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과거를 잊지 말고 현재를 기억하라

본문: 사사기 3장 7~31절

설교자: 이병권

 

여러분은 혹시 중요한 것을 깜박해서 당황했던 적이 있으십니까? 시험을 앞두고 열심히 외웠는데 막상 문제를 풀 때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낯선 이름으로 부재중 전화가 와있어서 전화해봤더니 친동생입니다. 내 핸드폰 번호가 몇 번인지 갑자기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고, 올해 내 나이가 몇 살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어떤 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만약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죄의 본성을 가진 우리는 원망스러운 일들, 서운했던 일들, 상처받은 일들을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기억할 것입니다. 이전에 내가 했던 잘못들이 생각나서 계속 나를 힘들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잊어버림, 망각을 축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겐 잊어버림, 망각이 정말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저는 여기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때때로 제가 생각하기에 정말 부족한 말씀을 전했을 때 여러분이 잊어버리시니까 제가 다시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잊어버림이 자연스럽다 하더라도 정말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잊으면 안 되는 것들, 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만약 그런 중요한 것을 잊는다면 그것은 병입니다. 치매라 할 수 있습니다. 주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치매는 정말 무서운 병인 것 같습니다. 제 딸도 벌써부터 엄마의 치매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무서운 치매가 육체로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걸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무서운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어떻게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합니다. 마치 치매에 걸린 것 같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과거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7) 사사기에 반복되는 주기대로 이스라엘은 타락합니다. 하나님 눈앞에서 악을 행합니다. 이스라엘이 행한 악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우상들을 섬긴 것입니다. 그것이 악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비극,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씀이 여기에 또 다른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십니다. 이방 민족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어떻게 합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9)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한 구원자 옷니엘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하지만 옷니엘이 죽은 후 성경은 또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12) 이스라엘은 또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합니다. 또 그렇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할까요? 왜 반복해서 악을 행할까요? 하나님이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해주셨는데 왜 또 그럴까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른다는 말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막상 어려움이 왔을 때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몰랐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었다는 말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 이상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았지만 그 아는 것으로 인해 그들의 삶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은 곧 내 삶에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겁니다. 단순히 기억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 이상 나에게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는 겁니다. 나와 별로 관계가 없는 분과 같습니다. 마치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존재가 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너무 만만한 상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병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머리로는 압니다. 하나님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진리라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마음에는 진리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머리로 알고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마음에 자리 잡거나 나를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나의 행동을 바꾸거나 나를 사로잡아 나를 통제하지는 않습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하나님을 잊은 것과 같습니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아주 추운 날, 고무대야에 담긴 물과 같습니다. 날이 추워서 얼음이 생길 때 꾸준히 저어 주지 않으면 꽁꽁 얼어버립니다. 우리 마음은 계속 저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두면 굳어버립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회복의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 마음에 생생하게 역사하시도록, 나의 삶을 주장하시도록, 계속 은혜의 손길에 나 자신을 노출시켜야합니다. 그냥 두면 안 됩니다. 그냥 두면 결국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진리가 한 때는 그들에게 생생했는데, 그들 마음에 살아서 역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잊혀져갑니다. 그리고 결국 잊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만, 그 진리를 알지만, 우리 마음에서 잊혀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알긴 알지만 진리를 맛보거나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삶에서 진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것들,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들이 우리 마음에 더 생생해지고 우리 마음에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 우상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벧후 1:12) 베드로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생각나게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다시 생각하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생생하게 일깨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 첫째는 예식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명하신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하고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각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두 가지 예식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는 주의 만찬이고, 다른 하나는 침례입니다. 이 두 가지 예식은 하나님이 하신 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다시금 우리 마음에 되새기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묵상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을 접할 때마다 그 말씀을 묵상하며 되새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잊지 않도록 기억하고, 묵상함으로써 말씀이 주는 능력을 느끼고, 마음에 감동을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공동체 안에서 교제하고 나눔으로써 함께 기억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우고 또 함께 교제하고 진리를 공유하며 서로를 통해 도전받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붙들어주며 마음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이 굳어지거나, 마음이 무뎌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잊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예식을 통해 되새기고, 또 말씀을 묵상하고, 서로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래서 삶 속에서 그 풍성한 은혜가 나를 주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처음 질문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현재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과거에 행하신 일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오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에게로 돌아갔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자를 세우십니다. 비록 사람은 잊는다하더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떻게 지금도 역사하시는지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들의 활약을 보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세 명의 사사가 소개됩니다. 첫 번째 사사는 옷니엘입니다. 갈렙의 동생인 그나스의 아들입니다.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이면서 또한 갈렙의 딸과 결혼한 사위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본문 바로 앞의 기록입니다. 6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과 결혼합니다. 하지만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이러한 불순종과는 대조되는 인물입니다. 아주 모범적인 지도자입니다.

옷니엘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까?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10) 성경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합니다. 다만, 승리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하나님이 그에게 승리를 허락하셨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옷니엘에 대한 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옷니엘은 사사기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마치 그래서 그에 대한 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옷니엘과 같은 모범생만을 사용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사사는 에훗입니다. “…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15) 에훗에 대해서 특별한 표현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왼손잡이’입니다. 여기 왼손잡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왼손잡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번역을 하면 ‘오른손에 제약이 있는’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왼손잡이를 오른손을 못 쓰는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럼 정말 에훗은 오른손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이었을까요?

우리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왼손잡이라는 말이 사사기 20장16절에 한 번 더 나옵니다.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20:16) 베냐민 지파의 용사들이 언급되는데 물매를 던져서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는 훈련된 용사 700명이 나옵니다. 그런데 백발백중의 명사수와 같은 이 용사들이 모두 다 왼손잡이입니다. 모두 ‘오른손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모두를 오른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700명이 태어날 때부터 왼손잡이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은 훈련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왼손을 사용할 때 얻을 수 있는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왼손잡이라는 말은 왼손이 가지는 이점을 얻기 위해 훈련받은 사람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은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왼손잡이 에훗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을까요? 에훗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훗이 모압 왕에게 공물을 바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19) 에훗이 한 말을 다시 말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당신을 위한 은밀한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압 왕 에글론은 에훗이 가져왔었던 공물 외에 뭔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던 신하들을 모두 내보내고 둘만의 자리를 만듭니다. 에글론은 귀한 예물을 기대했겠지만, 사실 에훗이 가지고온 비밀한 것은 허벅지에 숨겨둔 칼이었습니다.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기 때문에 에훗은 그를 간단하게 처리합니다. 그리고 왕을 암살한 에훗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모아 모압을 굴복시킵니다. 에훗은 이렇게 외칩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28) 에훗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압을 이스라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에는 80년 동안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어지는 세 번째 사사는 삼갈입니다. 삼갈에 대한 기록은 한 구절로 끝이 납니다.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31) 옷니엘이든 에훗이든 삼갈이든 우리가 보기에는 그 이름이 그 이름 같은데, 사실 삼갈은 히브리 이름이 아닙니다. 출신이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낫의 아들이라고 언급되는데 아낫은 가나안이 섬기는 전쟁의 여신입니다. 삼갈의 집안이 아낫을 숭배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가 사용했던 무기는 ‘소 모는 막대기’입니다. 우리가 이 한 구절을 통해 삼갈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삼갈은 사사로서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뜻밖에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그가 한 일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그도”라는 표현을 통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또한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라는 말입니다.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 예상할 수 없는 무기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도 사용하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소 모는 막대기로 적들과 싸우는데 얼마나 싸울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이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아니면, 이게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면 말이 됩니다.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이 하시니까 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그것이 무엇이든 관계없습니다. 모범생 옷니엘이든, 왼손잡이 에훗이든, 막대기를 들고 있는 삼갈이든 하나님의 도구가 되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예상이나 생각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비관적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어!’ 하나님의 일은 마치 특별한 몇몇 사람들만 하는 일로 오해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신다는 말은 나와 관계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얼마나 잘하느냐, 얼마나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느냐 하는 것은 첫 번째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능력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삼갈을 보십시오. 소 모는 막대기로 놀라운 일을 했습니다. 소를 몰다가, 그 일을 하는 중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의 손에 들려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있다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나를 위해 일하신 것은 이제 나를 통해 일하시기 위함입니다. 나를 구원하셔서 이 땅에 두신 것은 나를 통해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루하루의 삶이 하나님의 역사가 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 엉뚱한 일에 마음을 쓰고 엉뚱한 것을 하느라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것들을 낭비할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합니다.

여러분, 왜 치매가 무서운 병입니까? 치매가 무서운 것은 한 사람의 기억을 빼앗아가고 그 사람을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 짊어지기 어려운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치매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그냥 두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게 됩니다. 영적으로 무능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영적인 치매 증상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데, 주님을 위해 할 일이 있는데,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데, 그냥 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무능하게 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마음으로 되새기고 그 뜨거움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얼어붙은 나의 마음을 주님의 십자가로 녹이시기 바랍니다. 냉랭한 나의 가슴을 주님의 보혈로 덮으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기억함으로 주님을 위해 뭐라도 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심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앞에서 작은 일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작은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작은 수고를 실천해간다면 여러분은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내 삶을 통해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고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셨고 나를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현재에 나를 통해 하시는 일을 기억하며 주어진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인 치매를 극복하고 건강하게 주님을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