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구원하는 표, 침례
본문: 로마서 6장 1-4절
설교자: 조정의
사도 베드로는 세례를 가리켜 “구원하는 표”라고 말했다(벧전 3:21). 물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물은 사람을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곧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벧전 3:18) 그들을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신 부활을(롬 4:25) 가리키는 ‘표징’이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얻은 구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식이다.
우리는 ‘물로 씻다’라는 일반적인 뜻을 가진 세례보다 ‘물에 잠기다’라는 구체적인 뜻을 가진 침례라는 말을 선호한다. 이는 둘 다 원어 밥티조마이의 의미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 일관성 있게 묘사된 세례의 모습이 물에 잠기는 것이기 때문이다(“세례를 베풀고 물에서 올라올새”, 행 8:38-9). 또한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묻혔다는 것, 물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방식이 바로 침례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명령(지상 대명령)을 주셨고 이는 오늘까지 교회가 충성해야 할 사명이 되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오늘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10명의 성도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다.
본래 예식이란 의미를 담은 형식이라서 의미를 강조하지 않으면 형식만 남게 된다. 예를 들어, 결혼식은 하나님과 수많은 증인 앞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한 몸이 되는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의 요구에 충성하며 언약의 은혜를 함께 누리겠다는 서약 혹은 맹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의미보다 아름다운 드레스, 풍성한 뷔페 음식, 예식장에서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나게 될 것 등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침례식도 마찬가지다.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예식에 참여하는 것, 종교심을 다시 불태우는 것, 가족과 지인의 축하를 받는 것, 성도들의 환영을 받는 것 등 여러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침례가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침례를 통해서 무엇을 맹세하는지, 어떤 언약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성도 앞에서 맺는 것인지 아는 것이다.
오늘 침례를 받을 사람들은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나머지 성도들도 증인으로서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침례를 이미 받은 성도들도 과거에 맺은 언약, 오늘 그리고 계속해서 충성해야 할 맹세를 다시 새롭게 갱신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로마서 6장 1-4절을 통해 살펴보자.
본문은 복음의 맥락에서 주어졌다.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죄인이다. 양심과 율법을 통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1-3장). 그러나 하나님이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따라 우리에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길을 주셨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심으로 우리 모든 죄를 사하시고, 그분의 부활하심과 함께 우리에게 영원한 새 생명을 주셨다(4-5장).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요 3:16).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했는데(롬 5:20), 이는 하나님 은혜가 구원할 수 없을 만큼 큰 죄인이 없다는 걸 확증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너무 크고 넓고 높고 깊어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든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든지 상관없이 능히 믿는 자를 구원하신다.
본문의 첫 구절인 로마서 6장 1절은 이런 문맥에서 자연스럽게 혹은 엉뚱하게 흘러나온 질문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롬 6:1)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면, 지금 계속 죄를 짓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는 질문이다. 오히려 죄를 범할수록 더 많은 은혜를 입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바울은 이 엉뚱한 질문에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관하여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반문했다(2절; 벧전 2:24,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 그리고 이를 나타내는 예식 곧 침례를 상기시켰다(3-4절).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3-4)
여기서 바울은 침례의 의미를 분명히 밝힌다. 먼저, 침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묻혔다는 사실 곧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사실을 확증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이렇게 밝혔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또한 침례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하신다는 진리를 선포한다. 최근에 살펴본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사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의 목적을 가리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밝혔다(2:9).
그러므로 침례에 순종하는 자는 어떤 언약을 맺고, 어떤 맹세를 하는 것인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나는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하겠습니다’라는 서약이다. 삶의 목적이 바뀌었고, 삶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맹세다. 예수님이 제자에게 요구하신 삶 곧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맹세다(눅 9:23). 침례에 순종하는 자는 이것을 알고 순종해야 한다. 침례식의 증인으로 참여하는 성도는 이것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이 서약을 근거로 서로 책임지는 지체가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자체를 잘 모른다. 그저 큰 환난을 면하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 정도로 생각한다. 자기 삶에 종종 도움을 줄 대상에게 적당히 잘하겠다는 성의 표시 정도로 여긴다. 혹은 그리스도인 중에서 ‘나실인’처럼 특별히 하나님께 충성을 맹세할 이들, 그냥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제자’가 될 사람이 받는 예식이라 오해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상대명령에서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제자다. 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가 분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지킨다(마 28:20). 예수님은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침례식을 앞둔 성도를 두렵게 하거나 무거운 짐을 억지로 지우게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침례식이 선포하는 메시지는 은혜의 메시지다.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한 자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이 침례식이 선포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하지만 그 은혜가 우리를 방종으로 이끄는 게 아니란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 사랑이 우리를 우리 삶의 주인으로 살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기 전, 죄가 우리 안에서 왕 노릇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 같이 이제는 은혜가 우리 안에 왕 노릇 하여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한다(롬 5:21).
결론적으로 침례를 통해 침례자나 침례의 증인이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모두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회복할 때마다 하나님이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갱신했던 것을 아는가? 그들은 마음과 목이 굳고 완악했지만, 언약에 신실한 사랑(인자하심)으로 끝까지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언약에 충성하기로 맹세했다. 침례식을 통해 우리도 그렇게 하길 원한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으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을 기억하며 선포하기 원한다. 그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기 원한다. 그리고 그 은혜의 언약에 충성하겠다고 하나님 앞과 모든 성도 앞에서 우리 모두가 엄숙히 서약하는 귀한 예식이 되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