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리스도인과 가정 2

본문 : 베드로전서 3장 7절

설교자 : 조정의

벧전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지난주 아내에게 주어진 명령에 이어 오늘은 그보다 더욱 무거운 책임이 주어진 남편들에 대한 명령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교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이 ‘주일’에 국한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어떻게 주님을 섬기고 어떻게 믿는 자로서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말씀을 통해 베드로는, 주일에만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는 사회조직과 직장 안에서, 또한 가정과 교회 안에서 어떻게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인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 우리는 모든 삶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자신이 처한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가정이라는 장소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친밀한 관계인 부부관계 안에서 남편에게 어떤 명령을 주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남편들아”(7) “남편들”은 오늘 살펴볼 명령의 대상입니다. 아내들은 이 명령에 대해 배우며 어떻게 남편을 도와주고 기도할 수 있을지,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나 손자에게 어떻게 성경적으로 조언할 수 있을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7) 남편들이 이 명령에 순종하는 동기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동일합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순종하는 것이 그러했고, 사환이 그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러했으며,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도 그러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순종의 대상이 악하든지 너그럽든지 상관없습니다.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7) ‘동거하다’라는 단어가 오늘날에는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신약성경에서는 단 한 번 이곳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12번 사용되었는데 오직 부부관계 안에서만 쓰였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이 단어를 “함께 살아가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부부가 단순히 장소를 공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지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 사회적인 것, 성적인 것들을 모두 공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한 몸이 되는 삶입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결혼‘을 제정하실 때 계획하신 가장 이상적인 모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세기 2:24). 한 몸이 된 삶, 하나가 된 삶을 말합니다. 오늘날에는 ’소울메이트‘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성경적인 표현은 ’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마 19:6; 막 10:9; 참고. 말라기 2:14). 아담도 하와를 처음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하나님이 두 사람을 한 몸으로 묶어주신 것입니다.

결혼의 관계는 함께 살아가고 모든 것들을 공유하며 나누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가 아닌 것은 그저 ’룸메이트‘와 같습니다. 서로의 삶에 관여하지 않고 적당한 경계를 나누는 삶,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부부의 삶이 아닙니다. 또는 남편은 그저 돈을 벌어오는 사람으로, 아내는 집안일을 하고 자녀를 돌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나는 내 일을 잘했는데 너도 네 일을 해라‘는 사무적인 관계는 부부관계가 아닙니다. 성적인 관계도 부부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동거하다‘라는 것은 부부가 지적인 것, 정서적인 것, 사회적인 것, 성적인 것, 종교적인 것을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느끼는 것을 남편이 느껴야 하고 아내의 기쁨은 남편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아내의 부족함은 남편이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아내가 잘하는 긍정적인 부분은 남편에게 자랑거리가 됩니다. 이것이 한 몸으로 살아가라는 명령입니다.

여러분은 아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느끼고 있으며 깨닫고 있는지 아십니까? 아내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가가 머리에 그려지십니까?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는 명령의 앞부분에는 “지식을 따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무슨 지식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어떤 한 가지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함께 살아갈 때 필요한 모든 지식일 것입니다. 남편은 가정의 리더이기에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정을 설계하셨는지’에 대해 아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아내에게 주어진 명령은 ‘남편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정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남편에게 주어진 책임인 것입니다. 이 가정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 가정은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남편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가정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남편에게 필요한 지식은 ‘아내에 대한 지식’입니다. 아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녀에게 어떤 약점이 있는가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것은 남편이 꼭 갖춰야 하는 지식입니다.

이 두 가지 지식을 갖추기 위해 남편들은 노력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가정을 어떻게 설계하셨는가에 대한 지식은, 말씀을 많이 묵상하고 연구하는 데서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를 꾸준히 연구해야 합니다. 또한 아내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별일이 없으면 ‘그냥 잘 지내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알아야 합니다. 즉, 남편들은 두 가지 면에서 학생이 되어야 합니다. 배우는 사람 말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가정에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성경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아내에 대해서는 전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아내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자녀가 생기면 자녀가 일순위가 되고 아내는 순위가 밀립니다. 그러나 자녀를 조금 멀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과 같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주심같이 하라”(엡 5:25). 그리스도가 교회를 얼마나 잘 알고 계셨습니까? 얼마나 교회를 알고 계셨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잘 아십니까. 우리는 ‘나보다 더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 10:30). 주님은 우리의 생각도 마음의 뜻도 연약함도 다 아십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의 심각성도 아시고 그렇기에 우리 대신 죄를 지셨습니다. 바로 그 주님의 모습이 남편이 닮아야 하는 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지금 남편들은 세상에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아내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는 없습니다. 남편들은 그리스도의 본에 따라 주님이 나를 아시는 것처럼 나도 아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셔야합니다.

“귀히 여기라”(7) 이것은 남편에게 주어진 두 번째 명령입니다. 이 말은 ‘존귀하게 대하라’, ‘고귀한 가치를 인정하라’는 의미입니다.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대할 줄 알라”(살전 4:4). 아내를 존귀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 그루뎀은 “친절, 긍정적인 말, 시간과 돈을 사용함에 있어 높은 우선순위 부여”(그루뎀, 220)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남편들 중에는 아내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내를 부를 때 “야”라고 부르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합니다. 교회의 다른 성도에게는 그렇지 않으면서 유독 아내에게는 더욱 이해심이 좁아집니다. 더 쉽게 분노하고 답답해하며, 시간과 재물을 사용할 때 아내는 자녀나 부모님보다 순위에서 밀려납니다. 그것은 아내를 고귀하게 여기는 모습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아내를 고귀하게 여기라고 말하면서, 두 가지를 알라고 말합니다. 하나는 아내가 더 “연약한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곧 아내가 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뭔가 남편들보다 부족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남자들이 더 많지 않습니까? 연약한 그릇이라는 것은 육체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약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우신 질서 구조 안에서,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그를 섬기는 역할을 합니다. 그 순종은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아내의 일들을 해달라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주고 얼마나 감사를 표현할까요? 아내라는 사람은 나와 결혼해서 낮은 자의 마음으로 이런 일들을 담당해주고 있습니다.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합니까. 예수님은 낮은 자가 높은 자이고,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남자들은 힘이 더 세고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을 하므로 아내를 조금 부족하게, 또는 권위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내의 육체가 연약해도 존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또한 남편이 알아야 할 것은 아내가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라는 사실입니다. “생명의 은혜”는 다른 번역에서 ‘영원한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영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말하는데, 우리가 숨을 쉬는 것도 은혜이고, 건강한 것, 가정에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화목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기업에 이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남편들은 아내와 함께 이어받을 것입니다. 아내는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상을 받을 동역자입니다. 내가 아내를 누르고 무시한다고 해서 더 많은 상과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는 한 팀인 것입니다.

오늘 남편에게 주어진 명령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아내를 아는 지식으로 아내와 함께 살아라, 아내를 존귀한 자로 연약한 그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로 존귀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목적에 대해 베드로는 짧게 언급합니다.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7). 우리가 아내와 부부싸움을 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남편이 아내에게 어떻게 대하는가는 남편과 하나님의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거나 마땅히 귀하게 대할 만큼 대하지 않을 때 그것에 대해 하나님은 관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남편들이 자신들의 아내와 함께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데 관심을 갖지 않고 그들이 그렇게 살지 않을 때, 그리스도인 남편들과의 관계를 ‘차단할’ 분은 바로 하나님이다”(그루뎀, 224).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하나님과 사귀면서 어둠에 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둠과 하나가 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알려고 하지 않고 아내와 모든 면에서 함께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 것, 아내를 존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은 결국 ‘죄’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갈라놓는 죄입니다.

어떤 남편은, ‘나는 아내에게 친절히 대하고 싶지만 내 성격이 원래 이렇다’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나는 아내에게 따뜻한 말을 하고 싶지만 내가 자라온 환경이 그렇지 않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아내에 대해 알고 싶고 존귀히 여기고 싶지만 아내의 독특한 성격과 생활습관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기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다른 것이 아닌 여러분 안에 있는 죄 때문입니다. 죄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바로 그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바로 그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분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감사하고 그 구원의 목적에 합당하게 사시길 원한다면 이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아내를 더욱 알기 위해 힘쓰시고 아내와 함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존귀하게 대하십시오. 그렇게 이 명령에 충성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을 우리의 삶으로 세상에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서 빛으로 옮기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그러한 진리가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