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본문 : 고린도전서 16장 13-14절

설교자 : 염창훈

고전 16:13-14 [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저 역시 말씀을 오랫동안 전해왔지만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전한 말씀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시기를, ‘가정생활 세미나에서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사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만이 어떻게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순종해야 하는지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성경에 왜 그렇게 사랑하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지 젊을 때는 몰랐다. 그러나 오랜 세월 주님을 섬기다 보니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랑하는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에는 본문 말씀이 두 문장으로 되어 있지만, 새번역으로 보면 5개의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믿음에 굳게 서 있으십시오. 용감하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새번역).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여러 권면과 격려, 그리고 교리적인 내용을 전하고 마지막에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고린도 교회는 참 어려움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형제들 간에 마음이 나뉘어 당파를 나누는 일이 있었고, 성도들 간에 고소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어떤 가정에 아들이 계모와 함께 사는 일도 있었습니다. 만찬 예배 때 어떤 사람은 포도주를 너무 많이 먹어 취하고 어떤 사람은 굶주렸습니다. 또한 제사 드린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연약한 형제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랑삼아 방언을 했으며, 자매들도 너울을 쓰지 않고 예언을 하고 기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질서에서 멀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죄가 있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마음이 약해 힘들어 하는 성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깨어있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죄에 대해서, 주님의 오심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과거에 시골 사는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서울에 가면 눈감으면 코를 베어간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깨어있지 않으면 사기를 당하는 세상입니다. 음란 전화가 걸려 오기도 하고 통화를 누르면 수십 만 원이 결제되는 사기를 당하기도 합니다. 아동 성범죄자 알림이 서비스에 접속해보면 각 지역의 성범죄 전과자들의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가까이 오산에도 있고 남사에도 있습니다. 뉴스의 성폭행 사건을 보면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별로 조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딸 아이들에게 아담한 옷을 입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지 않습니다. 별로 경각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말씀으로 잘 가르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오심이 가까운 이때에 죄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사는 것에만 마음이 빼앗겨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바른 행실로 깨어 있어서 주님이 오실 때 부끄럼 없이 주님을 맞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여러 문제들이 일어날 때 그것으로 인해서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질서가 없는가’, ‘왜 이런 죄가 교회에 들어왔을까’, ‘주님의 말씀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님은 아들 둘을 길렀는데 주님의 말씀대로 한다고 엄격하게 길렀지만 한 아이는 주님을 섬기고 있고 한 아이는 주님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다시 손주들을 돌보고 있는데 손주에게는 징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경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어르신들은 공자님의 말씀에 비춰 성경의 말씀이 맞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지 않아서 문제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남자답게 강건하라” 이것은 용기를 가지라는 말, 낙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려움 중에 있을 때 쉽게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낙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범죄한 사람들을 회복시켜 위로할 것에 대해 말하면서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고후 2:7)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회복되기를 원하시지 계속 낙심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엘리야를 기억하십시오. 그는 이세벨이 자신을 죽인다는 말을 듣고 낙심하여 광야로 나갑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오셔서 떡과 물을 주시고 어루만지면서 격려하십니다. 그것으로 엘리야는 다시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격려를 받고 강하고 힘 있게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도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 주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을 격려하시면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낙심했을 때 주님께서 찾아가셨고, 도마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을 때 그에게 찾아오셔서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울어주고 기도하며 이해해 줄 사람이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을 비판하고 판단하기 보다는, 격려하고 기도하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사랑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지만, 그것처럼 힘든 것도 없습니다. 살아보니 먼데 있는 사람은 사랑하기 쉬운데 가까이 있는 사람은 사랑하기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결혼하면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겠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사랑은 참 좋은 것입니다. 마음속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사랑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저는 길을 잘못 들어 저희 집에 들어오는 차들 때문에 대문을 달았습니다. 저희 집 앞으로 사람들이 다니면 흙 먼지가 날릴 것 같아서 그 길을 봉쇄하려고도 했습니다. 참 사랑이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오는 것은 언제든 환영이고 잔디밭에 차를 대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위층에 살고 있는 손주들이 뛰는 소리에도 그것이 시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여러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도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사랑이 없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하시고 너희가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세리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우리 중에도 고린도 교회와 같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깨어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신뢰해야 합니다. 상황이 어떻든지 주님은 선하신 분이고 나를 잘 아시는 분이며 주님께는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주님은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자녀문제나 직장, 건강 등으로 어려울 때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힘 있게 살고 주님을 바라보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