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말세에 하나님이 요구하신 회개 Part 2

본문: 베드로후서 3장 11-18절 

설교자: 조정의

베드로는 로마 감옥에서 순교 직전 유언처럼 이 편지를 썼다. 편지의 수신자인 소아시아 교회가 거짓 교훈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웠고 선지자와 사도를 통해 기록된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라고 강권했다(벧후 3:1-2).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를 가리키는 ‘말세’를 산다는 면에서 우리는 이들과 같다. 하나님 약속을 조롱하며 이들을 미혹했던 거짓이 오늘날 우리를 미혹한다. 주가 곧 오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가르치는 교회를 찾기 힘들다. 마치 세상이 창조될 때와 같이 계속 그냥 있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고 사는 교인들이 많다. 입술로는 이런 거짓을 믿는다고 절대로 말하지 않지만, 정욕을 따라 산다. 이는 실제로 주의 강림과 심판을 믿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고 있다는 말이다(벧후 3:3-4).

하지만 베드로가 기억하고 생각나게 하려 했던 하나님 말씀은 무엇을 약속하는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물로 온 땅을 덮어 심판하신 하나님 말씀이 주의 날까지 천지를 보존하고 있고, 그날이 되면 땅과 하늘이 불타고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 경고한다. 주의 약속은 결코 더딘 것이 아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신다.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진다(3:5-10). 그러면 이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말세에 하나님이 요구하신 합당한 삶을 살펴보자.

1. 힘쓰라(14절)

첫 번째 명령은 힘쓰라이다. 이 명령은 ‘(현재 이루지 못한)무언가를 힘써 이루라’는 명령이 아니다. 이미 이뤄진 것을 끝까지  굳게 지켜내라는 명령이다. 11-13절의 본문이 이를 입증한다.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1절의 “풀어지리니”는 12절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와 같은 단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면 지금 우리가 보는 하늘과 땅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을 주목하게 한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질 것이다(10절).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도 함께 심판과 멸망을 맞이할 것이다(7절). 두렵고 떨리는 날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성도에게 그 날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명령한다. 불타버릴 땅과 하늘이 아니라 다른 걸 바라보기 때문이다.

13절에 우리는(베드로와 성도들)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그들은 의에 속한 자다.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롬 3:2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가득 맺는 자(빌 1:11),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자(갈 5:5)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한다. 멸망이 아니라 소망을 바라기 때문이다.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그래서 따라오는 명령인 ‘힘쓰라’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정도로 경건함과 거룩한 행실을 쌓으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부터 노력해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완벽한 수준의 삶에 이르라는 말이 아니다. 성도는 이미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힘써’ 지켜야 하는 건 그 나라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 정욕을 따르지 않고 경건함을 따르는 삶, 더러운 행실을 버리고 거룩한 행실을 갖는 삶을 멈추지 말고 계속 살라는 것이다.

점도 없고 흠도 없이는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화목—평강—을 가져오는 제물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거듭났다(벧전 1:19,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 요일 2:2).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택하신 방법이다. 베드로는 편지 초반에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라고 했다(벧후 1:10-11). 택하심과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자는 주 앞에서 평강 가운데 나타날 확신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은 정도보다 지속성이 중요하다. 주의 날까지 얼마나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었는가보다 계속해서 경건과 거룩을 위해 싸웠는가가 중요하다. 매일 죄와 싸우고 피 흘리기까지 싸워라(히 12:4).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씨름을 멈추지 마라. 그것이 말세에 주를 화목하게 만날 확신을 준다.

2. 여기라(15-16절)

다음 명령은 “여기라”다(15절). 앞의 명령이 주 오심을 앞으로 당겨 바라보며 삶을 굳게 지키는 것이었다면, 이 명령은 주 오심이 뒤로 물러나 보일 때 가져야 할 마음, 갖춰야 할 자세, 태도다.

15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주님이 심판을 계속 미루고 계신 것처럼 보이고, 곧 오시겠다는 약속의 성취가 더디다고 생각될 때, 9절에 나온 말씀처럼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구원의 은혜를 베풀고 계신다고 여겨야 한다. 내일의 은혜를 기대하다 실망하여 오늘의 은혜를 낭비하지 마라.

우리는 주의 날이 마침내 이르기 전까지 하루하루가 주의 구원의 날, 은혜의 날이란 걸 기억해야 한다. 오늘 하루 주가 오시지 않는다면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노래해야 한다(고후 6:2). 당신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선포할 또 하루가 주어진 것이다. 

찬송가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가사를 보라. “찬 이슬 맺힐 때에 일찍 일어나 해 돋는 아침부터 힘써 일하라”, “일할 때 일하면서 놀지 말아라”, “지는 해 비낀 볕에 힘써 일하고 그 빛이 다하여서 어둡게 되어도 할 수만 있는 대로 힘써 일하라” 왜 그런가? “일 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주님이 오시면 사랑하는 가족, 친척, 이웃, 동료에 대한 주님의 오래 참음이 끝난다. 회개할 기회가 사라지고 구원의 은혜가 그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일해야 한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히 3:13).

하지만 베드로 당시에도 지금처럼 종말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며 합당한 태도를 거부한 이들이 있었다(16절). 

15…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바울이 성령께 받은 지혜대로모든 편지에는 이같은 글, 이런 일에 관한 말 곧 주 오심에 관한 가르침이 많다(살전 5, 고전 15). 다른 성경에도 종말에 관한 말씀이 많다(마 24-5장). 그런데 무식한 자들 곧 진리를 거스르기 원하는(무지) 어리석은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 도덕적으로 약하고 불안정하여 정욕에 따른 삶에 쉽게 빠지는 자들(벧후 2:14)이 바울의 편지 그리고 다른 성경의 본문을 억지로—교묘하게—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렀다. 그들은 말세, 종말, 주의 날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에 합당한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마땅한 삶을 살지 못했다.

 하지만 당신은 성령께 받은 지혜로 하나님 말씀에 담긴 뜻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에게 요구하는 삶, 주의 날을 기다리는 말세에 당신이 힘고 여겨야 할 삶이 무엇인지 알았다. 멸망에 이르는 삶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확신에 이르는 삶이다: 첫째, 경건과 거룩을 지키는 일에 매일 힘쓰는 삶, 둘째, 오늘 주어진 은혜에 감사하며 회개에 이르는 구원의 길을 부지런히 전하는 삶.

3. 삼가라-자라 가라(17-18절)

이제 마지막 세 번째와 네 번째 명령을 살펴보자. 두 가지 명령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17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편지의 끝인사에 해당하는 마지막 두 구절은 앞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삼가라-자라 가라는 연결된 명령들을 제시한다. 먼저 나오는 명령인 삼가라는 앞에 언급한 내용을 되풀이한다. 주의 날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그들이 미리 알았기 때문에 첫째, 그들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무법한 자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거역하는 자들이 그들을 미혹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끌리면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둔 굳센 믿음과 그에 따른 경건한 삶에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그들이 힘써야 할 일이 두 번째로 따라오는 명령 자라 가라이다. 그들은 무법한 자들의 거짓에 귀를 막아야 한다. 항상 깨어 경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오직 진리로 무장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수만 가지 위조지폐 중 진짜 지폐를 찾는 기술은 진짜 지폐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뿐이다.

자라 가라는 명령이다.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다. 우리가 자라야 할 영역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이다. 이 표현은 단순히 그리스도에 관한 정보나 단순 지식이 아니라 은혜로 그분을 경험하는 앎에서 자라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예수님은 그냥 유명인사나 위대한 성인, 대단한 능력과 지식을 가진 스승 정도가 아니라 우리 님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시다.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는 것은 그분의 은혜 안에 인격적으로 그분을 더욱 알아가고 닮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을 통해, 성도와 교제를 통해, 예배와 찬양을 통해, 기도와 집회를 통해 더욱 예수님을 깊이 알아 가라. 오직 그것만이 당신을 말세의 숱한 거짓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미혹되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설 수 있는 반석, 정욕에 따른 삶이 아니라 경건한 삶으로 인도하는 목자, 더러운 행실이 아니라 거룩한 행실을 입게 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에서 엄청난 규모와 호화로움을 자랑했던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502명이 사망했고 30명이 실종됐으며 40명 구조, 937명이 부상을 당했다. 재산 피해만 약 2,700억원에 이른 이 사고는 연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매일 매몰자를 수습하는 과정에 피해자 가족들이 오열하는 장면 뒤로 많은 이들을 격노하게 한 이들이 있었다. 구조하는 척하면서 붕괴 현장 곳곳에 떨어져 있는 명품을 챙기느라 바빴던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 모습이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 곧 불타버릴 땅에 우리를 두시고 오늘 은혜가 주어진 구원의 날에 구별된 삶, 거룩한 삶으로 회개를 요청하는 삶을 살아야 할 우리가 세속에 빠지고 정욕에 따라 살면서 땅에서 건질만 한 것을 구하러 다닌다면.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의에 속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사모하며 살아야 한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고, 오늘 주어진 은혜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매일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는 것만이 우리를 말세에 하나님이 요구하신 회개에 합당한 삶으로 움직일 것이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