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생성된 스크립트입니다.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디모데전서 6장 11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가 어느덧 이제 마지막에 이르게 됐어요. 오늘하고 다음 달에 하면 아마 이제 마치게 될 겁니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에서 16절까지 말씀이고 제목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어,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디모데 전서는 사도 바울이이 믿음의 아들로 여겼던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에 남겨 두면서이
교회가 지금 여러 가지 다른 교훈의 이제 오염이 돼 가지고 진리를 점차 떠나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교회를 가서 네가 바로 잡으라고 이제 명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어 그러면서 이제 편지를 통해서 이렇게 이렇게이 교회를 바르게 세워야 된다라는 이야기를 쭉 해 왔습니다. 어 디모데가 떠나더라도 장로들을 세워서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해다해하라라고 명령을 했었고요.음
음.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이 6장 1절에서 10절까지 말씀에서는 어이 교회를 바른 교훈으로 보호하고 지켜내려면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말씀과이 경건에 관한 교훈으로 지켜내려면 다른 교훈으로부터 보호하려면 반드시 두 가지 문제랑 네가 싸워야 된다라고 개인적인 권면을 했었습니다. 어 하나는 교리적인 문제였고요. 교리적인 타협의 문제.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삶의 타협의 문제였습니다. 교리적인 타협의 문제는 계속해서 진리가 아닌 다른 것들, 거짓 것들을 타협하려고 하는 문제인 거고요. 두 번째이 삶의 타협의 문제는음 하나님만 사랑해야 되는데이 복음만 사랑해야 되는데 돈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세상적인 것에 어 것에 사랑이 마음을 두는 것 어 그런 것들을 같이 하지 말아야 된다라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음 음, 결국 디모데는이
에베소 교회를 진리 가운데로 이끌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도 부단이 싸워야 됐다라는 거예요. 부단이 싸워야 됐습니다. 가지고 있는 교리가 오염되지 않도록 가지고 있는 복음적인 삶이이 희석되지 않도록 그렇게 부단히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이 말씀이 자연스러워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어, 오늘 본문인 11절에서 16절까지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이 명령을 포함하여서 총네
가지 명령이 나옵니다. 그래서 디모데의 영적 싸움을 격려하고 지지합니다.이네 가지 명령은 11절에 두 개, 12절에 두 개가 나와요. 찾아볼까요? 11절에 뭐가 있을까요? >> 네. 피하라. 맞습니다. 또 하나가 더 있어요. 마지막에 >> 따르라. 맞습니다. 12절에도 두 개가 있어요. 12절에 첫 번째로 >> 싸우라. 그다음에 바로이어서 영생을
취하라.이네 가지 명령입니다. 피하라, 따르라, 싸우라, 취하라. 어,이네 가지 명령은 일차적으로 너라고 불린.이 11절에 보시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되어 있죠. 단수형입니다. 어, 너라고 불린 사람이 누구겠어요? 사도 바울이 너라고 부르면서이 편지를 썼잖아요. 디모데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가 어 따라야 할 명령이었지만 우리 또한 디모데처럼 영생의 부르심을 똑같이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 그렇기 때문에이 주어진네 가지의 명령에 우리도 주님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충성해야 된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어 생각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지금 싸우고 있다라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어 싸우고 있다라고 한다면 아침에 졸음과의 싸움, 뭐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시험과 여러 가지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과의 싸움 뭐 이런 식으로 이제 많이 생각을 하지만 영적인 전쟁을 우리가 치르고 있다.이 이 믿음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투쟁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아예 망각하면서 살아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라는 겁니다. 음. 군대에선 이런 말이 있어요. 전쟁에서 패배를 가져오는 것은 방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방심. 어 그래서 여러분 혹시이 가운데 방심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방심하지 않고 경각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어 우리에게는이 경각심이 반드시 필요해요. 여러분 전쟁 중에 있는 병사들이 아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뭐 먹을까 막 이러면서 편하게 전쟁 치르겠어요?
아니죠. 당장 포탄이 떨어질지도 모르고 예, 총알이 날라들지도 모르는 그런 전장에서는 항상 긴장되어 있습니다.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돼요.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전쟁을 치를 대비를 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항상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음. 그러려면 오늘이 본문에 기록된 명령의 참 의미를 우리가 알아야 되고요. 그리고이 명령이 얼마나 중대한가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이 명령을 우리가 왜 지키려고 하는가?이 이 명령이 주어진 근거에 대해서 세 가지로 좀 차례차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이 말씀을 통해서 아 그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돼야겠다. 군사가 돼야겠다. 이렇게 다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면 명령의 의미를 살펴볼게요. 11절에서 12절까지 아까 저희가 찾아봤던네 가지 명령어입니다. 첫 번째로 피하라가 나와요. 11절을
보시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 무엇을 피해야 되는지 설명하기 앞서서 여러분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들아라는이 표현을 좀 주목하기를 원해요. 어 그전까지이 사도 바울은 경건을 해치는데이 휩쓸려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교훈을 받아들린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말들을 했었어요. 예 번역 안 하네요. 이거 본문에 없어서 안 하는 건가요? 좋습니다. 어쨌든 그런 이야기들 했었어요. 어 그리고 나서 바로 여기서 대조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나 너 하나님의 사람아. 어
헬라어의이 언어 순서를 보면 너가 먼저 나오고요. 너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아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이 됩니다. 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이 인생을 살아가냐면 아 내 주변에 보니까 믿는다고 하는 저 사람 저 사람들도 다이 정도로 사는데 뭐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요. 아니면 세상 내 친구들 뭐 아니면 세상 사람들을 비교해서 보면 나는 굉장히 건전하게 살고 있는 거야.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어 그런데 바울은 지금 그
비교 대상을 다른 어떤 사람에게 두지 않고요.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인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소유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지 상관없는 거예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영적인 온도가 너무너무 낮아서 나는 상대적으로 너무 높게 느껴지더라도 우리가 막 자만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냐라는 거죠.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합당하냐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라는 겁니다. 그것을 먼저 염두해 두시고요. 첫 번째 명령어인 피하라를 좀 생각해 볼게요. 여기 이것들을 피하라라고 해서 이것들이 가르키는 것은 뭘까요? 어, 바로 위에 이어지는 본문이겠죠. 바로 위에 있는
본문이 두 가지 경건을 해치는이 문제점들이었습니다. 어, 그러니까 다른 교훈과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삶의 방식을 가르쳐요.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을 그리스도인들은 피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따를 수가 없다라는 거예요. 이러한 삶의 방식을 우리가 수용할 수가 없다. 받아들일 수가 없다라는 것을 넘어서서 훨씬 넘어서서 달아나야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여기 피하다라는이 단어의 원래 뜻이 다나다 혹은 도망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세상의 유혹에 여러분들이 노출되었을 때 나도 적당히 저렇게 섞여서 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때에 여러분이 취해야 되는 행동은 달라나는 겁니다. 거기에서 급히 도망가는 겁니다. 어이 표현이 성경 어디에 쓰였느냐? 좀 아이러니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이
도망갔다라는 표현을 할 때 사용이 되었습니다. 어, 그만큼 도망가는 거예요. 어, 그런데 반대로겠죠. 세상이 우리를 유혹할 때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는 겁니다. 달아나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긴 하지만 전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 16절에 뭐라고 했냐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지금 전부를 이야기하고 있죠.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다 아버지께서 온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어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시지 않았나요? 하늘도 만드시고 산도 만드시고 맞아요. 그런 의미에서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세상적인
것을 말해요. 하나님을 반대하는 모든 세상적인 여러 가지 물건들을 말합니다. 물품들, 뭐 생각들, 태도들, 정욕에 속한 것들 그런 것들을 말해요. 어, 그런 세속적인 것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언제든지 아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거 같은데라는 느낌이 온다면 그것은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 피해야 된다는 겁니다. 달아나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인스타를 보는데 영상을 막 보고 있는 거예요. 근데 이건 아무리 봐도이 영상이 유익하지 않아. 정말 하나님의 사람에게 합당하지 않은 거 같은 거지. 근데 즐거워. 재밌고 즐겁고 그냥 막
웃음이 나고 막 그래요. 그러나 아 분명히 이건 세속적인 거 같아라는 그러한 느낌은 분명히 날 겁니다. 냄새가 날 거예요.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핸드폰을 부시고 아 그러면 아니죠. 예. 핸드폰을 인스타에서 나가 버리는 겁니다. 예. 그렇게 나가는 거예요. 계속 그런 것들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해야 되는 겁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서도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어 그러니까 여러분 마음에는 수시로이 세상의 정욕과 자랑을 쫓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예요. 나도 저 친구처럼 돈이 많았으면 저 친구처럼 쾌락을 좀 즐겨 봤으면 나 비교해 봤을 때 저 사람보다 나는 훨씬 더 경건하게 사니까 오늘 밤은 잠깐 쾌락을 조금
누려 보다 이런 마음이 이제 들 수도 있는 거죠. 그럴 때에 그런 여러 가지 유혹과 올무 주변에 얼쩡거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무조건 도망가야 하는 겁니다. 이것을 가장 어 잘 보여 준 사람이 요셉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자기의 팔을 붙잡고
같이 동침하자라고 말하는 아주 미모의 여성이 있었을 때에 요셉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 옷을 버려두고 도망왔죠. 그러면서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께 큰 죄를 짓겠느냐라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러한 도망가는 모습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세촉적인 것들이 있을 때에 도망가야 합니다. 두 번째 명령은 따르라입니다. 어, 우리가 어떤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확실하게 거리를 둔다면 반대로 우리가 열심히 맹렬하게 쫓아가야 되고 추구해야 되는 것이 있어요. 이것이 바로 따르다라는 명령의 의미입니다. 갈망하다 혹은 추적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끝까지 이것을 쫓아가서 그것을 잡아내려고 하는 그러한 태도를 가져야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입니다. 자꾸 지금 시리가 반짝반짝 꼬려 가지고 좀 끄겠습니다. >> 어, 됐어요. >> 어, 네. 얘기하네요. 좋습니다. 그건 안 해도 되는데 진짜. 자,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입니다. 자, 의라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옳은 것을 가르키고요. 어, 경건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삶을
의미합니다. 어, 그다음에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나 환경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든다라는 것을 의미하고요.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에 실천하는 가장 완벽한 계명의
순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을 실천할 때에 끝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인내하는 거예요. 왜냐면 여러 가지 방해물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태도가 또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리대로 말하고 행동할 때 또 요구되는 태도가 무엇이냐? 온유함입니다. 우리가 진를 추구할 때에 온유하지 못하게 될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온유함도 갖춰야 합니다. 여기 어 의, 경건, 믿음, 사랑, 인내, 온유이 모든 것들이 사도 바울이 아주 자주 사용하는 단어거든요. 여러 서신서마다 항상이 덕목을 언급을 했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라는 것 여러분 아실 거예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이 열매들을 맺으십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맺으신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라는 말은 아니에요. 우리가 성령께서이 열매를 맺으시도록 성령을 따라서 행하라라고 갈라디아서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신이 맺는 열매와 성령이 맺는 열매가 있는데 그럼 어떻게 그 열매를 맺느냐? 우리가 육신을 따라 행하면 육신의 열매를 맺고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여러분 안에서이 의와 경건, 믿음, 사랑, 인내 온유를 맺는 분은 성령님이시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맺게 하려면 여러분의 순종도 요구된다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돼요. 음.
그런데 왜 모든 사람이 성령님을 소유하고 있고 특별히 모든 하나님의 사람이 그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신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의 삶에선 이런 것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어떤 사람들의 삶에서 이런 것들이 잘 보일까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똑같이 성령님이 그 안에 계시는데 어떤 차이 때문에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고 적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느냐라는 겁니다.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은 그만큼 순종하기 위해서 싸운다는 거예요. 그만큼 싸운다는 겁니다. 매일매일 싸워서 성령과
육신의 소욕 가운데 전쟁이 일어날 때에 성령을 선택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그 싸움을 안 싸우는 겁니다. 계속 싸우지 않고 포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육신의 정력을 따라가게 돼 있거든요. >>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열매들을 맺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12절에 싸우라는 명령이이어서 나온다라고 생각을 해요. 계속해서 피해야 되는 것, 계속해서 따라야 하는 것.이 이 전투를 계속해서 치르라는 명령입니다. 계속해서 싸우는
어 싸울 것을 명령하고 있는 그러한 명령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음이 음.이 싸우다라는이 단어가 전투 용어거든요. 그냥 가벼운 경기 혹은 게임을 하라라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전쟁을 치르라라는 용어입니다. 여러분 어 잘
아시는 에베소서 6장에 보시면 우리가 씨름한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우리의 씨름은 혹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실제로 여러분 매일매일 여러분 주변에서 마귀와 귀신들과 여러분이
전쟁을 치르고 있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과 싸움을 싸우고 있는 거예요. 음. 하나님은 우리가 그 영적인 전쟁을 치르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라는 것을 주셨습니다. 어, 영어로 번역하면 그냥 암어거든요. 무기.이 이 전쟁 무기를 여러분에게 주신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보시면이 무기가 나중에 우리에게 필요할 때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졌다라는 것을 여러분 알 수 있습니다. 어이 변기가 무엇이냐? 진리, 의, 복음, 믿음,
구원 그리고 말씀. 띠가 뭐죠? 서서 진리의 띠를 뛰고 그다음에 흉배는 뭐죠? 의 >> 의의 흉배를 붙이고 그리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갖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 말씀의 검을 가지라고 되어 있습니다.이 모든 것들이 사실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무기 병기다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미 우리가이 모든 자원을 받은 거예요. 싸움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받은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지고 여러분이 날마다 싸우느냐라는 거예요. 싸우고 있느냐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원수와 맞서서 매순간 싸워야 하는 거고요. 그리고 매순간 싸웠다면 여러분이 성령의 능력으로 반드시 승리를 거두실 수 있을 겁니다. 음.
그리고이어서 나오는 명령어가 취하라예요. 취하라. 어, 취하다라는이 단어가 어, 술취하다 이런 뜻이 절대 아닌 거 아시죠? 붙잡으라라는 뜻입니다. 붙잡으라.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에게 이미 영적인 자원들이 주어졌잖아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이미 하나님께
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확실하게 주시겠다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음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영생을 얻게 합당한 자로 부르셨어요. 어 그리고 우리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디모데처럼 우리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셨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었어요. 여러분 침례를 받으실 때 특별히 그렇게 했을 겁니다. 여러분 이제 구원받으셨습니까? 영원한 천국에 가실 확신이 있습니까? 뭐 이런 얘기 하면은 다 네. 이렇게 이제 얘기를 했을 거예요. 그런 증언들을 우리가 다 했었습니다. 음.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영생을 받기로 확정되었다라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드시 그 영생을 보장하실 거라는 걸 확신한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합당하느냐라는 거죠. 어 어떻게
확신하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확신하 합당하느냐 어차피 영생 주실 건데 뭐 대충 대충 살지 요게 합당한 모습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하나님 어차피 영생 다 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 그러니까 어떻게 살든 살다 보면 그냥 영생 주시겠지 뭐. 이런 자세가 합당하지 않다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어떤 자세가 합당한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3절과 14절인데요.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잡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직 잡지 않았다라고 얘기합니다.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 너무너무 많은데도 아 내가 적어도이 정도 희생을 했고 하나님을 위해서 이만큼 일을 했으니까 나는 영생이 보장됐지 뭐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표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지금 취하라는 명령에 어떻게 순종하고 있는지 보실 수 있는 거예요. 바울은 뒤에서 내가 잡았다라고 확신할 수 있을 만한 일들은 다 잊어버리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내 앞에 있는 것들을 잡기 위해서 끝까지 달려가겠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계속 싸운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미 보장하셨지만 그것을 날마다 더 붙잡기 위해서, 더 확실하게 붙잡기 위해서 달려가겠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되는 겁니다. 내가 한 2년 전에이 신앙이 정말 뜨거웠었지.
그러니까 내가 영생에 합당한 사람이 분명할 거야. 이런 식으로 살지 말라는 거예요. 오늘 그리고 내일 그리고 그다음날 더이 영생을 확실하게 붙잡기 위해서 더 확실하게 가까이 내가 붙잡기 위해서 싸우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 날마다 영생을 취하는 삶을 여러분 사신다면 이미 잡았다라고 생각하면서 나태한 삶을 살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잡으려고 달려가는
삶을 사실라는 거예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라는 겁니다. 자, 두 번째로 어, 오늘 지금까지 제가 설명해 드린이 말씀을 들으면서 아, 그렇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지 이런 거 충분히 이해하실 거예요. 뭐 어, 그래요? 싸워야 되는 거 몰랐네. 뭐 이렇게 생각하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렇죠? 다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된다라고 생각할 겁니다. 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되는 거 아시죠? 라고 했을 때 아니요. 전 그렇게 안 할 건데요. 이렇게 말할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매일 일상 가운데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지 않을까? 여기 이것이 우리의 주관심사가 아니게 될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이 우선 순위에 있어서 밀리게 되는 거 같아요. 무슨 말이냐? 음. 내일
회사에 프로젝트가 있는 거지. 혹은 학교에서 발표가 있는 겁니다. 아니면은 토익 시험, 토플 시험이 있거나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게 더 중요할까요? 아니면 그게 더 중요할까요?
>> 당장 눈앞에 지금 내가 해치워야 되는 일들이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영적인 싸움은 나중에 싸워도 되는 것. 뭐 나중에 시간 되면 내가 조금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다짐하면 되겠지 뭐. 이런 식으로 이제 뒤로 밀려나게 되는 겁니다. 어, 사실 뭐 시험과 영적인 싸움이 별개의 문제는 아니에요. 모든 삶이 사실은 영적인 싸움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이 영적인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지 못하고 다만 세속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될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왜 그래요? 우리가 오직이 땅에 있는 것들의 눈을 고정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아, 그래 뭐 해야지, 뭐 챙겨야 되지? 오늘은 뭐가 있지, 내일은 뭐가 있지? 이런 식으로 그냥 눈 앞에 있는 거 해치우다가 그냥 삶이 끝나는 겁니다. 아, 이런 것들을 준비할 때 내 마음 자세가 어떻지? 지금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불안정하지? 어, 믿음에 어떤 싸움을 싸워야 되는 거지? 이런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볼 여유 자체가 별로 없는 거예요. 그냥 눈앞에 있는 것들을 해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러한 삶을 살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음.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지금까지 했던 말,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이 말이 얼마나 중대한 엄중한 명령인지를 강조하면서 설명을 합니다. 그것을 안다면 우선 순위를 바르게 정립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 인나가 밖으로 나가지만 이나의 부모님도 계시죠. 어, 부어님들이 인나에게 인나야 지금 너 이거 해라고 이야기할 때 이나가 잘 안 듣습니다. 이제 예를 듣는 거예요. 진짜 몰라요. 잘 안 들어요. 자기 놀고 싶은 거 놀아요. 근데 부모님이 야,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지으면서 똑바로 들어. 이렇게 하면 이제 이나가 그때 정신 차려고 듣게 되겠죠. 아, 이거는 내가 안 들으면 큰일 나겠구나라고 이제 인식이 되면이가 이제 길을 기울이는 겁니다.
마찬가지로이 14절과 15절에서는 아, 13절과 14절에서는 사도 바울이 지금까지 내가 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이 명령이 얼마나 엄중한지, 얼마나 중대한지를 잘 들어봐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13절을 보시면 이렇게 시작을 해요.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어이 말씀을 가만히 연구하고 읽으면서 바울은 참 부담주기 대장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말든지 얻지 못하든지 전파하라라고 할 때도 살아계신 하나님 앞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포하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뭐 이런 얘기 하거든요. 그냥 내가 너를 명하노니만 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렇죠. 근데 엄청난 얘기들을 지금 여기다 집어넣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을 공급하시는 분이다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 그러니까 네가 지금 내가 하는이 말을 들어야 된다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너에게 영생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그 하나님 앞에서 너는 싸워야 된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리고 이어지는이 말도 굉장히 저희에게 좀 압박감을 줍니다.
하나님 아이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자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 앞에 언제 서셨습니까? 자기의 목숨을 걸고 죽을지 말지를 결정할 때 그렇죠. 빌라도가 한 마디이면 빌라도가 직접 그런 말 했어요. 내 한 마디면 너는 이제 죽을 수도 있는데 이런 말도 합니다. 어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권세는 너에게서 둔게 아니라 하나에서 나온 거다. 이런 얘기를 하셨죠. 그런데 어쨌든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은 지금 굉장히 삶의 기로에 서신 거였어요.이
사람에게 어떻게 내가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십자가에 넘겨질 수도 있고 풀려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너는 누구냐라고 말했을 때 나는 사실 그냥 유대인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말했으면 십자가를 앉아도 되는 일이었어요. 그냥 풀려나고 그냥 살아가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근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그 앞에서 담대하게 진리를 선포하신 거예요. 나는 메시아다. 나는 유대인의 왕이다라고 분명하게 선한 증언을 하셨습니다. 자기의 목숨을 걸고 그런 일을 하신 거예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그런 싸움을 싸우신 겁니다. 그 예수님 앞에서 너희에게 명하노니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워야겠어요? 아니면 게을리 싸워도 되겠어요. 열심히 싸워야겠죠.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서이 선한 싸움을 싸우신 예수님 앞에서 명령을 준 거기 때문에 우리는 더 열심히이 명령의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겁니다. 자, 지금까지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고 또 예수님이 그 증언을 하신 본이 있지 않느냐라는 얘기를 한 거죠. 그런데 과거만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주님이 하실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격려가 됩니다. 강건을 하는 거예요. 14절을 보시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이 명령을 지키라. 자,이 명령을 지키라 해서이 명령은 아까 앞서 저희가 충분히 설명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명령입니다. 언제까지 싸우래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그 미래까지 그 순간까지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지키라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정말 최선을 다해서이 명령에 순종하라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 대충은 알아요. 아이 그렇죠. 싸우죠. 영적인 전쟁을 치르긴 해야겠죠. 지금보다는 더 잘 살아야겠죠라고 조금 느슨하게이 명령에 대해서 받아들이는데 바울은 절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지금 설명을 하는 겁니다. 얼마나 엄중한 명령이냐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시면 여러분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바로 그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목적이 골로새서 1장 22절을 보시면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니까 여러분들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받을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해서 예수님이 자기 몸을 희생하셨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에베소서 5장 27절에서도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미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니까 예수님이 자기 생명을내어 주신 목적 그 자체가 복음의 목적 그 자체가 여러분들을 흠없고 책망받을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복음에 합당한 삶,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 자체가 여러분이 믿음에 선한 싸움을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라는 거예요. 치열하게 싸우지 않는 것 자체는 예수님이 이루신 그 복음의 목적 자체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겁니다. 그니까 여러분 정말로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치르셔야 한다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들을 그렇게 싸우게 하실 거고요. 거룩하게 만들어 가실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거룩하게 빚어가시는데 여러분이 동참하실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이 이 명령에 순종하는 거예요. 끝까지이
명령을 지키는 겁니다. 피하고 따르고 싸우고 취하는 일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어 그런데 여러분 한 가지 오해하지 마으셔야 될 것은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는 않으세요. 어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저를 포함해서 아 지금까지 싸운 거 보니까 글렀다. 싸우지 말아야겠다.
왠지 이제 이런 생각 하는 거죠. 어차피이 학생들처럼 이런 이런 학생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도 어차피이 점수는 못 맞아. 그러니까 포기해야지. 이제 이런 생각 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충성이다라는 거죠. 완벽함이 아니라 충성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오직 주님께 달렸어요. 주님은 다만 우리가 끝까지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스럽게 싸우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승리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거든요. 우리는 다만 끝까지 전쟁을 포기하지 않고 충성스럽게 싸우는 겁니다. 주께서 최후 승리를 주실 그날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겁니다.
자. 여기까지 말씀을 정리하면 이런 이와 같아요.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부르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싸워야 됩니다. 어, 그런데 영적인 전쟁 중에서 여러분이 언제 자주 주저앉게 되느냐?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이나 여러분
자체를 주목하게 되면 거기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바라보게 되면은 결국에는 주저앉게 되고 패배하게 됩니다. 내가 그렇지 뭐 어제도 실패했고 오늘도 실패했고 내일이라고 또 실패하지 않을 보장이 있어. 나는 이렇지 뭐. 이런 식으로 이제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가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라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어, 이렇게 비유하는게 맞는지 잘 모르겠는데 테니스를 치는 학생들이 몇 명 있어요? 저도 치는데 복식을 친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랑 어, 예를 들어서 아, 조코비치 예, 조코비치 유명하죠? 조코위치가 저랑
복식 좋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 둘이 게임을 치는데 내가 칠 때마다 막 공에 막 네트에 걸리고 막 이러는 거죠. 어, 아, 말도 안 되죠.이 사람하고 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될 거 아니에요. 근데 우리가이 복식 팀으로서 승리하게 될 거다라는 확신을 나를 보면 난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렇죠? 내가 치는 골을 보고 내가 치는 폼을 보면은이 나머지 상대 선수들과 이런 사람들을 볼 때에 아, 정말 우리 팀이 이기겠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데 내 옆에 있는 선수가 치는 걸 보면 어떻겠어요? 아, 그래 실력이 좀 모자하긴 하지만 복식이라는게 항상 왔다 갔다 쳐야 되는 건 아니거든요. 난 가만히 있고이 사람이 계속 치기하기만 하더라도 어쨌든 아, 이길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들 거 아니에요.
그렇죠? 내 옆에 정말로 최고의 선수가 있다면 그런 마음이 들 겁니다. 그러니까이 영적인 전쟁에 있어서도 여러분이 주목해야 될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라는 거예요.이 전쟁을 치르게 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라는 거예요. 그래서 15절과 16절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소송형으로 이어집니다. 송영이라는 말은 말은 찬양이거든요. 하나님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결국 경외하고 예배하게 되는 그런 찬양으로 마무리가 되는 겁니다.이 싸움을 결국의 승리로 이끄실 분이이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주목하라라는 거죠. 15절과 16절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기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어,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왜 찬양이야? 이런 얘기 하거든요.이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믿음에 선한 싸움을 싸워라. 뭐 이런 사 이렇게 해야 된다. 이건 엄중한 명령이다. 막 이렇게 얘기하다 갑자기 아멘 막 종귀와 영광을 돌릴지어다. 이게 왜 나오지? 이런 이제 생각을 하는 거예요. 어 그런데 제가 설명해 드린 것처럼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선한 싸움을 싸운데 있어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가 늘 바라봐야 한다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승산이 있다.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서 싸울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게 될 겁니다. 계속해서 치열하게 영생을 붙잡는 삶을 살다 보면 언젠가 그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거예요.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분이에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빛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권자세요. 하나님 위에 그 누구도 없습니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겁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홀로이 온 세상을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분이이 하나님이십니다. 음. 아무리 대단한 권력과 주권을 가지고 있는 인간 통치자라도 죽으면 끝이에요.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은 오직 불멸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불멸하시는 통치자예요. 어, 시작부터 끝까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혼부터 영원까지 하나님만 오직 불멸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도 없을만큼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시고요. 그 누구도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러한 우리의 이해를 불과하시는 엄청난 분이십니다. >> 이런 분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승리에 대한 보장이 있다라는 거예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여러분 묵상하셔야 됩니다. 어, 영적인 전쟁을 치르다가 지칠 때에 넘어질 때에 자포자기하고 싶을 때에 나와 함께 싸우고 계시는 분이 누구신가라는 것을 기억해야 되는 거예요.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절대적인 통치자이시고 우리의 이해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영광과 권능과 그리고 거룩함을 가지신 그분을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길 수 있다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라고 우리가 노래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 매료되고요.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고요.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겁니다. 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이스라엘이 성을 둘러싼 많은 이방 민족들이 있었을 때에 어이 많은 민족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적해서 이길 수 있을까라고 답답해했던 사완이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사에게 믿음의 눈을 떠서 우리와 함께 있는 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라고 했어요.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이 사람의 믿음의 눈을 떠 뜨게 해 달라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의 눈이 떠졌을 때 수많은 영적인 군사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라는 것을 보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육적인 눈으로 봤을 때는 여전히이 앞에는 수많은 대군들이 있고 우리는 몇 명 없는 그러한 상황이었지만 믿음의 눈을 떠서 우리와 함께 있는 분의 능력과 힘을 봤을 때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겁니다. 이길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여러분 묵상하시고 즐거워하시고 그리고 예배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이 편지를 쓴 사도 바울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좀 생각해 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누구보다 미워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따른다라는 소식을 들으면 어디든지 쫓아가서 그런 사람들을 붙잡아서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열심을 보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바울의 삶이 180도 달라졌죠.이 예수를 위해서 죽기까지 희생하는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붙잡기 위해서 쫓아가는 삶을 살았던 거예요. 어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 어 다메색으로 가던 길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영광의
빛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빛이 너무나 찬란하고 아름다워서 육신의 눈이 잠깐 멀게 돼요. 나중에 하나님이 그 눈을 다시 뜨게 해주셨죠. 어 그런데 굉장히 여기서 좀 로맨틱하다고 저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는데 바울의 육신의 눈은 잠깐 멀었다가 다시 떠졌습니다. 정상이 됐죠. 그런데 바울의 믿음의 눈은 그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완전히 눈이 멀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어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눈이 먼 사람이었습니다. 완전히 매료가 된 거죠. 그러니까 그 숱한 고난과 역경과 비난과 믿는
사람들로부터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핍박이 있었지만 그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충성스럽게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이 예배, 하나님에 대한 그 갈망이 그를
그렇게 사로잡았던 거예요. 우리가이 믿음의 싸움을 싸운데 있어서 그 동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기서 아무리 여러분 싸워야 돼요라고 제가 막 권면하고 막 크게 소리 지르고 이걸로 약간 감화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근데 그게 여러분들을 끝까지 싸웠는데 그렇게 큰 힘이 되진 않을 겁니다. 중요한 거는 여러분을이
정말로 하나님을 얼마나 아느냐 그리고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거죠. 우리의 힘은 주를 기뻐하는 것. 우리의 힘은 주를 기뻐하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매료가 되기 원하고 눈이 멀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디모데후서 4장 7절 바울의 유서입니다.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두 번째 편지를 쓰면서 죽기 직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에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멋있어요. 그렇죠?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전작
편지에서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계속 격려를 했는데이 두 번째 편지에서 이제 자기가 곧 죽을 것을 알고 바울은 나는 지금까지 선한 싸움을 싸웠고 이제 그것을 마쳤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고백했으면 좋겠어요. 바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제 우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눈이 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우리가 완전히 매료가 되기를 원합니다.이 세상에 잠깐 일시적으로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즐거움을 주는 것들에 우리 마음을 온통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히 만족시키시는 하나님으로 우리가 가득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이 세상과 타협하려는 그 숱한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끝까지 우리가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여러분들이 어느 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나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고 믿음을 지켰노라 이렇게 고백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이 귀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이 그냥 흘러가는 삶이 아니라 채바퀴처럼 반복되는 삶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는 흠이없고 그리고 책망받을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 거룩함에 이르는 그러한 선한
싸움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매료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서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정말로 열심히 싸우기를 원합니다. 여기에 있는 그 한 사람도 믿음을 잃지 않고 도태지 않게 주님 지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 싸우고 계시다는 것을 이들이 알고 정말 매일매일에 매
순간순간이 믿음의 싸움을 치열하게 싸우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그리하여서 모두 다 최후의 승리를 얻고 의의 면류관을 얻어서 그 면류관을 주님께 벗어드리고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 아멘. 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