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는 들을지어다
본문 : 요한계시록 1장
설교자 : 조정의
계시록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한 마지막 사도였지만(2절), 자신을 “너희 형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했다(9절). 편지의 수신자들과 자신이 똑같은 성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환난, 그분의 나라를 기다리며 오래 참는 삶을 살고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편지의 수신자는 아시아 일곱 교회(4절) 곧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11절) 교회다. 편지가 회람되기 좋은 시계방향으로 위치한 일곱 교회는 신약 모든 교회뿐만 아니라 세대를 초월한 모든 하나님의 교회를 대표한다.
장소, 연대: 요한은 편지를 밧모라 하는 섬에서 기록했다(9절).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유배된 작은 화산섬이었다.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주후 95년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요한은 밧모 섬에 18개월 격리됐고, 이후 풀려났다. 에베소에서 남은 여생 섬기다 100년 경 소천했다고 알려진다.
핵심 내용: 계시록은 하나님의 계시(아포칼립시스, 1절), 곧 감춰두었던 하나님의 뜻을 밝히 ‘드러낸 것’으로 1-3장까지는 사도 요한 당시에 있는 일(“지금 있는 일”) 4-22장까지는 “장차 될 일”을 다룬다(19절, 1절-“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 주전 200년부터 주후 100년까지 작자 미상의 유대 묵시록 문학이 많이 쓰였는데(에스드라서, 에녹서, 바룩서), 계시록의 큰 차이점은 1) 분명한 저자, 2) 구약 성경을 암시(상징)하는 표현이 굉장히 많이 사용(278/404 구절, 거의 70%), 3) 대부분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내용이 아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위대한 승리와 복된 미래를 확신하는 내용을 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계시록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가? 일곱 교회에게 주님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7, 11, 17, 29; 3:6, 13, 22). 계시록이 쓰인 목적이 바로 신자들에게 소망을 주고 경고하기 위함이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일들을 성령의 감동으로(10절) 밝히 보여주시면서 누구든지 이를 듣는 자,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소망을 약속하시고(3절), 이를 듣지 않고 지키지 않는 자는 반드시 애곡할 것이라 경고하신다(7절).
‘3세대 법칙’이라는 게 있다. 건전한 신학교, 건강한 교회가 대부분 3세대가 지나면 변질되는 슬픈 현실을 반영한 말이다. 우리 교회는 1세대 믿음이 2세대에게 전달되어 지금 3세대를 키우고 있다. 변질되어 텅 빈 건물만 남거나 사람이 붐벼도 교회로서 기능을 잃은, 주님이 촛대를 옮기신 무용지물의 공동체로 변질되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오직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뿐이다. 왜 교회는 들어야 하는가? 2-3장의 서론인 1장에서 그 분명한 이유를 찾아보자. 그리고 앞으로 주님이 교회에 주시는 칭찬과 책망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자.
1.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들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요한의 계시가 요한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자신을 한 “형제”로 낮춰 소개했지만 그가 전달한 계시에 실린 권위의 무게는 엄청났다.
1절을 보면 요한은 계시록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라고 밝힌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예수 그리스도)…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다. 요한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기록된 계시의 출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편지의 인사말인 4-5절에서 요한은 저자인 자신(요한은), 수신자인 일곱 교회에 이어 계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소개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성부, 출 3:14-15),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성령, 사 11:2; 슥 4:2-10),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성자, 시 89:27, 37).
하나님 아버지는 창조되지 아니한 ‘스스로 계신 분’으로 모든 만물의 창조자, 주관자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그 뜻에 따라 역사하신다. 성자 하나님은 아버지의 뜻에 죽도록 충성하시고 아버지를 증언하시고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가 교회에게 주어졌는데 감히 누가 듣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명’이 주어지면 누구든지 그 어명을 임금과 같이 여겨 그 앞에 납작 엎드려 굴복하고 왕의 말씀을 청종한다. 누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어명을 지루해하거나 한낱 조언처럼 여기거나 무시하거나 거역하는가? 오직 원수만이 그렇게 한다. 하나님의 백성,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2. 예수님의 신성과 사역 때문이다
계시록의 말씀을 교회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권위가 담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신 분(선포), 아버지의 어명을 전달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사역 때문이다.
① 신성: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봤다(10절).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는데 그 음성의 주인은 12-16절에 나오는 모습과 같았다.
요한이 먼저 본 것은 일곱 금 촛대였다(12절). 이는 20절에 주께서 친히 밝히신 것처럼 일곱 교회다. 요한은 그 일곱 교회 사이에 계신 인자 같은 이를 봤다(13절). 인자는 메시아를 나타내는 구약 용어로(단 7:13, “인자 같은 이”) 신약에서 예수님이 자주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하셨다(눅 17:24).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다(13절). 대제사장이 입고 있는 예복과 흉판을 암시한다(출 39:29; 히 2:17, 70인역 6/7).
예수님의 머리와 털은 흰 양털 그리고 눈 같이 희었다(14절). 백발은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 신적 지혜를 가리킨다(단 7:9). 예수님의 눈은 불꽃 같았다(14절).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통찰력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았다(15절). 다니엘이 본 환상에서 단련된 주석은 견고한 왕권, 전능한 승리자를 상징했다. 예수님이 최후의 승리자, 영원한 승리자로 세세토록 견고한 왕국을 다스리실 것이다. 예수님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았다(15절). 듣는이에게 경외감을 일으키는 권능의 음성이었다(겔 43:2).
예수님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었다(16절). 일곱 별은 20절에 주께서 직접 설명하신 것처럼 일곱 사자 곧 각 교회의 인도자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친히 전능하신 오른손으로 교회의 일꾼을 붙잡고 계셨다(인도, 보호). 그리고 그분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왔다(16절). 무엇이든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양날 검처럼 예리하고 강력하고 권위가 있어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신다(히 4:12; 계 19:11-15, 심판).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았다(16절).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님의 얼굴에서 찬란하게 빛난 것이다(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결론적으로 요한은 예수님의 신성을 봤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밝히 빛나는 분, 하나님의 능력으로 만물을 다스리고 특히 교회를 붙들고 계신 분이다. 통찰력 있는 공의의 눈으로 불꽃처럼 만물을 살피시고, 그 입에서 나온 무궁한 지혜의 말씀으로 예리하게 영혼을 찔러 쪼개고 판단하여 살리거나 죽이신다(히 4:12). 예수님은 또한 감사하게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자기 백성을 대언하는 일을 영광스럽게 하신다(히 7:26).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예수 그리스도께 세세토록 계신다(계 5:13; 7:12). 모든 신성을 가진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모든 피조물은 그 말씀을 마땅히 들어야 한다.
② 사역: 요한이 본 환상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신성을 밝히 보여준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일(사역)은 요한의 찬송시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예수님은 구원하셨다(찬송시).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5절). 또한 예수님은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6절). 놀라운 신성을 가진 예수님은 우리와 동떨어진 분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은인이시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구별된 나라 택하신 제사장 백성으로 삼으셨다.
교회는 예수님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우리를 죄의 종에서 해방하여 자기 백성, 하나님만 예배하는 예배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받은 자는 반드시 그 음성을 듣는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또한 예수님은 심판하신다(하신 말씀, 17-18절).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처음이요 마지막, 알파와 오메가(8절), 살아 있는 자 곧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다. 그분은 전에 죽었었다(구원 사역), 그러나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심판하신다(심판 사역).
7절 말씀처럼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장차 올 자”, 8절). 그리고 각 사람의 눈이 그분을 볼 것이다. 그리고 그를 찌른 자들 곧 예수님을 대적한 모든 이들도 볼 것이다. 이어서 나오는 말씀을 주목해 보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슥 12:10).
예수님을 찌른 유대인 그리고 예수님을 대적한 모든 족속이 예수님을 보고 애곡한다. 절대 기쁨의 눈물이 아니다. 충격과 슬픔과 공포의 눈물이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분께서 대적하는 모든 이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리라 아멘. 세 번 반복한다.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이란 것이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3절). 예수님은 놀라운 신성으로 나타나 구세주와 심판주로서 복과 화의 계시를 우리 앞에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들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3세대에 변질되지 않은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 오른손에 붙들린 금 촛대가 될 수 있을까? 주님이 촛대를 옮기시는 심판을 면하고 계속해서 세상의 빛으로 주님께 쓰임 받는 건강하고 충성된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권위 앞에 굴복해야 한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는 곧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그 영광에 사로잡혀야 한다. 우리 영혼을 온전히 만족시키는 분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 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길 만큼 그리스도를 보배롭게 여기고 그 영광을 사모하라.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기억해야 한다. 주가 오실 때까지. 자기 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 나라 백성, 하나님만 예배하는 자로 삼으신 은혜와 사랑의 지극히 크심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만일 미지근해져 있다면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경외심, 경건한 두려움을 회복하라.
앞으로 두 달간 우리는 우리를 대변할 일곱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칭찬과 책망을 듣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귀 있는 자들이 되어 성령이 우리 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듣고 지키는 복 있는 자가 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