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거짓 믿음에 대한 우리의 책임

본문 : 야고보서 5장 19절-20절

설교자 :  최 종 혁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야고보서의 전체 주제는 한 마디로 ‘참된 믿음의 증거’입니다. 믿음 자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참된 믿음이라면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바람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과 연기가 움직이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야고보서를 통해 그러한 믿음의 증거들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야고보가 지금까지 참된 믿음의 증거를 제시한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는 ‘너희가 이렇게 해서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요? 그는 지금 ‘이런 행함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의롭다고 하셨으니 참된 믿음의 당연한 모습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력을 해서 자녀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되었으니 자녀로서 합당한 삶이 따라와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보여준 참된 믿음의 증거들은, 구원받은 자에게는 더욱 더 그런 증거를 나타낼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이 편지의 대상인 유대인들은 여러 어려움으로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편지는 고난 중에도 참된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도록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의 또 다른 목적은, 이런 증거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있는 것이 거짓 믿음이라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야고보서는 후반부로 갈수록 거짓 믿음을 가진 자들이 회개할 것에 대해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4장에서 야고보는 자신의 정욕에 이끌려 사는 사람과 다툼을 일으키는 것으로 삶이 특징지어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것을 말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이제 야고보는 서신서를 마무리하면서 교회 안에 여러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줍니다. “너희 중에”(13,14,19절)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고난 당하는 자”와 “즐거워하는 자”, “병든 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가리키며 이런 상황에 있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는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에 대한 명령은 이미 4장에 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는 명령입니다. 그들을 돌아서게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 낙심한 성도들은 격려가 필요하고 힘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삶에 매우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늘나라에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20절).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겼다 할지라도 사망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침례를 받았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는 그런 자들을 볼 때 그들을 돌아서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19-20절에서 야고보는 두 사람을 언급합니다. 한 사람은 ‘진리를 떠난 자’이고 한 사람은 ‘그를 돌아서게 한 자’입니다. 진리를 떠난 자는 그릇된 길에 살던 자고 그를 돌아서게 한 자는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고 죄 용서를 받게 한 자입니다.

“너희 중에 진리를 떠난 자”

야고보서에서는 진리를, “진리의 말씀”(1:18), “마음에 심기어진 말씀”(1:21), “말씀”(1:22, 23),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1:25), “자유의 율법”(2:12)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 주신 것, 자신을 게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 있고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 진리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본래 있어야 할 곳을 이탈한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신 11:28),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히 3:10).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다고 말하는 “돌이켜 떠났다”는 표현도, 히브리서의 “미혹되었다”는 표현도 모두 같은 표현입니다.

“미혹되어 길을 잃었다”는 것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의 상태를 나타내는데 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고 예배하며 교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원래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상태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딛 3:3). 여기서 “길을 잃었다”와 “속은 자”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구원의 진리를 부인하고 다른 것을 진리로 믿고 있는 상태가 바로 진리를 떠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신학적 오류나 교리의 분별의 차이가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완전히 거부하고 다른 것을 참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20절 말씀은 그들이 “미혹된 길”에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삶도 그들의 생각을 따라갔습니다. ‘길’은 우리의 삶과 삶의 방식, 특징을 말합니다. 미혹된 길에 있다는 것은 잘못된 삶, 죄악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과 친구가 되어서 분쟁을 만들고, 자신의 계획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며, 이 땅의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동일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자를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죄인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의인’과 ‘죄인’을 성경은 분명히 구별합니다. 의인은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한 사람이고 죄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죄인은 진리를 떠나 그릇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가 그들이 어디에 속한 자인지를 말해줍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8-9). 사도 요한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했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의인은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고 죄인의 영혼은 사망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영원한 심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죄인으로 태어나 죄인으로 살고 영원한 심판, 지옥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특별히 야고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자들과 교회 안에 있었던 자들입니다(“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그들은 교회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고 어쩌면 지금도 그 안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성도의 무리 안에 있으면서 가르침을 통해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하신 일과 우리의 책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절하고 죄악된 삶을 살면서 영원한 심판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구원받은 사람 같을지 모릅니다. ‘나는 정말 그 형제가 주님을 떠날지 몰랐다. 그는 주님을 고백하고 교회에서 나와 함께 일했다’라고 말할 사람이 주변에 있을지 모릅니다. 현재 죄악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 ‘과거 한 때는 그렇지 않았으니 훗날 천국에서 볼 수 있겠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9). 이것은 구원받았던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믿는 자의 무리 속에 있었던 것이고, 그가 떠남으로 그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렇듯 그는 자신이 영원한 멸망으로 가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교회 안에 있을지 모릅니다. 심지어 자신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를 통해 이것이 참된 믿음이 증거라는 것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가까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증거가 완전할 수는 없으나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런 영적인 싸움이 내 안에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자신이 지금까지 믿음이라고 고백한 것이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4:6),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4:10)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주님께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책임

여러분 주변에 거짓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했던 사람들, 진리를 거절하고 죄악된 삶을 살고 영원한 멸망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전해야 할까요? “누구든지” 전해야 합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셔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8-19). 하나님과 화목된 자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직분을 맡은 자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영혼을 구원하고 화목하게 하는 일을 마치 우리가 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시는데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20절). 우리는 죄인을 사망에서 구원하고 그의 죄를 덮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런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돌아서게 한다”는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죄인들의 회개와 관련해서 여러 차례 사용되었습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눅 1:16-17),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8),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 이 일은 죄인을 회개하게 하는 일, 구원하는 일입니다. 사망에서 구원하는 일, 사망을 향해 가고 있는 영혼을 구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천국을 향해 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사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주를 고백했으니 지금이야 어떻든 천국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구원이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에 구원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나의 이런 삶과 아무 상관 없을 리가 없습니다.

한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일은 허다한 죄를 덮는 일입니다. “죄를 덮는다”는 말은 과거의 죄를 그저 없는 셈 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마스길]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시 85: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 10:12). 죄를 덮는다는 말은 죄를 용서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죄가 얼마나 크든지 그 죄를 용서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고도 남습니다. 죄를 용서하신다는 말은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을 포함합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4).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으로 우리의 죄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리 떨어지게 됩니다. 동과 서는 한없는 거리입니다. 회개한 자를 용서하시고 더 이상 그 죄를 기억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우리를 통해 하십니다. 그런 일을 이루시는데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자신도 구원할 수 없었던 우리인데 다른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 영광스러운 책임입니까?

누가복음 12장에서는 ‘양을 잃은 목자’와 ‘동전을 잃은 여자’, 그리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귀한 것을 찾았을 때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이유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 돌아올 때 이와 같이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지금도 우리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야고보서를 통해 참된 믿음의 증거들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는 정말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었습니다. 참된 믿음은 그 증거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데 어떻게 그 증거가 나타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열매 맺지 않는 나무가 어찌 살아있는 나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8-20). 여러분의 열매가 여러분의 믿음을 말해줍니다. 우리들의 입술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말합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열매는 교회에 나오고 헌금을 하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사랑의 행동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여러분들을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변에 있는 영원한 사망을 향해 가고 있는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전하시고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