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서로와 각각

본문 : 갈라디아서 6장 2-5절

설교자 : 이병권

 

여러분은 여행을 좋아하십니까? 흔히 집 떠나면 고생이고 집이 제일 좋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 여행을 통해 누군가와 특별한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즐겁고 유익한 일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 자체를 두고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집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 진짜 집은 천국인데 그곳에 갈 때까지 여행을 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본향인 천국이 아니라 타지인 이 땅에서 생활할 때 힘들고 어려운 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의 짧은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영원한 진짜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이곳에서의 여행을 주님 안에서 즐기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것 중에 하나, 여행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짐을 잘 챙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여행을 즐기며 여행을 무사히 잘 마치기 위해서는 여행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짐을 잘 관리하고 잘 챙겨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인생에서 감당해야 하는 짐들을 여행을 마칠 때까지 어떻게 잘 관리할 수 있을까요? 오늘 저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짐을 관리하는 방법, 특별히 인생의 짐을 지는 방법에 대해서 두 가지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짐을 지는 방법, 첫 번째는 서로 짐을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짐을 져야 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2)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짐을 서로 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바울이 서로 지라고 말하고 있는 짐, 서로가 함께 감당해야 하는 짐은 무엇일까요? 먼저 이 명령 앞에 있는 1절에서 죄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형제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일 때 우리는 죄의 짐을 지고 있는 형제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혼자서 죄의 짐을 질 수 없기 때문에 함께 그 짐을 지고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사랑으로 바로잡아야 하는 죄의 문제는 함께 져야 하는 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져야 하는 짐은 좀 더 넓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과 더 큰 문맥에서 그 의미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은 5장 13, 14절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주석가는 2절을 5장 13, 14절 말씀의 ‘메아리’라고 말합니다. 5장에서 선포된 말씀이 조금 다른 표현으로 다시 한 번 선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명령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13-14)

두 구절에서 2절의 말씀과 같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에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는 것이 2절에서는 짐을 서로 지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14절에 온 율법을 이루는 것이 2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은 서로 종 노릇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당시 짐을 지는 일은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서로 종 노릇 하는 것이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짐을 서로 지라는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서로 종 노릇 하라는 의미를 더 실제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 함께 지는 짐을 믿는 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문제들을 포함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죄일 수도 있고, 인생에서 만나는 시련과 아픔일 수도 있고, 혼자 견디기에는 버거운 삶의 무게와 압박일 수도 있고, 힘겨운 시험과 계속되는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짐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핵심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짐, 어떻게 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져야 합니까? 서로 그 짐을 져야합니다. 서로가 종이 되어 함께 짊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서로”라는 말을 문장의 제일 처음에 둡니다. 우리 성경에는 번역을 하면서 어순이 바뀌었지만 원래 성경에는 “서로”라는 말로 문장을 시작하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함께 하고 있습니까? 왜 교회가 함께 모여 있습니까?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가 종이 되어서 서로의 짐을 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함께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서로를 섬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죄로 인해 힘들어 하고 있다면, 삶의 무게로 지쳐있다면, 너무 많은 일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면 사랑으로 짐을 나누어야 하고 사랑으로 거들어 주어야 합니다. 기꺼이 형제를 위해 내 어깨를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내 어깨가 좁다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성령님의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돌아보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말씀에 따라 서로의 짐을 질 때 어떤 결과를 얻게 됩니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게 됩니다(2).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은 주님께서 친히 보여주셨고 완성하신 사랑을 그 주님의 사랑을 우리 삶 가운데 채워가는 일입니다.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주님의 가르침과 주님의 본을 좇아서 주님을 닮아가는 일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짐을 지고 서로의 종이 되어 사랑으로 섬기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명령에 순종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서로의 짐을 지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3)

서로의 짐을 진다는 것은 나 역시도 부족한 사람이고 나 역시 다른 지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자기 힘만으로 살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다 짐이 있고,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다 다른 사람의 돌봄과 섬김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생각은 교만이며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모르고 속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서로의 짐을 지는데 방해가 될 것입니다. 서로 종 노릇하며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짐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짐을 죽어라고 혼자서 지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한 가족이 되게 하셨고 함께 하며 서로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짐을 지고 힘겨워하고 있다면 곁에 있는 다른 누군가는 사랑으로 그 짐을 함께 져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이 있다면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 맡겨야지! 주님을 의지해야지!’

맞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해야 하며 주님은 우리의 짐을 져주십니다. 그런데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주님이 우리 짐을 져주시는 방법 중에 하나가 우리 곁에 있는 지체들을 통해서 짐을 덜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형제, 자매를 통해서 그 일을 하십니다.

바울의 경우, 바울은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특별히 고린도 교회로 인해 바울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마음에 쉼이 없었고 두려움을 느끼며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그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고후7:5)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고후7:6)

하나님이 어떻게 바울을 위로하셨습니까? 어떻게 그의 짐을 덜어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위로는 특별한 계시나 음성이나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디도를 통해서, 한 형제를 통해서 그를 위로 하셨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은사로 다른 성도를 섬김으로 다른 성도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실천함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서 서로의 짐을 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서로의 짐을 지려면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상황을 알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형제가 어떤 짐을 지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짐을 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형제의 입장, 그 자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지체를 억누르고 있는 짐, 그 짐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그 짐의 무게를 덜어줄 수 없습니다. 짐을 나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갈 때, 그럴 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짐을 가볍게 할 수 있고 함께 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어떻게 우리의 짐을 지셨습니까? 우리 가까이 오셨습니다. 친히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가장 높이계신 분께서 우리 곁에 오셔서 죽기까지 가장 낮아지셨습니다. 사랑으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사랑으로 서로의 짐을 지기 위해 서로의 종이 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여러분 앞에 한 어린 아이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연세 많으신 어르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들고 비틀 거리고 계십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가서 도와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힘겨워 하는 아이가 내 자녀라면 어떨까요? 그 어르신이 내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배우자가 앞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짐을 혼자 들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돕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하게 일어나지 않습니까? 다른 일을 미뤄두고 달려가서 도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그러합니다. 우리가 한 가족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어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기꺼이 그의 곁에 가서 그 짐을 함께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신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서로의 짐을 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짐을 짐으로써 나의 짐을 지신 우리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짐을 지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이어서 짐을 지는 방법, 두 번째는 각각 짐을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짐뿐만 아니라 각각 자기 짐을 져야 합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4-5)

짐을 서로 지라는 말과 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는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혹시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들리지는 않으십니까? ‘아까는 다른 사람의 짐을 지라고 하더니 지금은 자기 짐은 자기가 지라고 하는 건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두 짐은 서로 다른 짐입니다. 같은 짐이 아닙니다. 우리 성경은 2절과 5절의 단어가 똑같이 짐으로 번역되었는데 서로 다른 단어입니다. 두 단어를 구분하면 2절의 단어는 무거운 짐을 의미하고 5절의 단어는 일반적인 짐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2절의 짐은 사람이 나눠질 수 있는 짐이지만, 5절의 짐은 나눌 수 없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짐으로 구분합니다.

물론, 항상 이 두 단어를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 단어가 구분 없이 비슷한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두 단어를 분명히 구분해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4절과 5절을 다시 보시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4절은 “각각 자기의 일”이라고 말하고 5절은 “각각 자기의 짐”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말하는 “자기의 짐”은 “자기의 일”과 같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2절에 나오는 짐과 구분하면서 다른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쉬운 성경은 5절의 “짐”이라는 단어를 4절과 같은 “일”로 번역합니다. 2절의 “짐”과 5절의 “짐”을 구분하기 위해, 5절의 “짐”을 4절과 같은 “일”로 번역한 것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2절의 짐과 5절의 짐은 서로 다른 것이고, 5절의 짐은 4절의 일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각자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짐은 무엇일까요? 학자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그분을 섬기라고 주신 여러 기회와 재능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짐은 때가 되어 주님 앞에서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지기에는 어려운 짐을 함께 져야 하지만 우리가 나눠질 수 없는 짐, 혼자 지기에 충분하고 감당할 수 있는 짐은 스스로가 져야 합니다. 각자의 짐을 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에도 이와 비슷한 명령이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명령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4)

오늘 본문의 순서대로 하면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균형 잡힌 신앙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여러 문제들 속에서 서로를 도와야 하지만 각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 다른 짐을 주셨고 그 짐을 지고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한 일을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본문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나눌 수 없는 짐이 있다. 그것은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서 져야 하는 우리의 책임이다. 그날 당신은 내 짐을 질 수 없고 나는 당신의 짐을 질 수 없다

우리는 그 날의 주님의 평가가 있음을 기억하고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고 자기의 짐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각자의 짐을 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4) 우리의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 있고 남에게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학자들의 견해도 몇 가지로 나뉘는데 그 견해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본문의 전치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가능한 해석이 두 가지로 구분되고, 구분된 두 가지 해석 중 하나는 또 다시 두 가지로 해석이 나뉩니다. 그래서 세 가지 해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랑 자체에 초점을 두는 건데, 자랑이 자기에게만 있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있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 자랑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랑의 근거에 초점을 두는 건데, 자랑의 근거가 자기에게만 있도록 하고 다른 사람을 자기 자랑의 근거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자랑을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도 자랑의 근거에 초점을 두는 건데, 자랑을 다른 사람과 비교를 통해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하면 다른 사람과 비교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가지 견해로 나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견해를 가져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5장 26절에서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되었는데, 같은 문맥으로 볼 때 다른 사람과 비교를 통해 느끼는 감정에 대한 권면을 생각한다면 셋째 견해가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날에 주님 앞에서 받을 평가를 생각하고 그 날의 자랑을 생각한다면 지금 다른 사람과 비교를 통해서 나의 자랑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의미 없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헛된 영광일 뿐입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하나님의 기준으로 자신을 살펴보고 나에게 맡겨진 책임을 내가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기회와 재능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부지런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짐을 지는 두 번째 방법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어느 책에 소개된 이야기를 나누며 마치려고 합니다. 크리켓 선수의 이야기인데, 크리켓이라는 운동은 야구처럼 배트를 가지고 나무 공을 쳐서 득점을 하는 운동입니다. 그리고 한 팀이 11명으로 구성됩니다.

한 크리켓 선수가 자신의 자서전을 섰는데 처음 10년 동안 그가 속한 팀은 우승을 한 번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 팀에는 인기 선수들이 많았고 대부분은 선수들이 다른 팀의 선수보다 실력이 월등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팀은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뛰어난 선수들이 오직 자신과 자신의 성공에만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10년 후에 선배 선수 몇몇이 은퇴했고 그들만큼은 유명하지 않은 젊은 선수들이 팀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새로 임명된 주장은 유명하지 않은 선수였습니다. 팀의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선수들은 팀을 위해 경기에 임했고 주장을 중심으로 팀은 한 마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예로, 같은 편 선수가 실수를 하면 비웃기보다 도와주려고 했고 누군가 침체에 빠지면 자신이 대신 부각될 수 있다고 기뻐하기보다 그 선수를 격려하고 도와주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팀은 마침내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은 오히려 더 낮아졌는데 팀원이 각자 자신을 위한 플레이가 아니라 팀을 위한 플레이를 했을 때 우승을 했던 것입니다.

교회도 이와 같은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전체는 각자를 위하고 각자는 전체를 위하는 것입니다. 서로 한 팀이 되어서 각자의 책임을 다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짐을 덜어주며 힘을 합쳐서 공동의 목적을 성취해 가는 것입니다.

어떤 목적입니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으로 서로가 종이 되어 자신의 일을 살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짐을 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짐을 지는 것과 각각 자기 짐을 지는 것이 균형을 이루어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 땅 가운데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사랑을 실천한다면,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주어진 짐을 서로가 지고 각자가 진다면 힘든 여행이긴 하지만, 수많은 어려움을 만나는 여행이긴 하지만 주님 안에서 즐겁고 행복한 여행으로 인생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진짜 집에서 주님의 칭찬과 함께 영원히 참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 날을 기대하며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짐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짐을 질뿐만 아니라 각각 짐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