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는 누구신가?

본문: 요한복음 1장 1-18절

설교자: 이병권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더 좋아하는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성경구절, 암송하는 말씀이 많이 있고 그만큼 친숙한 성경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성경을 읽어보라고 할 때 요한복음을 읽도록 권하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요한복음을 분석하면서, 요한복음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기초적인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나 쉽게 요한복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요한복음은 뛰어난 학자가 평생을 연구해도 그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심오한 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틴 루터는 요한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다 더 단순한 글로 기록된 책을 나는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 글은 가히 형언하기 어렵다‘ 요한복음은 쉽지만 가볍지 않고, 심오하지만 난해하지 않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요한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과 아주 가까운 친구로부터 예수님에 대해 소개받는 느낌의 책입니다. 그분과 함께 했고 그분을 보고 듣고 직접 경험했던 사람으로부터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겁니다. 단순히 사실 전달이 아니라 해설처럼 그분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해서 설명을 듣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읽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더 알게 되고 그분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고 그분을 향한 사랑이 더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은 당시 살아있는 마지막 사도였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본 생존자 중에 한 사람으로서 요한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직면했던 로마로부터의 박해와 유대인들로부터 오는 핍박과 여러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복음서를 기록합니다. 그들이 진리 가운데 굳건하게 설 수 있도록, 그리고 진리를 찾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요한 자신이 보고 경험한 일을 증거 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고, 그들이 믿는 자로서 생명을 얻게 하려고 요한복음을 쓴 것입니다. 아마도 요한복음은 요한이 에베소에 있을 때,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되기 전에 기록했을 것입니다. 기록한 시기는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AD70년 이후와 AD90년 사이로 추정하는데, 가장 무난한 견해는 85년에서 90년 사이에 기록했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1장에서 12장까지와 13장에서 21장까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의 프롤로그, 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서론에서 장엄한 이야기로 자신의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첫 번째로 살펴볼 핵심 단어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의 시작을 읽었을 때 창세기의 말씀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태초에 하나님이라고 시작되는 창세기와는 달리,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라고 시작되기에 이러한 다름을 주목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있었던 자리에 말씀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요한이 하는 말은 말이 안 되는 말입니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고, 말씀이 하나님과 구별된다고 말함과 동시에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진리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 또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고 우리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요한은 이 신비한 진리를 말씀으로 소개할 뿐입니다.

여기 말씀은헬라어로 로고스라는 단어입니다. 로고스는 성경에서 330번이나 사용된 단어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성경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로고스를 예수님을 소개하는 표현으로 특별하게 사용합니다. 요한의 특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에도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며 요한은 그의 편지를 시작합니다(요일1:1).

요한은 말씀이라는 단어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이 표현을 생각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다 이해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로고스에 대한 정말 방대한 연구들이 있습니다. 역사적인 배경을 통해 로고스를 설명하려는 연구들과 자료들이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연구들도 있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연구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요한복음의 깊이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려운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태초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태초에 계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말씀은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말씀은 말씀으로서 능력이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하며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성취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그러한 말씀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태초부터 계신 분으로서 하나님 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질문을 해봅니다. 그는 누구신가?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시작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태초부터 계셨고 언제나 존재하십니다.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 핵심 단어는 입니다.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태초에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때가 되어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에 빛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참 빛이십니다. 빛은 어둠과 대조됩니다. 빛과 어둠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빛이 비칠 때 사람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빛에 대한 반응은 둘로 나뉩니다. 사람은 어둠에 속해있기에 빛이 비칠 때 어둠에 머무는 것을 더 좋아해서 빛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빛을 통해서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빛으로 나아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빛으로 나아오는 자, 그 빛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시기에 가능합니다.

사람의 출신이 어떠하든지 그 사람이 얼마나 원하든지 어떠한 마음으로 얼마나 열정적으로 수고하든지 관계없습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어떤 선지자도 어떤 위대한 사람도 어떤 지도자도 이 세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누구도 사람을 밝혀주는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사람일 뿐입니다. 예수님만이 사람을 비추시는 빛이 되십니다. 어둠에 속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빛이신 예수님뿐입니다.

왜냐하면 빛을 비추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빛을 비추는 것은 어둠에서 나와 빛으로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인생을 더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빛을 비추는 것은 사람도 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일이 아닙니다. 빛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빛은 어둠에 속한 자, 죽었던 자에게 생명을 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요한은 이 단락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생명을 언급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했고(4),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13)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생명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요? 어떤 희망이 있을까요? 어둠에 속한 인생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무슨 소망이 있을까요? 세상 안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밖에서 참 빛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생명 되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에게 소망이 되셨습니다.

오늘의 질문을 다시 해봅니다. 그는 누구신가? 그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 번째, 핵심 단어는 육신입니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육신은 다른 단어들에 비해서 한 번만 언급되기에 중요도가 낮은 단어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단어보다 더 강렬한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람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입니다. 대신에 예수님을 신적인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반대로 예수님을 신적인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그분이 사람이셨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육체는 악한 것이고 할 수 있다면 육체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선하신 하나님이 육체를 가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가르침과 사상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는 영혼으로 존재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음식을 드시거나 주무신 것은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분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분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그러한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 말씀에서 거하다는 단어의 뜻은 장막을 치다는 뜻입니다. 장막을 치고 장막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한 장막을 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 성막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고 이스라엘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성막이나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그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신 예수님은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 1:1-2)

하나님이 옛적에는 꿈과 환상으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나타나셨으며 천사들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서 예수님이 사람이 되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사람이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알고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그 위대하신 예수님께서 사람으로서 사람의 한계를 경험하시고 주리기도 하시고 목마르기도 하시고 피곤하기도 하시고 고통당하시고 죽음에까지 이르신 것을 보면 우리는 할 말이 없어집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잠시 동안 사람들과 함께 하신 그 정도의 일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들의 삶 속으로 들어오셨고 그 삶을 친히 경험하시며 인생에게 친히 자신을 나타내신 일입니다. 우리가 이 일에 대해서 은혜 위에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질문입니다. 그는 누구신가? 그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의 서론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중요한 진리,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예수님의 성육신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온 중요한 단어들과 주제들은 앞으로 살펴볼 요한복음의 본론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서론이 하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서론에서 했던 그는 누구신가? 라는 질문을 앞으로 살펴볼 본론에서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더 알아가게 되고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은 우리 마음에 선한 동기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분을 향한 헌신과 그분을 닮아가는 삶으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믿으라는 계속되는 초청과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부르심에 우리가 합당하게 응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두 가지 길 중에 하나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 그분이 비추시는 빛을 통해, 사람이 되신 그분을 믿는 자가 되어 그분의 길을 가는 자가 되든지 아니면 그분을 거절함으로 어둠의 길을 계속 걷는 자가 되어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든지, 둘 중 하나의 길을 가게 됩니다. 어느 길을 가고 있든지 그 모두에게 요한복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을 믿는 자가 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는 것, 뿐만 아니라 믿는 자로서 그 생명을 더 풍성히 누리는 것, 이것이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이며 요한복음을 읽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고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의 제자가 되어 주어진 사명을 알고 그 사명에 충성하는 자가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 모두가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더 알아감으로 이 부르심에 더욱 합당하게 응답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