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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에 도움이 될 내용을 나누기 위해 시작된 이 칼럼 시리즈도
벌써 18회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으로 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분들에게 있어서 이 칼럼 시리즈는
너무 인위적이고 학문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이렇게 단어와 동사 시제를 따져가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야 한다,”
”계시를 받아야 한다”라고 확언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성경의 참된 의미를 깨닫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라는 사실에 이견이 없습니다.
성령님이 성경의 영감을 주권적으로 이루어 내신 분이시며
성령님만이 성경을 우리에게 조명해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간과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모든 설명이나 노력은
성경이 본래 쓰여졌던 방식을 생각해보면
균형이 잘 잡힌 견해는 아닙니다.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가?에 대한 견해는 각각 다르지만
제가 믿고 있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의 생각, 견해, 삶, 가치관, 문체, 특성을 사용하시어
하나님께서 전달하시고자 했던 내용을 그대로 주권적으로 기록하셨다.

이와 같은 영감에 대한 설명은 두 가지 사실을 모두 인정합니다.
하나는 인간 저자의 자유로운 생각과 자유로운 표현입니다.
또 다른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신 것이 사실이듯
성경의 영감 역시 하나님의 전적, 주권적인 말씀이지만
동시에 인간 저자의 자유로운 표현에 따른 기록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저자를 통해 당신의 계시를 아무 오류 없이 우리에게 전달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록된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하심을 기대하고 의지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베뢰아 사람처럼 상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구약성서의 동사 시제를 분명히 기억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동사의 시제, 접속사,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요소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더 잘 알기 위해 우리가 쏟는 모든 노력들은
절대로 그 자체가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을 가로막거나 방해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을 살피고 부지런히 연구하는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지혜와 명철, 깨닫게 하시는 능력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일단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기다려보고
나머지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다 뒤로 미뤄두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신령하게 들리지만
사실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지 성령께서 말씀해주시기를 기다리고 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께서는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이미 원수를 사랑하라고 써있지 않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글을 읽고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성경의 진리에 굴복할 수 있는 영적 상태를 준비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을 통해 성경의 배경과 문화에 대한 방대한 설명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성령을 통해 어떤 계시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것일까요?

조금 더 직접적인 언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계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로 이러한 “계시”는 성경을 떠나 혼자 기도할 때나 일상 속에서
주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경을 통해서 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가지 우리는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내가 받은 계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영감”이라는 단어가 설명하는 핵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외의 모든 “계시”라 불리는 오늘날의 메시지들은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 출처가 하나님이신지
내 감정인지, 내 지혜와 생각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내용이 갑자기 기억이 난 것인지,
여러 기억들과 읽은 것들이 잡다하게 섞여서 나온 것인지,
그 출처는 불분명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계시”에 대해
100%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100% 확신할 수 있는 계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성경뿐입니다.

1%라도 하나님께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계시”에 대해
저는 감히 “받았다” 혹은 “말씀하셨다”라는 신성모독의 발언을 하지 말라고
권면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은 말씀에 대해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는 것만큼
큰 신성모독의 죄도 없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받았다는 직접적 “계시”가 성경의 말씀과 거리가 먼 경우입니다.
성경 말씀의 본문이 절대 그것을 말하고 있지 않고
성경의 가르침도 그 “계시”와 거리가 있는데
하나님께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본래 당신이 주권적으로 기록하신 하나님의 뜻을
오늘날 뒤집고 왜곡시켜 새로운 내용으로 변질시켜 나에게 알려주셨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하나님을 거짓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있어도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 성경과
다른 것의 구분이 확실히 주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계시”에 대한 구분이 하나님의 다양하고 풍성한 섭리와 역사를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드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또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도 합니다.
확신과 소망을 갖게 하시기도 하며
결단하고 의지를 갖도록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위로와 격려를 주시며 삶 가운데 깨닫고 이해하도록 돕기도 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다양하고 섬세한 섭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모든 섭리의 과정 하나 하나를 “계시”라고 확언하는 것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부담을 주셨으니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분은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적 부담이 너무 크셔서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마음의 부담이 하나님의 계시인 것이 분명하다면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대학을 가야 더 출세하는지,
어떤 직장에 가야 더 삶이 평탄해지는지 알려주는 점성술사도 아닙니다.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하는지 알려주는 연애코치도 아니고
충치를 금니로 바꿔주는 전능한 치과의사도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우리말성경]은 마지막 17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온전히 준비되게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온전히 준비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충분성”이라는 교리의 신학적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칼럼의 결론이 이것입니다.

성경이면 충분합니다.
또 다른 “계시”는 필요 없습니다.
만약 필요했다면, 하나님은 계시록 이후에도 여러 정경을 더하셨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계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동시에 성경이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본래 기록된 그 자체로서 담고 있는 진리의 범위와 깊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또 다른 형식과 방법의 “계시”를 하셔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절대 확인해볼 수 없는,
심지어 하나님께로 온 것이 분명한 성경의 내용과 불일치 되는 것을
”계시”라 부른 것은 죄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확실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성경을 상고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절대적인 권위가 있고 그 자체로 충분한 바로 그 계시,
성경을 통해 우리는 구원에 이르며 영적으로 자라갑니다.

그래서 날마다 더 성경을 상고하며
더 성경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핍니다.

성경의 본문을 다 사로잡아 내가 받았다고 주장하는 “계시” 앞에 꿇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Sola Scriptura!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이며
구원 받은 성도의 삶에 주어진 계시도 오직 하나님 말씀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