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베냐민을 만난 요셉
본문 : 창세기 43장
설교자 : 이병권
지난주까지 살펴본 요셉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요셉이 꿈을 해석한 대로 7년의 풍년 후 극심한 흉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도 흉년이 들었기에 형들은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갑니다. 형들은 만난 요셉은 자신이 요셉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가며 베냐민을 데려 오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시므온을 애굽에 남겨둔 채 아홉 명만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 43장은 42장에 나오는 애굽으로 간 첫 번째 여행을 기초로 벌어지는 일이고, 44장에 나오는 사건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3장은 장들 사이에서 연결고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43장이 앞장과 뒷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만, 제 입장에서 말하면 설교하기에 애매한 본문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 애매함을 극복하기 위해, 저는 오늘 본문에서 요셉의 형들에게 조금 더 주목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요셉의 형들은 해결해야 하는 까다로운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들을 단어로 간단하게 정리하면 어떤 단어를 말할 수 있을까요?
여러 단어를 말할 수 있겠지만, 세 단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므온, 양식, 베냐민’ 형들은 애굽에서 시므온을 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흉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양식이 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 야곱의 반대로부터 베냐민을 구해야 합니다. 시므온을 구하고 양식을 구하고 베냐민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해가는 형들을 볼 수 있는데, 시므온과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두고 이미 아버지 야곱과 아들 르우벤의 설전이 있었는데, 결과는 아버지의 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두고 부자간의 설전이 한 번 더 벌어집니다. 왜냐하면 흉년은 계속되었고 양식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애굽으로 가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1-2)
이렇게 해서 또 한 번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좀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3) 대결 상대가 바뀌었습니다. 지난 번 대화에서 르우벤이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실패했었습니다. 이번에는 유다가 좀 더 유리한 입장에서 아버지와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특별히 유다는 아버지에게 요셉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가 들었던 말을 반복하며, 그 경고의 말을 강조합니다.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3,5) 요셉이 형들에게 했던 말을 반복해서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안 해도 되는 말, 왜 또 다른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말했는지 따지면서 원망도 해보지만 이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유다는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날립니다.
유다는 세 가지 사실을 언급하면서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내는 방법입니다. 세 가지를 보면 첫째,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8) 먼저 유다는 아버지가 허락했을 때 얻게 되는 유익을 언급합니다. 지금 3대가 위험에 처해있는 상황입니다. 이대로 있으면 아버지는 물론, 아버지의 손자들까지 다 죽게 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허락하시면 우리 모두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아버지가 계속 허락하지 않으시면 결국 우리 모두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9) 다음으로 유다는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걱정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며 만약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을 두고 베냐민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셋째는 10절입니다.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10) 마지막으로 유다는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음으로 겪고 있는 현재 상황을 평가합니다. 만약 처음부터 허락했다면 벌써 이 일은 마무리 되었을 것이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아버지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내키지 않았지만 가족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위험한 일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들은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얻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늙은 아버지라고 무시하거나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몰래 베냐민을 데리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일인데 아버지가 고집을 피운다면서 말다툼을 벌이며 아버지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은 곡식이 떨어지기까지 기다렸고, 아버지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후에 일을 진행합니다.
전에 야곱의 아들들은 어떠했습니까? 여동생 디나의 일로 아버지를 몰래 무자비한 살인을 저질렀고, 요셉을 팔아버리고 아버지를 거짓말로 속이기도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확실히 전과는 다른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베냐민을 보내기로 결정한 야곱은 지혜를 발휘하는데, 그것은 빈손으로 가지 말고 예물을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에서를 만나기 전에 야곱이 했었던 선물 작전입니다. 야곱이 말하는 선물의 목록입니다. ‘유향과 꿀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 가나안에서 나는 특산물은 물론, 귀한 수입품까지 선물로 준비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방문 때의 돈을 두 배로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전에 가져왔던 곡식의 값을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야곱은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고, 베냐민이 잘못될까봐 불안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곱이 의지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14) 야곱이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리고 만약 베냐민을 잃게 되더라도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합니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으니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려는 것입니다.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라’
이렇게 해서 요셉의 형들은 베냐민과 함께 그리고 여러 예물과 갑절의 돈을 가지고 요셉 앞에 서게 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형들은 멀리 애굽까지 내려오면서 어떤 일을 예상하고 왔을까요?
첫 번째 방문에는 예상치 못한 죄인 취급을 받으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방문에는 완전 반대로 예상하지 못한 환대를 받고 있습니다. 형들은 애굽에 올 때마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을 만나는 겁니다. 애굽의 총리가 정탐꾼으로 죄인 취급 받던 자들을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형들에게는 정말 뜻밖에 일입니다. 총리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고 정탐꾼이 아닌 것을 밝히며 거듭해서 억울함을 호소해야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닙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일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왠지 모르게 불안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서 특별한 곳으로 가게 되니까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18)
그래서 형들은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미리부터 청지기에게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합니다. 지난번에 양식을 가지고 가다가 보니 각자의 돈이 그대로 자루에 있었다며 지금 그 돈을 다시 가져왔고, 양식을 사기 위해 또 다른 돈을 추가로 가지고 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요셉의 청지기가 말합니다.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23) 청지기는 자루에 있던 돈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것이고, 너희가 값으로 지불한 돈은 이미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동안 잡혀있었던 시므온도 풀어줍니다. 이전과 달라도 너무 달라졌습니다. 애굽이 변했습니다. 다들 천사로 변한 것 같습니다.
그 때 요셉이 들어오고 요셉의 형제들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가지고 온 예물을 요셉에게 줍니다. 베냐민을 포함한 요셉의 모든 형제가 요셉에게 엎드려 절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꾸었던 꿈의 한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물으며 베냐민을 바라봅니다.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29)
베냐민을 만난 요셉, 동생을 축복한 요셉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올라서 울기 위해 급히 방으로 들어갑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연기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요셉은 마음을 추스르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음식을 먹도록 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지금 애굽의 총리 집에서, 총리와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형제들이 식사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배정된 자리에 앉고 보니 어떻게 나이 순서대로 앉은 겁니다. 얼굴에 나이가 적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가운데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에 노안인 사람, 반대로 동안인 사람, 겉늙은 사람, 애늙은 사람. 이럴 수 있습니다. ‘네가 동생이야? 큰형처럼 보이는데’
한 아버지의 아들들이지만, 네 명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열 한명입니다.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은 마지막 순서인 막내 베냐민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열 한 명을 나이 순서대로 앉힐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나이를 모르는 상태에서 정확히 맞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일이니까 형제들은 또 다시 서로 이상히 여기게 됩니다.
형제들이 애굽에 와서 겪는 일은 계속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서프라이즈 애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걱정했었는데 막상 애굽에 와서 보니 아닙니다. 전에 왔을 때는 정탐꾼으로 오해를 받아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정탐꾼’이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총리의 집에 초대를 받은 상황에서 지난번 자루에 들어 있었던 돈은 하나님이 주신 거라는 합니다. 총리가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나이 순서대로 자리를 앉아 있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온통 이상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일이 추가되는데 베냐민이 특별히 다섯 배나 더 많은 음식을 받는 것입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형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합니다. 모든 걱정을 떨쳐버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사실 요셉이 베냐민에게 더 많은 음식을 준 것은 형들의 주의를 끌려는 의도입니다. 만약 형들이 여전히 동생이 받고 있는 편애에 대해서 질투하고 있다면, 분명히 이런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을 때 불편한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동생을 향한 미움의 마음을 또다시 가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단지 대상이 달라진 것뿐입니다. 베냐민이 또 다른 요셉이 된 것뿐입니다. 요셉은 이럴 때 형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형들이 달라졌습니다. 이 일에 대해 특별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받은 것으로 함께 즐거워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애굽에서의 하루가 문제없이 마무리 됩니다. 형들은 평안히 영접을 받았고 시므온도 풀려났습니다. 자루에 있던 돈도 잘 해명되었고 하나님의 선물로 정리되었습니다. 애굽에서의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된 것 같습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곡식을 가지고 베냐민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임무 완료!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드라마가 그렇습니다.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겁니다. 계속 긴장하면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에게는 또 하나의 커다란 서프라이즈가 남아있습니다. 진짜 시험은 아직 입니다. 지금까지 애굽의 모든 일은 이 시험을 위한 준비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형들을 위해 계획하고 준비한 시험입니다. 그러니 진짜 어려운 시험이겠죠? 이제 형들은 이 시험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 시험에 대해서 형들은 어떤 결과를 받게 될까요? 시험에 잘 통과할 수 있을까요? “형들을 시험하는 요셉” 다음 시간에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의 형들을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형들이 달라졌어요!’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달라진 형들의 모습을 보면, 베냐민에게 화가 미치면 자신이 처벌 받겠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책임을 집니다. 또한 감옥에 있는 자기 형제를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으며, 자기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을 보상하려는 정직한 태도를 가집니다. 그리고 베냐민이 더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함께 기뻐합니다. 이런 모습에서 전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형들이 왜 변했나요? 무엇이 그들을 다르게 만들었습니까? 분명 저절로 그냥 된 것은 아닐 텐데, 무엇이 이들을 변하게 했을까요?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이 말할 때, 꼭 언급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마다 이것을 알려주고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몇몇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이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14) 야곱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구합니다.
요셉의 청지기가 말합니다.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23) 청지기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공급하셨다고 말합니다.
요셉이 말합니다. “…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29) 요셉은 하나님이 베냐민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구합니다. 모두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하나님이 하셨음을 말하고 있고, 하나님이 하시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말했고, 요셉이 말했고, 심지어 요셉의 청지기까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요셉의 형들은 아닐까요? 형들만 빼고 다른 사람들만 이렇게 말했던 걸까요? 우리가 43장을 좀 더 넓은 문맥에서 42장과 함께 생각할 수 있습니다. 43장이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고 처음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42장과 같이 보면, 42장28절에 형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42:28)
형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사람들의 언급이 계속해서 그들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화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강조됩니다. 이것이 그들을 변하게 만든 원인이며, 변할 수 있는 힘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자신이 잘못한 것은 보상하며, 자신의 몫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질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함으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태도를 취하고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그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달라집니다.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할 때, 우리는 달라집니다.
우리가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행동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나의 삶에 직접 개입하심을 알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일에 충성하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신뢰하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그분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나의 삶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이 내 삶에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도 다 아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맞춤형으로 가장 알맞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했던 말을 생각해보십시오. 베냐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잃으면 잃으리라’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때 그 외의 것은 하나님께 맡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답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로 내가 원하는 않는 결과를 얻었을 때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신 것으로 오해합니다.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결과가 주어지더라도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이 주신 결과에 만족하며 그 결과를 두고 비교하지 않습니다. 내게 주신 답과 다른 사람에게 주신 답을 두고 질투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주권에 따라 각자에게 맞는 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그 모든 일을 나의 성숙의 기회로 삼고, 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깨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고 내 삶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겸손함으로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살아계심 앞에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