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환란때에 숨으시는 하나님
본 문: 시편 10편 1절
설교자: 조 성 훈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
 
여러분들은 오늘의 설교 주제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시편의 많은 기자들이 고백했던 말이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어떤 이들은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영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며 살아갈지 모릅니다. 그 때마다 오랜 세월동안 수없이 많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사정을 아뢰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나의 기도를 전혀 들으시는 것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때 이런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은 고백을 우리도 하게 됩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이 말은 사실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이 숨으신다고 생각할까요?
 
우리가 환란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00만원 월급 받는 사람이 200만원을 씁니다. 경제적으로 내게 들어오는 수익보다 지출을 많이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까? 또한 인생을 살아갈 때 질병은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에 땀이 흘러야 멀고 살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인생은 쉬울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 한 가정 한 가정을 돌아보면 집집마다 어려움이 없는 집이 없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혹시 나를 도울 사람이 있는가 둘러보면 그들 역시 어려움을 갖고 있기에 도움을 청할 수 없습니다. 그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즉각 기도를 들어주시면 좋을 텐데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으십니다.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예수님을 믿고 5년 이상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 중에 이런 기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껏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셨고, 그래서 나는 불평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중에는 주님께 기도하다가 지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들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다가, 또다시 낙망하고 주님을 원망하는, 반복되는 신앙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은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송의 시들만 있지 않습니다. 원망과 낙담, 그러다 다시 승리와 기쁨, 또다시 낙망 등 오늘날 우리의 고백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지만 그것은 잠깐이었습니다. 애굽을 나오자마자 홍해가 앞을 가로막고 있자 또다시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던 그들이지만 홍해 앞에서 다시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홍해가 갈리고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면서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광야길과 쓴 물로 인해 불평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환란 때에 주님은 절대 숨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환경을 바꿔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아버지의 신용카드를 가져와 멋대로 사용하고 그 빚을 다 아버지에게 갚으라고 하는 아들과 같지 않습니까? 때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뒤치다꺼리를 하나님께 다 해달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내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분께 안식할 때 우리는 참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저 역시 기도할 때 주님께 “왜 잠잠히 계십니까” 물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차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잠잠히 대답하지 않습니다. 여러 번 말해도 아무 응답이 없다면 그것은 아버지가 듣지 못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마리아와 마르다는 주님께 사람들을 보내 그가 병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가시지 않고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저들이 생각할 때 주님은 나사로를 잊으신 듯 했습니다. 마리아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불평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환란 때에 하나님이 숨으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우리는 불평을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육체의 연약함입니다.
 
환란 때에 숨으신다고 말하지 않는 신앙은, 어려움 중에도 주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다윗 역시 아름다운 찬송시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어떨 때는 말도 안 되는 저주의 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믿음의 선진인 아브라함도 아내를 누이라고 말했던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하나님은 우리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숨으신 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까?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도 역시 신실하십니까? 절대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환란과 어려움 중에도 나와 함께 계시고 언제나 신실하시다는 사실 말입니다. 야곱이 바로 앞에서 말할 때 “내가 130년을 살았는데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라고 말하지만,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창48:15,16)”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생을 마칠 때에 야곱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따랐던 사람이라면 본문 말씀과 같은 고백을 하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언제나 신실하셨던 하나님, 앞으로도 우리를 신실하게 지키실 하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