면서 성숙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날 때 어려운 환경이 있었던 것은 “너희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이 없고 길이 험난하고 한 가지 음식만을 먹게 한 것이, 바로 그와 같은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어떤 것도 임하지 않습니다. 삶의 많은 어려움들은 결국 하나님이 여러분을 훈련시키기 위한 의도를 가진 것입니다. 그 시련과 어려움이 영적 성숙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많은 세월을 낭비한다면 그 영혼이 얼마나 불쌍한 것입니까?

경제적인 어려움, 다른 사람의 모함, 때로는 교회에서 받는 어려움 등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단련하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어떤 성도와 교제하기 좋아하십니까? 각 성도들마다 자신의 영적인 온도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성도들은 자신과 온도가 같은 사람과 친해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유평교회에서 교제하기가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온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자신의 온도를 알 수 있습니다. 입을 벌릴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영적인 온도는 높은 것입니다. 그러나 늘 정부와 교회와 사람들을 비난하고 그 입에 불평과 불만이 달려있다면 그는 영적인 온도가 낮은 사람입니다. 성장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소수이지만 아직까지 영적으로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자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칭찬해도 주님이 불쌍하다고 하면 불쌍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숙하다고 칭찬해도 삶에서 그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나의 언어생활에 감사가 많은지 불평이 많은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에서 영적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하늘에 많이 머물러 있는가, 땅에 머물러 있는가로 그가 성숙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세상을 살아가면서 배우게 되는 것은 ‘이 세상에는 소망이 없구나’라는 사실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생각은 하늘로 올라가고 그 소망으로 기뻐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 그 하늘의 생각이 지배하게 될 때 영적으로 성숙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배우자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에 대해 키와 몸무게, 머리 색깔만 안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지 20년 이상 된 사람이 주님에 대해 아는 것이 그 정도뿐이라면 어떨까요. 시간이 갈수록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삶의 경험을 통해 와 닿는 관계입니다. 유명한 성우가 시편 23편을 읽어서 청중들이 박수를 쳤는데, 한 연로한 목사님이 나와 그것을 읽었는데 좌중이 조용히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삶의 경험을 통해 만난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것입니다. 저는 오랜 세월 주님을 섬겼던 형제가 임종할 때 믿음 없는 행동을 보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많은 시련과 어려움들이 믿음의 삶을 무익하게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저는 여러분들이 유평교회에 처음 오셨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고 현재의 모습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성도를 섬기는데 기쁨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자리를 정돈하고 어린아이를 돌아보고 쓰레기를 줍고 정리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모함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떤 성도는 미숙해서 어린 아이와 같은 말을 하고 어린 아이처럼 말씀을 깨닫는데 둔합니다. 말씀이 이론에 그쳐서 더 이상 성경공부가 무익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것을 경험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성숙한 자는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섬길 때 그 기쁨이 더 큽니다. 그것이 성숙한 자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우리 중 한 명도 낙오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내 언어생활에 감사가 넘치는 지 은혜가 넘치는지, 나의 생각이 하늘에 머물러 있는가 이 땅에 머물러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이론에 그치고 있는가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주님이 뭐라고 하시는지가 중요합니다. 욥이 성숙한 자로 있을 때 하나님이 참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사탄은 그가 재산과 가족과 건강을 잃으면 믿음을 저버릴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육체적으로 질병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해지는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내시고자 하는 ‘빛’은 우리의 성숙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성숙함을 이루어 삶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