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누가 힘이 되는 사람인가?

본문: 디모데전서 4장 6~10절

설교자 : 이병권

 

여러분은 새해를 어떤 계획으로 어떤 각오로 시작하고 계십니까? 올해에 특별히 더 노력해서 실천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나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있으십니까? 혹시 아직 그런 목표를 정하지 않은 분이 계시면 오늘 말씀을 새해 목표로 정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힘이 되는 사람저 사람을 보면 힘이 납니다. 저 사람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고 그래서 저 사람을 보면 마음에 감사가 됩니다.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은 올 한해의 목표가 아니라 인생의 목표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힘이 되는 사람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권면을 제가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힘이 되는 사람으로 표현할 수 있고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본문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6)

힘이 되는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입니다. 주님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 우리 인생의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서 일꾼이라고 하니까 나랑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사역자를 가리켜 일꾼이라고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은 예외 없이 사역자이고 일꾼입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일꾼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일꾼이고 일꾼이 아니고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꾼이냐 하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일꾼을 꾸미는 수식어가 달라질 뿐입니다.

좋은 일꾼, 선한 일꾼이 있지만 나쁜 일꾼, 악한 일꾼도 있습니다. 충성된 일꾼이 있지만 게으른 일꾼도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일꾼이 있지만 주인의 마음을 어렵게 만드는 일꾼도 있습니다. 주인에 대해서 무관심한 일꾼도 있습니다.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일꾼으로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뜻대로 주인의 계획과 다르게 삽니다. 좋은 일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교회는 많은 분들이 좋은 일꾼이 되어서 주님을 위해 여러 모양으로 충성스럽게 섬기고 계십니다. 주님께 참 감사하고 힘이 되는 부분입니다. 잘 하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새해를 맞아서 각자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우리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고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좋은 일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제목으로 하면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본문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주님의 좋은 일꾼이 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새해를 맞이한다면 이 말씀을 목표로 삼고 계속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본다면, 우리는 주님의 좋은 일꾼이 되어 힘이 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2020년 한해를 마무리할 때에 한해를 정리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더 풍성하게 경험했음을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주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두 가지입니다.

먼저, 첫째로 필요한 것은 “양육”입니다. 양육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영양분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어린 아이가 자랄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자라는데 필요한 것은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6)입니다. 성경과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우리는 말씀 없이 자랄 수 없고 말씀 없이 형제를 깨우칠 수 없습니다. 말씀 없이는 좋은 일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좋은 일꾼,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말씀으로 자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으로 내가 양육되도록 말씀이 전해지는 자리에 수고함으로 내가 그 자리에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귀를 기울여서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으며 묵상하며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배우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에 수고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물이 솟아나오는 샘이 아닙니다. 우리는 작은 웅덩이에 불과합니다. 새로운 물로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금방 바닥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으로 나를 채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내가 말씀을 공급받을 때 올바른 동기와 방향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그냥 흘려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겸손한 믿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에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정기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쉽지 않지만 필요한 일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한 일입니다. 시간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말씀의 힘을 삶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힘이 여러분의 삶을 다르게 할 것이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으로, 좋은 일꾼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은 거듭되는 성장을 가져옵니다. 6절 말씀에서 이런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면 내가 자라서 형제를 도울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형제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말씀으로 양육을 받습니다. 말씀으로 형제를 도우면서 나 자신도 양육을 받는 것입니다. 계속 순환되는 과정입니다. 말씀으로 성장하고 성장한 만큼 돕고 또 도우면서 다시 내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 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가르치면서 더 배우게 되는 겁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성도님들께 죄송스러울 때도 많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해서 걱정을 끼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준비하고 말씀으로 섬기는 일을 하면서 제 자신이 말씀으로 양육 받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부족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말씀으로 사람들을 섬겼을 때, 혹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때, 혹은 내가 경험한 주님의 진리와 은혜를 사람들과 나누었을 때, 그런 수고들을 통해 다른 사람은 물론 내가 양육을 받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면 결국 그 일을 통해서 내가 성장하게 됩니다. 나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말씀으로 양육되어 주님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첫째는 양육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경건”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7)

경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경건이라는 말은 ‘경외하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경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단순히 ‘하라, 하지 말라’, 이런 규칙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규칙들을 만들고 지켰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경건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원합니다. 그래서 경건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알고 그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중심에서 벗어서 하나님 중심으로 회개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내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삽니다.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이전에 우리 생각 속에서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내 모든 것에 중심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경건에 이르기 위해 수고합니다.

어떤 수고를 해야 할까요? 경건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두 가지 명령이 있습니다. ‘버리라’는 명령과 ‘연단하라’는 명령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속되고 꾸며낸 이야기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유익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 진리가 아닌 거짓에 속한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경건에 이르는데 방해되는 것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해야 합니다. 자신을 훈련하라는 명령입니다.

경건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될까요? 구원받으면 누구나 경건에 이르게 되고 저절로 좋은 일꾼이 됩니까? 경건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연단해야 합니다. 경건에 이르기 위해 내 삶에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경건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말씀에서 “연단하라”는 명령은 시합에 나가려고 몸을 준비하는 운동선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을 앞두고 좋은 성적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자고 싶을 때 다 자고 그냥 그렇게 내 몸이 원하는 대로 다 하면서 지내면 될까요? 그렇게 살면 절대로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경건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해야 됩니다. 버릴 것들을 버리고 끊어야 할 것들을 끊고 자신을 절제하며 훈련해야 합니다. 그냥 안 됩니다. 경건을 위해 버려야 합니다. 경건을 위해 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 죄를 이기고 내 안에 잘못된 습관을 고쳐가려면 우리는 훈련해야 되는 겁니다. 몸의 욕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죄의 본성에 따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굴복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경건에 이르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훈련하는 것,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건의 가치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건의 가치를 알면 경건에 이르기 위해 더 마음을 쓰고 자신을 훈련하는 일을 인내함으로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금메달의 가치를 알고 기대하며 자신을 훈련하는 것처럼 우리도 경건이 주는 가치를 알고 결과를 기대하며 자신을 훈련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이 주는 유익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8-9)

경건은 범사에 유익합니다. 바울은 육체를 훈련하는 일과 경건을 훈련하는 일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훈련하는 일, 우리가 몸을 단련했을 때 얻는 유익이 있습니다. 건강 문제에 있어서 많은 경우에 그 원인이 운동부족이라고 합니다. 육체의 연단이 사람들에게 주는 유익은 큽니다. 그런데 그 유익에 대해서 바울은 ‘약간의 유익’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크게 보이는 육체의 연단, 몸을 단련하는 것은 약간의 유익입니다. 경건을 위한 훈련에 비하면 그 유익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경건을 훈련함으로 얻는 유익이 크다는 겁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훈련하는 모든 노력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기 위한 수고는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 경건이 우리의 삶을 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 땅에서의 삶만 아니라 영원의 삶까지 영향을 줍니다. 경건은 이 땅을 목표로 두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적으로 지금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운동선수들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훈련을 하는 겁니까? 왜 자신을 절제하며 인내하며 고생을 자처하는 걸까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 얻는 보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수고하고 열심히 훈련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받는 보상의 유효기한이 얼마나 될까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그에 따른 돈과 명예를 얻는다 해도 그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운동선수들이 그렇게 열심히 수고한다면 영원한 보상이 있는 경건을 훈련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경건을 위해 수고할 때 우리는 주님의 좋은 일꾼이라는 목표를 성취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겁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정하게 수고에 대한 결과를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 말씀으로 자신을 양육한 사람에게 그리고 경건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연단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보상하십니다. 땀을 흘린 자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씨를 뿌리며 수고한 자에게 열매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수고가 없다면 노력이 없다면 거둘 것도 없습니다. 결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10)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수고하고 힘쓰는 것입니다. 올 한해도 주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 수고하고 힘쓰는 겁니다. ‘힘쓴다’는 말은 승리를 위해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을 말합니다. 경기에 출전한 선수가 힘을 다해서 열심히 싸우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열심히 싸우는 겁니다. 힘을 다해서 승리를 얻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목표로 하고 이 땅을 소망으로 생각한다면 이렇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잠시 잠깐 살다가 끝날 이 땅에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내 몸이 원하는 대로 죄의 본성대로 내 마음대로 살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이 끝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가 정말 가치 있다는 것들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영원한 것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 수고하는 것은 양육과 경건으로 수고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 고된 삶이고 별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수고스러운 과정의 연속이고 계속되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는 사람이라면 생각하지 않을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에 대해서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영원한 것을 보고, 진짜를 봅니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며 다르게 삽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꾼이 되어 주님을 위해 계속 수고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지만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하나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한없는 사랑과 복을 허락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내가 사랑합니다. 내가 그 하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분이 나에게 맡기신 일에 충성하며 내 평생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합니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당신의 소망이 정말 하나님께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의 소망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까? 그분이 정말 나의 구주가 되시고 나는 그분을 믿고 섬기는 자입니까? 그렇다면 그분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수고하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 말씀으로 자신을 양육하며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했을 때, 여러분은 그날에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우리 주님께서 칭찬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힘이 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짐이 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힘이 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힘이 드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힘이 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힘을 빼는 사람입니까?

작은 차이지만 그 차이는 영원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로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올 한해 무엇을 위해 수고해야 하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양육과 경건, 내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나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여러분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까? 아니면 이 땅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