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뒤로 돌이키지 말라
본문: 누가복음 17장 31~37절
설교자: 조정의
오늘부터 우리는 다시 누가복음으로 돌아와 ‘인자의 날’에 대한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다루기 원합니다.
1991년 2월 6일 걸프전 때 미국은 쿠웨이트 해변에 매설된 지뢰밭을 제거하여 해병대가 지나갈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데이지커터라는 6.8톤짜리 집채만한 재래식 폭탄을 떨어뜨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적군이 있는 곳에 이런 내용의 전단지를 뿌립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총을 내려놓으십시오. 만약 내일까지 투항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재래식 폭탄 세례를 맛볼 것입니다.”
이라크군은 무시했고 다음날인 7일 새벽 미군은 MC-130 컴뱃 탈론기 2대를 몰고 가 낙하산으로 폭탄을 투여했습니다. ‘미국이 전술핵을 터뜨렸다’고 보고할 정도로 폭탄의 파괴력은 대단했습니다. 지뢰밭이 모두 사라지고 해병대가 통과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었습니다. 이 폭탄 이후에 미국은 또 다른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그 내용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세계 최강 폭탄의 맛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운 없이 그걸 즐길 것입니다. 항복해서 목숨을 부지하거나, 싫으면 가만히 있다가 죽으십시오”
여러분이 이라크군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결국 이라크는 항복을 하게 됩니다.
미국은 참 군사적으로 강력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는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도 가장 강력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고대 두 번째 큰 영토 장악). 구약시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강력한 제국 앗수르와 바벨론,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 파라오의 이집트도 이 나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어떤 왕도 전 세계를 지배하여 자기 발 앞에 무릎 꿇린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왕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빌 2:10). 그 왕이 바로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 오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날이 바로 ‘인자의 날’입니다. ‘인자의 날’은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천년 동안 왕으로 다스리는 기간을 말합니다(계 20장).
예수님은 가장 막강한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앞서 적군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계십니다. “항복해서 살든지, 싫으면 가만히 있다가 죽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에 의하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라고 하셨습니다.
‘인자의 날’에 대한 가르침은 대상에 따라 어조가 달라집니다. 20-21절은 왕을 거부하는 바리새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그 날이 언제냐?”고 물었을 때, 그날이 언제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21절). 너희 가운데 그 나라 통치자 왕이 있으니 그에게 항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하셨습니다.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22절부터는 제자를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제자는 주님께 기쁨으로 항복한 무리입니다. 회개하고 천국 백성이 된 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인자의 날’에 관해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알려주셨습니다(22-30절). 먼저, 그 날이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3절). 그 날이 오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가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림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5절). 또한 제자들이 “인자의 날 하루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2절). 그날을 지레 짐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날이 번개처럼 갑작스럽게 임할 것을 알라고 하셨습니다(24절). 많은 사람들이 노아와 롯의 때처럼 일상적인 삶을 살겠지만, 홍수가 갑자기 그들을 덮치고, 불과 유황이 비 오듯하여 그들을 멸망시킨 것처럼 인자의 날도 그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6-30절). 나태한 마음으로 살지 말고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제자, 인자를 왕으로 영접한 자들은 왕이 다시 오셔서 그 나라를 세우는 날을 지레 짐작하고 경거망동 하지 말고, 오직 그 날을 준비하며 경고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본문 31-37절은 누구를 위한 내용일까요? 어떤 어조의 가르침일까요? 먼저 본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도망치라”는 내용입니다. 인자의 날, 노아의 홍수, 소돔에 쏟아진 불과 유황처럼 진노의 심판이 쏟아져 내릴 것이니 뒤도 돌아보지 말고 피하라는 내용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그날”은 인자의 날을 말합니다.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밭에 있는 자도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목숨을 보전하려면 목숨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라고 하십니다.
32절에서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롯의 아내는 유대교에서 불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보여 주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었던 도시에 집착하여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그렇게 머뭇거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살고 싶으면 무조건 도망치라는 것입니다. 인자의 날에 엄청난 재앙이 덮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자의 날에 사람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릴 것입니다. 34-35절을 보면 두 가지 예시가 나옵니다. 34절엔 밤에 잠을 자고 있던 두 사람이 나옵니다. 둘 중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35절엔 맷돌을 가는 두 여인이 나옵니다. 당시 맷돌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갈게 되어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누가 목숨을 잃는 사람인지, 누가 목숨을 보전하는 사람인지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인자의 날에 사람들의 운명이 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이 무서운 경고의 말씀에 제자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어쩌면 두려움에 떨면서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주여 어디오니이까?”(37절). 이 질문의 의미는 “주여, 어떤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 것입니까?”입니다(대럴 벅, 716).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인자의 날이 모두가 알 수 있게 임하는 것처럼, 그날에 일어날 심판 역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행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누가 죽은 시체가 되어 새들의 밥이 될지 그때 보면 알 것입니다. 어디로 데려감을 당하여 죽게 될지 그때 모두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생각해보면 제자들은 데려감을 당하는 이들이 심판을 받기 위해 어디론가 끌려간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데려감을 당한 이들의 시체에 새들이 모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질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누가 어디로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일까요? 누가 살아남을까요?
우리는 그 대답을 사도 요한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계시를 받아 ‘인자의 날’에 대한 기록을 계시록에 남겼습니다. 계시록 19장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누가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지, 누가 살아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계시록 19장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10절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대한 이야기고, 예수님이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인자의 날에 대한 기록은 11~21절까지입니다.
먼저, 인자의 날 이전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하늘에서 열릴 것입니다(계 19:1~10). 교회는 죽은 자와 산 자 모두 그리스도가 공중에 임하실 때 공중으로 끌어 올리어 주를 영접할 것입니다(살전 4:17). 그 후에 하늘에서 일어날 일이 교회와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입니다. 이 때 땅에서는 ‘7년 대환난’이 일어나고 ‘짐승’이라 불리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자기 세상을 만들어놓습니다(계 4-18장). 짐승은 자기를 숭배하고 따르는 표를 사람들에게 남기고 거역하는 이를 핍박할 것입니다.
7년이 지나서 인자의 날이 시작됩니다. 하늘이 열리고 인자이신 예수께서 검을 들고 짐승과 그 무리를 치러 내려오십니다. (계 19:11~21). 오늘 누가복음 본문이 바로 이 지점을 언급합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11절) 백마는 전쟁에서 싸우기 위해 사용하는 군마였습니다(“싸우더라”). 누가 “백마를 탄 자”일까요? 그의 이름은 “충신과 진실”입니다. 이 호칭은 요한이 계시록 3장 14절에는 라오디게아에 편지할 때 예수님을 가리킨 표현입니다. “충성되고 참된(진실된) 증인” 예수님은 인자의 날에 하나님의 심판자로서 충성스럽게 일하시고, 공의로 정직하고 진실하게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12절을 보면 “백마를 탄 자”의 특징이 더 나옵니다. “그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는 아는 자가 없고…” 불꽃같은 눈은 뛰어난 통찰력을, 여러 관은 그분의 참된 권위와 위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사람의 중심과 생각을 꿰뚫어 보시며 그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또한 어떤 권세도 그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여러 관을 쓰신 왕 중의 왕이십니다.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는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백마 탄 그분은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그분 보다 높은 권세가 없습니다. 그래서 16절에 그의 이름을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부릅니다.
13절을 보면, 백마 탄 자의 또 다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은 복음서 첫 구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썼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고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 그가 입고 있는 “피 뿌린 옷”은 인자의 날에 그가 모든 적을 진멸하여 그들의 피를 자기 옷에 묻힐 것임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주님은 사람들을 위해 자기 피를 흘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거역하는 이들의 피를 보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제 인자의 날에 백마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신 예수님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고 그것으로 만국을 칩니다(15절). 친히 그들을 철장(쇠지팡이)으로 다스립니다.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습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향해 쌓아놓은 진노를 이제 쏟아내시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들은 이사야 63장에 기록된 여호와의 심판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를 대적하는 이들을 모두 진멸할 것입니다. 인자는 심판하기 위해 내려오십니다.
14절을 보면, 그분에겐 하늘 군대가 있습니다.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는 천사로 이루어진 군대와 거룩한 성도를 의미합니다. “하늘 군대”는 구약과 신약에서 천사를 가리킬 때 사용한 표현입니다(시 103:21; 눅 2:13). 또한 요한은 계시록 17장 14절에서 어린 양이 짐승과 그 무리를 싸워 이길 것이고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군대에 성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자의 날, 예수 그리스도가 백마를 타고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의 하늘 군대를 거느리고 짐승과 함께 한 모든 무리를 치러 옵니다.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19절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19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인자의 날, 전쟁의 승리는 말 탄 자, 곧 예수님께 있습니다. 반란군의 수장, 짐승과 그 추종자인 거짓 선지자는 포박되고 산채로 불에 던져집니다. 그들에게 미혹당하여 짐승의 표를 받고 하나님이 아닌 짐승을 경배하던 자들(“그 나머지”) 모두가 죽임을 당합니다. 인자의 날, 그리스도의 손에 반란군이 모두 제거됩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나십니까? 요한의 기록에서도 우리는 새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왕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인자와 그 군대가 반역자를 모두 진멸할 테니 모든 새는 큰 잔치를 벌이라는 명령입니다. 주검이 가득한 땅에서 그들의 시체를 먹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쟁은 인자의 승리로 끝이 나고 21절 마지막을 보시면 요한이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주검이 있는 곳에 새들이 모입니다.
이제 우리는 누가 데려감을 당하여 죽고 새들의 먹이가 될지, 누가 남겨질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짐승과 그 추종자들은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모든 사람이 큰 자나 작은 자나 시체가 되어 새들의 밥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궁금한 것은 누가 과연 멸망 받지 않고 남겨질 것인가? 입니다. 누가 자다가 심판을 당하지 않고 남겨질 것이고, 누가 맷돌을 갈다가 끌려가 죽지 않고 남겨질 것인가? 누가 뒤로 돌이키지 않고 도망하여 살아남을 것인가? 그 심판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가 아직 다루지 않은 누가복음 본문의 구절인 33절에 있습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보전하리라)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요? 인자의 날 예수를 거절하는 모든 자가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누가 살아남아 생명을 보전할까요? 목숨을 잃는 자가 자기 생명을 보전할 것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계시록 20장이 우리에게 중요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계시록 20장 1~6절은 인자가 이 땅에 대적을 모두 제거하고(19장) 천년 왕국을 세우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1~3절은 사탄이 천 년간 결박당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4절부터는 천년 왕국을 다스리게 될 사람이 나옵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4절)
여기 보면 인자가 이 땅에 세운 왕국에서 천년 동안 다스릴 자 중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이 “살았습니다” 생명을 보전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처럼 다스립니다.
누가복음 17장 33절 말씀과 비교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나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보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짐승이 일어나 자기를 추종하는 무리를 모을 때, 자기에게 절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 자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그 때 자기 생명을 지키려면 짐승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섬기고 숭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를 따르는 표를 받고 목숨을 보전할 것입니다.
만일 짐승을 거부한다면 많은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혹독한 삶을 이 땅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목숨을 잃더라도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생명을 보전하고, 한 사람은 끝까지 하나님만 따르기 위해 생명을 잃을 각오를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입장은 인자의 날이 되면 완전히 반전됩니다.
목숨을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한 그들이 살아남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짐승을 섬겨 생명을 보전한 이들은 하나같이 새들의 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보전하려는 자는 잃고, 잃는 자는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이해하기 힘든 분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곧 공중에서 그들을 불러 모으실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땅에 남은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의 협박으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삶을 강요받을 것입니다. 인자의 날에 예수님은 하늘을 가르고 혼인 잔치를 치른 자기 백성과 함께 땅의 반역자를 모두 제거하러 오실 것이며, 땅에서 목숨을 걸고 반역자의 삶을 선택하지 않은 남은 자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죽어 새들의 밥이 될 것입니다.
종말의 시간표는 조금 어렵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의 편에 선자,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예수와 함께 다스리는 권세를 얻지만, 예수를 반대하는 자, 그는 예수의 심판을 받고 영원히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 이 세대에도, 휴거 이후에도, 천년왕국 시대 이후에도 원리는 동일합니다. 결국 누구 편에 속해있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1919년부터 45년까지 독일을 지배한 국가사회주의 노동자 당, 나치당.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습니다. 유태인, 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 약 1천 1백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독일과 독일 점령지에 있는 4만 여개의 수용시설에 감금하고 죽였습니다. 유태인 어린이 약 백만 명이 나치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나치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집에 비밀창고를 만들어 숨으면 되지 않았을까? 두꺼운 콘크리트 벽 속에 지하벙커를 만들거나 저기 숲속이나 오지에 아무도 모를 만한 장소에 숨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면 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니 청진기를 콘크리트에 대서 사람의 소리가 들리면 무자비하게 총을 쏘고, 사람들이 음식을 사러 나오고 들어가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여 숨겨진 장소를 찾아내고 무차별하게 학살하는 등 아주 치밀하고 잔인했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거기엔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행운과 우연의 일치로, 또는 사람들의 호의로 생명을 보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자의 날에는 그럴 가능성이 조금도 없습니다. 누가 불꽃같은 눈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를 피해 숨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 꼭대기에 가도 거기 계시고, 바다 끝에 가도 거기 계시고, 음부에 숨어도 거기 계시는 하나님 앞에 누가 피할 수 있겠습니까?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학살이 인자의 날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어쩌면 하나님에 대해 분노의 마음이 생길지 모릅니다. 왜 죄 없는 사람을 무참히 죽이는지, 히틀러 같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인자의 날에 모든 악을 멸하러 이 땅에 오기 전에, 예수님은 모든 악을 스스로 담당하기 위해 먼저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바리새인과 제자들에게 이 날에 대한 경고를 예수님이 직접 와서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거절하고 자기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러 오셨습니다. 단 1초도 하나님이 주시는 호흡이 없으면 살 수 없으면서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그들을 깨우치러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피조물이 그 목적을 상실하고 헛되고 헛된 인생을 살다가 쓸모없이 버려지는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영적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 스스로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뒤집어 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가 인류에게 쌓으신 모든 진노의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나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렸으니, 회개하라, 곧 회개할 수 없는 그날이 임할 것이다.
여러분은 선택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든지, 아니면 계속 그 자리에 있다가 죽던지 둘 중 하나 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신의 영원한 운명이 달린 선택입니다. 신중하게 당신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십시오.
이미 하나님에게 돌이킨 분들께 한 가지 말씀을 드리기 원합니다. 여러분 절대 뒤로 돌이키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편에 섰으면서 왜 망설이십니까? 왜 롯의 아내처럼 이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십니까? 이 세상의 종말이 이렇게 분명한 데 왜 불타버릴 것에 인생을 허비하십니까?
돌아서지 마십시오. 천로역정의 그리스도인이 두 귀를 막고 멸망의 성을 떠나 좁은 문으로 달려갔던 것처럼,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눈 감고, 세상에 귀 막고,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인생을 가치 있게 사시기 바랍니다. 돌아선 몸을 하나님 쪽으로 돌이키십시오. 회개하십시오. 인자의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