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본문 : 골로새서 1장 15-20절
설교자 : 조정의
오늘 나눌 골로새서 본문은 골로새서 전체 말씀의 핵심 구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 성경 전체의 가장 뛰어난 설명 중 하나입니다. 또한 가장 교리적으로 풍성하면서도 시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찬송시이기도 합니다. 이 시가 노래하는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주제는 그리스도의 초월성, 탁월성, 충분성입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성령께서 바울을 통해 노래하신 그리스도가 얼마나 위대하고 고귀한 분인지 생각할 때, 그 영적 진리에 압도되어 이것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의 입술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충분히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사 6:5).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는가와 상관없이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실질적인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모두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이 질문은 예수님이 직접 하셨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눅 9:18-20). 이 질문은 또한 영생에 관한 질문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17:3).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오늘 여러분이 대답해야 할, 그리고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질문입니다.
1.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이시다(15-17)
바울의 찬송시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15-17절은 예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만물의 주권자, 통치자이심을 노래합니다. ② 18-20절은 예수님께서 새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교회의 주권자, 통치자이심을 노래합니다.
15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절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어떤 이들에게 예수님은 역사적 인물입니다. BC 4년경,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유명한 랍비로 사람들을 가르치다가 제자의 배신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랑과 자비의 대명사, 성인, 기독교의 창시자 정도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처음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노래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 주신다는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 저와 여러분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느 정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을 따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창 1:26-27).
하지만 예수님은 단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나타내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십니다. 얼마나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요 14:9).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사도 요한은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란하게 나타내는 광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체를 온전히 나타내 보이시는 형상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누구도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충만하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기 품 속에 있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자기의 영광과 본체를 만물 가운데 온전히 나타내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습니다(요 14:6).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사람의 마음에 비추시는데, 그 빛을 예수님의 얼굴에 두셨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을 비추는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고후 4:6; 요 1:9).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의 이 영광스러운 관계는 예수님과 다른 모든 피조물의 관계를 결정합니다. 예수님과 여러분의 관계를 결정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15절 후반을 보시면,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십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이 표현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번째 피조물이라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도 같은 교리를 가르칩니다. 하지만 바울은 예수님이 뛰어난 피조물이라고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란 표현은 창조된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열의 높음이나 우월성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시편 89편 27절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가리켜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라고 하셨는데, 이새의 막내아들이었던 다윗을 장자, ‘먼저 난 자’로 삼겠다는 말은, 그를 가족 안에서 최고 서열로 삼겠다는 말입니다. 뒤이어 나오는 말을 보면 세상 왕들 중 가장 높은 지존자로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 위에 가장 높은 으뜸, 지존자, 통치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다”고 하셨습니다(요 3:35).
바울은 예수님이 만물 위에 가지고 계신 주권 혹은 통치권에 관해 세 가지 이유를 노래합니다. 첫째로 모든 만물을 예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 둘째로 모든 만물이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모든 만물을 예수님이 붙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누가 창조하셨는가? 왜 창조하셨는가? 누가 붙들고 계시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① 누가 창조하셨는가? 16절을 보십시오. “만물이 그에게서(예수님) 창조되”었습니다. 만물에 무엇이 포함될까요?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를 포함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모든 물질세계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늘과 땅”은 우주 전체를 가리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해, 달, 별, 모든 짐승과 곤충 포함) “땅과 하늘을 만드”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1; 2:4).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물질세계, 즉 ‘보이는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모든 영적 세계의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창조하신 이도 예수님이십니다. 16절에 나오는 “왕권들, 주권들, 통치자들, 권세들”이 가리키는 것이 바로 영적 세계의 피조물들, 곧 천사들입니다(엡 1:21; 벧후 2:10; 유 1:8).
여러분, 해와 달과 별,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식물과 동물들을 보면서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만물이 존재하지 않았다가 존재하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분이 만물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것을,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지은 것이 그분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요 1:3). 그래서 그분은 만물에 대한 주권을 가진 하나님이십니다.
② 둘째로, 왜 창조하셨는가? 만물은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골 1:16). 만물의 존재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만물이 존재하는 이유?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입니다. 시편 19편.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냅니다(시 19:1). 로마서 1장.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습니다(롬 1:20). 모든 만물 즉 앞에서 말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을 우상처럼 섬기는 그것이 바로 죄라고 지적했습니다(롬 1:20-23).
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 죄입니까? 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이 죄입니까? 만물이 창조된 목적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그 창조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를 높이고 감사하고 영광 돌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입니다(전 12:13).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분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존재입니다. 누군가 ‘왜 사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 마시고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위하여 여러분을 창조하셨습니다.
③ 마지막으로 누가 만물을 붙들고 있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또한 그가(예수님)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다시 한번 예수님이 만물 중 으뜸이고 최고이심을 강조하면서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서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바울이 아덴에서 우상숭배하던 이들에게 했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를(하나님)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move) 존재하느니라”(행 17:28).
만물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언가에 의존합니다.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 알맞은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고, 필요한 양식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우주로 나가서 생물의 생존 조건을 생각해보면, 지구와 다른 행성의 거리, 궤도 등이 질서 있게 움직여야 생존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누가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붙들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대로 그리스도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십니다(히 1:3).
결론: 예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힘입어 만물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만물에 대한 주권, 소유권, 통치권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여러분에 대한 주권, 소유권, 통치권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죄로 눈이 가려진 사람은 스스로 지혜 있다 하지만 어리석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과 바꾸고, 그 마음의 정욕대로 살아갑니다(롬 1:22-23). 그런 그들을 새롭게 창조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예수님은 교회의 창조주 하나님이시다(18-20)
바울의 찬송시는 이제 예수님과 그분이 만드신 새 피조물, 교회를 노래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교회의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18절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절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절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님이 “몸인 교회의 머리”십니다. 머리가 몸의 기능과 움직임을 통제하듯,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 즉 교회의 통치자가 되십니다(골 2:19).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노래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교회의 주권자와 통치자이신 것은 예수님이 교회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위하여 교회가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① 누가 교회를 창조하셨나? 바울은 노래합니다. “그가 근본이시요”. 예수님이 교회의 근본이 되십니다. 교회는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근본이신 예수님 때문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물보다 먼저 계셔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처럼, 교회보다 먼저 계신 예수님은 “근본”으로서 모든 교회를 창조하셨습니다.
어떻게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가 되심으로써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20). 첫 열매로 이후 모든 열매가 맺히게 된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가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고후 5:17).
② 둘째로, 예수님이 왜 교회를 창조하셨습니까?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만물의 으뜸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늘와 땅,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하신 것입니다(빌 2:6-11).
여러분 이것을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만물을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특히 사람은 죄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회복하기 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교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으뜸으로 여기고 순종하고 그 앞에 무릎 꿇고 그 이름을 높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원래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모든 영광이 돌려지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예수님께서 교회를 창조하신 목적은 만물의 으뜸이 되기 위함이며, 만물에게 경배를 받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 어떤 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롭게 태어난 피조물 즉 교회로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앞에 무릎 꿇은 삶을 살아가실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다는 것(고전 10:31),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롬 14:8).
하지만 이 가운데 어떤 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이런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을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살든지 죽든지 나를 위해서. 이것이 여러분 삶의 모토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이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생각이 드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생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마지막 19-20절 말씀이 이를 명확하게 노래합니다.
③ 첫째,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교회를 창조하셨고, 둘째,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교회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전쟁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악한 세력과의 전쟁입니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 그리고 그 영의 지배를 받는 불순종의 자녀들을 하나님은 전멸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엡 6:12; 2:2).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가 넘치셔서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항복하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자기와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사람들, 죄인들과 화평 조약을 맺기 위해 대사를 보내셨습니다. 그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9절 말씀처럼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근본 본체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님이 직접 화평 조약을 맺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거절하면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 4:12).
예수님은 단지 화평 조약을 소개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이 직접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화평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20절 말씀처럼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죄인이 치러야 할 죄의 대가, 하나님 앞에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의 죗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그로 인해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과 화목을 이루시는 일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자, 그는 이제 하나님의 정벌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다른 말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창조하신 교회, 예수님을 으뜸으로 높이고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는 어떻게 될까요? 그리스도를 과거 이스라엘에 있었던 훌륭한 랍비나 기독교의 창시자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그 발아래 무릎 꿇고 순종하며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가장 유명한 말씀,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6-18)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그래서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 질문이 하나님과 여러분의 영원한 관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심판이냐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오거나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3. 결론
요즘 대한민국이 참 소란스럽습니다. 명절에도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말을 듣고, 뉴스나 신문에서도 계속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이야기합니다. 또 전쟁이 날 수 있을까요? 잘 모르지만, 북한은 계속 미사일을 쏘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는 무시할 수 없는 외교적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꼭 진짜 전쟁이 아니더라도 금융, 무역등에 있어서 우리는 많은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나라가 부도나거나 다른 나라에 많은 인력과 자금을 빼앗길 위기는 언제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정신이 바짝 들고, 앞날을 염려하고, 뭔가 필요한 대비를 하기 위해 행동을 취하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가 예측하기 어렵지만, 우리 영혼의 미래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앞날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곧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대적하는 모든 만물을 심판하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아들의 이름을 높이지 아니하고 그 발 아래 무릎 꿇지 아니한 모든 사람은 그날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지 않고 계속 퍼붓는 하나님 나라 바깥 어두운 데 내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고통을 영원히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전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와 화목을 이루라고 요구하십니다. 다윗이 시편 2편 12절에 노래한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맞”추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진노하심으로 여러분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는 급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께 피한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머리 되신 예수님을 따라는 몸된 교회라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흔들리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거하십시오. 만물의 주권자요 통치자이신 그리스도 안에 소망을 두십시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