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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을 해치는 두 가지 문제를 다루려고 하고요. 디모데전서 6장 3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5절까지 했고 오늘은 6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어, 다음 주에는 장킴 목사님이 오셔서 청년의 특별 말씀을 전해 줄 계획이고요. 통역은 안 해도 되겠죠. 그때는 아, 우리를 위해서 통역을 해야겠네요. 그렇죠. 우리를 위해서 통역을 할어 계획입니다. 다음 주에 특별 말씀 집회 마치고 회식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예 말씀 시간에 말씀이
있다라고 했을 때는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는데 회식이 타고 가니까 다들 좋아하네요. 예. 좋습니다.음 오늘은 좋 추첨이 있다고 하죠. 그래서 이따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음. 경건을 해치는 첫 번째 문제는 지난주에 우리가 다룬 것처럼 바른 말을 떠나는 거였어요. 바른 말은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복음의 진리, 성경의 가르침들을 떠나는 문제였던 거죠. 어, 두 번째 문제가이 첫 번째 문제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진리를 떠나지 않아요. 진리를 떠나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요. 진리를 떠나게 만드는 분명한 방해물이 있습니다. 그게 돈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을 합니다. 돈을 사랑함. 돈 사랑하시는 분,
돈 사랑하지 않는 분. 어, 대부분 돈에 영향을 받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 직장 생활하는 청년들 아우, 지겨워. 월요일 날 또 일하러 가야 돼. 그러면 월급 열배로 줄게. 그러면 어 감사합니다. 이러면서 갑자기 기뻐하고 이럴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돈의 지배를 안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돈이 우리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주고요. 그런데 돈을 사랑하면 경건에서 멀어지게 한다라는 것을 오늘 분명하게 다루기를 원합니다. 10절에서는이 두 번째 문제를 돈을 사랑함이라고 아주 직접적으로 이야기했고요. 9절에서이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되는데 부하려 하는 자들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
그러니까 단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갖고 싶어 하는 것, 더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 문제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 돈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렇죠? 돈 없이 나는 살 수 있어요. 뭐 그냥 평소에 그
밭에 작물 심어서 자급 자족하면서 살 거예요. 뭐 이렇게 이제 생각하는 사람 있을지 모르겠지만 돈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밭을 사야 되는데도 돈이 필요하고 거기에 심는 종자를 사는데도 돈이 필요하고 돈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실이에요. 그래서 돈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돈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요.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다라는 거예요.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냐? 사랑의 본질적인 특징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의 본질적인 특징은 무엇이냐면 동시에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라는
거예요. 동시에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어, 물론 나에게 자녀가 여럿이 있고 그러면 여럿을 내가 똑같이 사랑해야겠다라는 건 괜찮아요. 가능해요. 어, 그런데 그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대상에 대해서는 똑같이 사랑할 수가 없다라는 겁니다. 제가 아내랑 지금 결혼한지 17년이 됐는데 제가 아내한테 나 당신하고 완전 똑같이 사랑할 다른 여자를 같이 사랑하면 안 될까? 이렇게 한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될까요?
예. 아내가 뒤에서 빠이빠이 이렇게 잘가 이렇게 얘기하는데 예. 교회에서도 저는 일할 수 없을 거고 아내하고도 아마 관계가 깨질 겁니다. 어 사랑이라는 것은 그래요. 동시에 다른 대상을 똑같이 사랑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고 하시면서 그 이유를 마태복음 6장 2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혹이를 미워하고 혹를 사랑하거나
그까 갈린다는 거예요. 결국에는 더 사랑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돈을 선택할 것이냐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냐 결정하는 상황이 오면은이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특징 때문에 우리는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어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돈도 사랑할 거야. 이게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느 순간이 됐을 때 돈을 포기하게 될 거고요. 돈을 사랑하면 어떤 순간이 됐을 때 하나님을 버리게 될 거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둘 중에 하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결정해야 한다라는 겁니다.
어, 돈을 사랑하는 것의 문제는 오늘날 조금 음, 특별한 용어로 물질주의의 문제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물질주의. 어 물질주의는 표준 국어 대사전을 찾아보면 요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만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경향. 그니까 물질적 만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거예요. 아까 제가 사랑이 결국에는 무언가를 선택하는 문제가 생긴다라고 말씀드렸는데 물질주의는 물질을 가장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겁니다. 그 가치 경쟁하는 대상이 무엇이든지간에 결국에는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이 물질주의인 거예요. 그런데 이런 물질주의가 그리스도인에게 문제를가 가지고 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를 갖는 분은 누구예요? 하나님이니까.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를 갖는 분은 하나님이고 우리가 최고로 추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담는 것 곧 경건이기 때문에 물질주의에 우리가
물들어 버리면이 내적인 심한 갈등이 시작이 되는 겁니다. 무엇을 더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전쟁이 시작된다라는 겁니다. 부하려는 자들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어요. 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가 삶의 목적이 된다라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데 있어서 최고 목적이 더 많은 불을 얻는 것이다. 더 많은 물질적인 그런 만족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최고의 가치, 최고의 목적이 뭐예요? 삶의 목적이 어떻게 하면 더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더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것이 경쟁하는 겁니다. 충돌하는 거예요. 돈과 하나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부하려고 하는 자들이라면 언제든지 불을 포기해야 될 때 불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포기하게 된다는 거죠. 만약에 여러분들이 보호하려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는 자들이 된다면 경건을 추구하는 자가 된다면 언제든지 경건을 추구하는데 방해가 되면 보를 포기하게 된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문제입니다.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요. 근데이 가운데 아까 제가 질문했지만 저는 돈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그렇죠? 노골적으로 저는 돈을 너무너무 사랑해요. 이렇게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부호하려고 하는 자들 중에 하나입니다라고 고백할 사람들도 아무도 없어요. 음. 아마도 여러분들은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을 더 얻고자 합니다. 이런 식으로 고백을 할 거예요. 어 근데 그것을 누가 입증할 수 있느냐라는 거죠. 여러분 말로는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진짜 돈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을 추구한다. 경거를 추구한다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 그것이 오늘 본문에 말하는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진짜로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고요. 부하려는 자가 아니라 경건하려고 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어 자족하는 마음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자족하는 마음을 가졌는지 점검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6절에 보시면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거는 큰 이익이 되느니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앞서서 어 다른 교훈을 쫓고 있는
사람들이 경건을 자기 이익의 방도로 삼는다라고 말을 했었어요. 그러니까 경건이 최고 목적이 아니라 경건을 발판삼아서 돈을 얻으려고 했던 사람들인 거죠. 다른 교훈을 쫓 사람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경건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거예요. 경건이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경건이 목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경건이 삶의 목적이 되고요. 돈은 그것을 얻는 수단으로 위치가 바뀐다라는 거죠. 어
그래서 여러분들의 진리를 따르고 있다면 여러분들이 바른 교훈을 따르고 있다면 돈을 사랑하는 문제도 바로 잡아야 된다라는 겁니다. 이것이 밀접하게 연관이 돼 있어요. 다른 교훈을 쫓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돈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경거는
돈을 얻는 수단이 되고 말는 거죠. 그런데 반대로 바른 교훈을 쫓는 사람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사랑의 대상이 되세요. 그러면 돈은 경건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는 겁니다.이 위치가 뒤바뀌지 않도록 계속해서 우리가 수고해야 되는데요. 우리가 지금 그것을 하고 있느냐? 잘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잣대가 바로 자족이라는 거예요. 자족. 당신은 자족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오늘이 시간 동안 한번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어, 성경에서 자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 예수님을 제외하고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누가 말했죠?
네.이 편지를 기록한 사도 바울이 얘기했습니다. 나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라고 말을 했고요.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모든 비결을 배웠다는 뜻이에요. 일체의 비결이. 어떻게 바울은 모든 상황에서 만족할 수 있고
자족할 수 있었을까?이 이 경건의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자족의 마음을이 바울에게서 배우는 시간을 오늘 가지려고 합니다. 어 한 세 가지 정도 세 가지에서네 가지 정도이 비결을 배우려고 하는데 첫 번째로는 우리가 자족하려면 반드시 이것을 배워야 돼요. 먼저 먼저 무엇이냐면 물질은 연구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배워야 됩니다. 물질은 연구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7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태어날 때 손에 뭐 쥐고 태어난 사람 아무도 없죠. 죽을 때 뭐 쥐고 갈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올 때도 빈손, 갈 때도 빈손이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물질을 우리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여러 물질들을 손에 쥐고 또 놓치고 하겠지만 연구적으로 계속 질 수 있는 물질은 없다는 겁니다. 물질은 일시적이라는 거죠. 어, 욥이 이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많은 것들을 취해 가셨을 때에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은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비슷한
말이죠. 알몸으로 아무것도 가진 채 가지지 않은 채로 나왔으니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로 돌아가는게 맞다라고 인정을 하는 겁니다. 어, 그런데 여러분 기독교만 이것을 가르치나요? 공수레 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유교, 불교, 도교도 똑같이
이렇게 가르칩니다. 어, 불교에서 왜 이런 걸 가르치느냐? 너무 물질에 집착하지 말라는 거예요. 너무 그 물질에 대한 탐욕과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뭐 이렇게 이제 가르치려고 하는 겁니다. 어, 불교는 계속 비우라고 하잖아요. 빈손을 가지라고 하는게 불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와 무슨 차이가 있나? 오늘이 말씀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불교는 계속해서 손을 비우라고 얘기해요. 우리 그 동양의 철학과 종교들은
계속해서 비울 것만 요구합니다. 욕심을 버리세요.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세요. 탐심을 버리세요. 그니까 손을 비우라는 거죠. 그런데 그 손에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아요. 그냥 비우면 그것으로 우리에게 행복이 찾아온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근데 기독교는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그냥 비우라고 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비우라고 하는게 아니라 그 빈손에 하나님을 소유하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 일시적인 물질들을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소유하라라고 기독교는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 인간은 기본적으로 소유욕이라는게 있습니다. 탐심이라는게 있어요. 정욕이라는게 존재해요. 그런데 동양 철학과 종교들은 그냥 비우면 다 해결된다고 말하는데 안 그렇습니? 안 그렇습니다. 욕구가 있기 때문에 계속 갖고 싶어 하는 거예요. 계속 더 물질을 추구하게 되는 겁니다. 근데 기독교는 욕구를 버리라고 하는게 아니라 욕구의 방향을 대상을 바꾸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썩어질 일시적인 물질에 두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께 너의 그 소원을 두라라고 하는 거예요. 갈망을 하나님께 두라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들은 무소유를 주장하지만 기독교는 무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소유 혹은 그리스도를 소유하라 얻으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라는 겁니다. 그것이 가장 귀하잖아요. 여러분 누가 돈과 하나님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한다면 뭘 선택하는게 맞습니까? 하나님 선택하는게 맞잖아요.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 모든
부와 재물이 다 하나님께 속해 있잖아요, 사실은. 그래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욥이 알몸으로 나왔다가 알몸으로 돌아갑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이런 말을 했어요.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그러니까 그냥 난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뭐 무일으로 왔다 무일으로 돌아갑니다만 얘기한게 아니라 요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셔야 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아까 자족의 일체를 배웠다라고 말한 바울도 나는
궁핍 줄도 알고 뭐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이런 말을 하고 나서 무슨 말을 했느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어떻게 자족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나에게 능력 주시는 자가 나의 편에 있다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소유기 때문에 소유라고 해서 좀 어색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리스도를 내가 얻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것들이 없어도 충분히 자족한다, 만족한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물질이 아니라 물질을 우리에게 주실을 수도 있고 거두시기도 하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자족을 참으로 배울 수가 있는 겁니다. 어 그러니까 여러분 만족이라는 거, 자족이라는 거 아 만족해야지 그냥 있는 거 만족해야지 뭐 이렇게 정신 승리하라고 하는게 기독교가 아닙니다. 사실이 아닌데 마음으로만 정신으로만 어떻게 승리하려고 하는게 자족의 마음이 아니고요. 진짜 믿음으로 현실을 보라는 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분이 누구지를 보라는 겁니다. 나는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을지 몰라도 나에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나는 자족할 수 있다. 믿음으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영적인 승리입니다. 자족이라는 것은 정신
승리가 아니라 영적인 승리다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두 번째로 자족하려면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들에 만족할 수 있어야 됩니다. 8절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먹을 것 없는 사람 거의 없죠.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입을 것 없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지금 다 입고 오셨고 그리고 먹을 거 없는 사람 없습니다. 다 충분히 있는 거예요. 음. 왜 우리가 이것을 만족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다 공급하실 수 있는 분이다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믿어요. 하나님 당연히 공급하시지. 나에게 없는 거 있으면 하나님 주실 거야라고 믿는데 왜 불만족이 생기느냐? 왜 자꾸 불만족이 올라오느냐? 내가 가지고 싶은만큼 주시지 않다라고 느낄 때 그런 거예요. 내가 얻고 싶은만큼 지금 주시지 않고 있다라고 느낄 때 그렇습니다. 나에게 무언가가 없는데 이것을 당장 주실 수 있다면서 왜 안 주시는 거야라는 원망이 생길 때 볼만족이 생깁니다. 때로는 내가 가진
것에 충분히 만족했었는데 옆 사람 거 보면서 불만족이 시작돼요.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많은 거야? 왜 저 사람 저렇게 많이 노리는 거야라고 하면서 불만족이 생깁니다. 어, 우리 아침에도 얘기했지만 쭈미 저랑 내팔 갔었죠. 내팔에 살아가는 사람들 보면서 너무너무 만족스러웠어요. 우리는 너무 많이 누리고 있구나. 저 사람들에 비하면은 정말 많이 가지고 있구나.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감사가 돼요. 막 그 제가 아내한테 영상 통하면서 한국에 있는 1분 1초 항상 감사하세요. 막 이렇게 얘기했거든요. 어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막 유럽에 간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미국에 아주 부촌에 간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가서 보면서 막 그 사람들이 차는 타, 아 타는 차, 뭐 입는 옷, 뭐 먹는 음식
이런 거 보면서 야, 난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사냐? 막 이런 생각이 들 거 아니에요. 그 그런 걸 보면서 하나님이 이만큼 왜 나한테 공급해 주지 않으시지라고 하면서 불만족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때 여러분 여러분에게 마음속에 불만이 생길 때에 만족스럽지 않다라고 느낄 때에 여러분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첫째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고 충분히 주셨다라고 믿고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 둘째, 하나님은 못 믿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주실 수 있지만 지금 안 주고 계시고 그 의도도 잘 모르겠다. 예. 좋은 마음으로 지금 안 주고 계신지 아니면 나를 시험하고 계신 건지 왜 이렇게 나한테 안 주시는지 모르겠다라고 불신하는 것. 그니까 신뢰하거나 아니면 불신한 것.이 우리 둘 중에 하나의 선택을 하셔야 됩니다. 내가 불만족스러울 때 어 내 마음에 불만이 막 원망이 막 생길 때에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불신할 것인가이 둘 중에 하나의 선택을 반드시 해야 된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만족은 결국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을 했어요. 히브리서 13장 5절에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방금 이야기한 첫 번째, 두 번째가 다 나왔죠. 돈을 사랑하지 말라. 그리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리고 나서 뭐라고 말했는지 잘 들어보세요.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신뢰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라는 거예요. 만족이라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계속해서 신뢰할 것이냐 아니면 말 것이냐. 나와 함께 하시겠다. 나를 버리지 않겠다.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계속해서 붙들고 신뢰할 것이냐 아니면 못 믿을 뿐으로 여길
것이냐이 문제다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라는 것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는다라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어요. 우리 옆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주시고 떠나지만 않고 버리지는 않을게 이렇게 하는게 아니잖아요. 예. 분명히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신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너희가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 아신다. 그리고 구하면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 여러분들이 어 불만스러울 때가 분명 있을 거예요. 아 참 만족스럽지 않다라고 느낄 때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럴 때에 한 가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돼요.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불신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에 무엇이 신뢰적으로 여러분들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느냐? 그분은 이미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주셨다라는 겁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이미 주신 분이다. 하나뿐인
아들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서내어 주신이가 아들과 함께 그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답은 뭐예요?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들을내어 주신 분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걸 안 주실 수 있어라고 우리가 불신해하는 불신하는 대상으로 삼아야 되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분은 이미 최고의 것을 주신 분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주신 분이에요. 자기 자신을내어 주신 거고요. 하나뿐인 아들을내어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지금 주지 않는다면 그런 이유가 있다라고 우리가 신뢰해야 되는 겁니다. 그것이 나에게 최선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다라고 우리가 신뢰해야 되는 겁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첫째 물질이 일시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요. 둘째로 우리가 받은 것이 충분하다라는 것.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에게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요. 부하려고 하는 것, 돈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어야 하는 그러한 잘못인지를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겁니다. 계산해 보는 겁니다. 여기 본문에 9절과 10절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부활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하게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
음. 재물이 자기 삶에 아주 중요한 가장 최고의 그러한 목적이 된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시험과 올무라는 것은이 사냥감을 잡는 덫과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돈을 사랑하는 어떤 여러 가지 기회들을 만났을 때에 그것이 덫처럼 나를 확 잡아채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그러한 문제를 갖는 겁니다. 어, 잘만 하면 큰 이득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고요. 어, 이게 문제가 되더라도 나에게 큰 탈이 없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뭔가 대단한 이익을 얻을 것 같은 물질적인 유익을 얻을 것 같은 기회가 열리는 겁니다. 그럴 때에 그것을 잡으면 나는 덫에 걸리는 사냥감처럼 꼼짝 없이 나오지 못하게 된다라는 거예요.
어 저는 영업사원으로 이제 일을 하면서 한번 퇴근길에 한번 얘기했던 거 같은데 어떤 그 1톤 트럭 차 아저씨가 옆으로 세워 봐요. 막 이렇게 저한테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세웠더니 어 자기 냉동 냉동고에서 생선을 꺼내면서 요게 이제 오늘 팔아야 되는 건데 남은 건데 원래 가격이 10 몇 만 원인데 어 뭐 만 원해 주겠다 뭐 이런 식으로 저한테 얘기한 거예요. 그래서 지갑을 보니까 한 5,000원 있었어요. 그래서 5,000원밖에 없는데요. 그러니까 있는 거 다 내놓어 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제가 알았어야 되는데 무슨 이렇게 선의를 베푸는 사람이 있는 거 다 내 봐라고 하지 않잖아요. 근데 그래서 어쨌든 막 무슨 이것저것 다 꺼내서 줬던 거 같아요. 근데 집에 와 보니까 생선이 먹을 수 없는 생선이더라고요.
어, 그리고 한 번은 제가 딱 두 번 살면서 속았는데 한 번은 그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무슨 호텔 무슨 이용권을 사 산다는 거예요. 그래서 꽤 고가를 주고 사서 가족끼리 원할 때 언제든지 갈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이 여러 가지 그
자세한 내용들을 보니까 갈 수 없는 날 뭐 공유일 뭐 무슨 날 무슨 날 해 가지고 결국 갈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는 상품권이었어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하루도 못 이용하고 결국에 날려 버린 그러한 일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굉장히 많죠. 요즘에는 도박 같은 거에 빠진 사람도 굉장히 많습니다. 한번 했더니 막 5만 원을 딴 거예요. 어, 이걸로 괜찮네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이제 하다 보면은 이제 인생이 거기에 묶기게 됩니다. 어, 주식 투자로 많은 돈을 잃은 사람들도 있어요. 왜 어리석게 저렇게 두식 투자를 할까? 한번 했더니 유익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여러 가지 뭐 유튜브나 이런 거 보니까 어, 렇게 하면 요런 유익을 얻을 수 있네.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겁니다. 그걸로 인해서 계속해서 돈을 투자하고 계속해서 들여다봐야 되고 시간을 빼앗기고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거죠. 어 도박에 빠진 사람들 보면 여러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한번 맛을 보면
마치 덫과 같이 거기에 걸려서 여러분들이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라는 겁니다. 왜 사람들이 이런데 끌릴까? 나 같으면 안 할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드는데 우리 안에는 모두 다이 해로운 욕심이라는게 있습니다. 정당하게 이래서 정당하게 번다라는게 아니라 그런 일학 천금을 벌고 싶은
노력하지 않은 돈을 한꺼번에 벌고 싶은 욕심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주신 그러한 선한 마음이 아니라 해로운 욕심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어 그런 거에 빠져 있지 않은 현재 우리 사람들이 볼 때는 너무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다라는 생각을 그 사람들은 그냥 쉽게 하는 거예요. 눈이 멀어서 그런 선택들을 하게 되는 겁니다.
어 여러분 잘 아시다피 예전에 교회에서 한번 그 도박에 빠진 사람을 출교시킨 적이 있어요. 우리 유평 교회에서. 어 그때도 어 엄청나게 공고했어요. 이게 너무나 마이너스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왜 하는 것이냐라고 많이 공고를 했단 말이죠. 근데 모르는 거예요. 왜냐면 과거에 한번 크게 딴 적이 있었거든. 그니까 그거 한 방이면 지금 마이너스 된 거를 다 메꿀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해서 더 마이너스로 가는 그러한 삶을 사는 겁니다. 그게 인간이 참 어리석은 거예요. 그 안에 해로운 욕심이 있기 때문이고요. 그런 덫에 걸리고 마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그러한 삶을 따라가다 보면은 결국에는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요.이 파멸과 멸망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영원한 심판과 형벌까지도 이어집니다.
어,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하게 뿌리가 되기 때문에 여러분, 어, 시사고발 프로그램 보면 모든 범죄들이 돈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어, 사기를 치고 도둑질을 하고 강도도 하고 살인도 하고 어, 그러한 일들을 합니다. 돈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한 죄를 짓는 사람들은이 땅에서 하나님 세우신이 법에 따라서 그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고요. 그리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고 영원한 심판 파멸과 멸망을 당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믿는 우리들 여러분 여기에 있는 분들이 대부분 믿는 분들인데 돈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에는 영향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가 있어요. 근데 있어요. 아주 치명적인 영향이 있습니다. 10절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거는 그렇게 될 수도 있어라는 경고가 아니라 찔렀도다. 믿음에서 떠났다라고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잘 아시는 대만은 세상을 사랑해서 사도 바울과 복음 사역을 떠났습니다. 돈을 사랑한 겁니다. 그리고 어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런 말들을 했어요. 스스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이런 식으로 라오디게어 교회가 자랑을 했는데 예수님은 너의 공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믿는 사람도 하나님을 떠날 수 있고요. 믿음에서 파선할 수 있고요. 그리고 믿는 교회도 자기가 스스로 부호하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 보실 때 가난할 수 있다라는 겁니다.
미지근하고 그리고 예수님이 입에서 토하겠다라고 말하는 그러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라는 겁니다. 구원이 취소되는 건 아니에요. 구원이 확실했다면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확실하지 않았다라는 것이 드러날 수도 있고요. 아니면 구원받았지만 정말로 부끄러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를 계속해서 찌르는 삶, 괴롭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어 자기를 찔렀다라는이 표현은 자해한다라는 표현과 굉장히 유사한데 돈을 사랑하는 것, 부하려는 것 그 마음 때문에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를 굉장히 해치는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영원한 만족을 얻게 된 사람이 돈 때문에 물질 때문에 결국엔 자기 삶을 굉장히 갈급하고 목마르고 그리고 헐벗은 삶을 살게 만든다라는 겁니다. 정말로 대단한 상급을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사람들인데이 땅에 있는 물질의 눈이 먼 상태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정말로 스스로 자해하는 삶과 같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돈을 살아하는 것이 굉장히 치명적이다라는 것을 알게 됐을 거예요. 부가 여러분의 삶에 목적이 된다면 하나님은 다음 순위로 밀려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먼저 원래 순서에 두어야만
부가이 따라오게 된다라는 거예요. 어, 여러분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어, 그리고 어, 하나님 닮아가는 그 경건을 추구하고 싶어 하는데 돈은 분명히 거기에 방해물이 될 수 있다라는 겁니다. 음. 그러면 어떻게 돈을 제 위치해 둘 수 있을까? 하나님을 제위치해 두고 돈을 제 위치해 둘 수 있을까?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세 가지 조언을 좀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경건을 최고의 가치로 두면서 사는 법. 그리고 자족하면서 사는 법. 하나님을 돈보다 더 사랑하는 그러한 삶을 사는 법을요 세 가지로 훈련했으면 좋겠어요. 첫 번째 있는 것에 항상 감사하는 연습을
하라. 있는 것에 항상 감사하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어, 내 컴퓨터 너무 꽂졌어. 넌 난 너무 불행해. 이런 생각하지 마시고요. 어, 나는 이거 있는게 너무 감사하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에게 있는 것에 항상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는 연습을 하는게 중요해요. 무언가 주어졌을 때 와, 나 이런게 이런 걸 주셨네. 너무 감사하다. 하나님 이런 걸 공급하셨네. 감사하다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최고를 주신다라는 것을 믿으셔야 돼요. 두 번째 우선 순위를
바로 세워라입니다. 우선 순위를 바로 세워라. 어. 여러분 그 얼마 전에 우리 그 전 회장님의 편지 받으셨죠? 저도 저도 사실은 그거에 어떤 자극을 받아서 칼럼을 두 편을 썼는데 모이기를 힘쓰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에 둔다라는 것은 그렇게 실질적으로 보여지는 거예요. 청년를 참석하는 것을 통해서 어 교회 주의를 참석하는 것을 통해서 그니까 내가 진짜 무언가를 우선 순위에 둔다는 것은 말로만 하는게 아닙니다. 진짜로 그 삶의 열매로 드러나게 된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여기 학생의 교사들도 많을 텐데 시험 때 애들 안 나와요. 그리고 뭐 바쁜 일 있다
그러면 또 빠집니다. 그런 것들이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는 생각해요. 피치 모탈 사정으로 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하나의 패턴이 되면 저는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엇이 우선 순위에 있다는 걸 보여 주니까 그런 거예요. 나는 학업 성적이 더 중요하다. 나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걸 보여 주니까 그게 위험하다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을 우선 순위에 둔다라고 하는 것이 보여지면 그러면 안전한 건데 그렇지
않으니까 위험하다라는 생각을 우리가 하는 겁니다. 우선 순위를 바로 세워야 됩니다. 돈이나 좋은 학교, 성적이나 직장, 월급보다는 하나님을 닮는 삶, 하나님을 더욱 경험할 수 있는 삶, 하나님을 닮은 삶 사람들을 만나서 서로 격려할 수 있는 그러한
모임들을 더 귀하게 여겨야 된다라는 거예요. 세 번째, 경건을 위해서 돈을 투자하라입니다. 여러분, 아까 경건과 돈이 위치가 바뀌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경건이 첫 번째고 돈이 그 수단, 경건을 추구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경건을 위해서 돈을 한 푼도 투자하고 있지 않다면 순서가 제대로 돼 있다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돈을 너무 귀하게 여겨서 경건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기회들을 오히려 피해. 그러면 순서가 뒤바뀌 있는 사람인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경건이 최우선 순위에 있다면 경건을 추구하는데 여러분 돈을 투자하셔야 돼요. 그래서 어떻게 투자할 수 있느냐? 뭐 좋은 신앙 서적을 사보는 것도 투자가 될 수 있고요. 그리고 사랑하는이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돈을 사용하는 것도 투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진짜로 여러분이이 재물을 하나님을 위해서 경건한 삶을 위해서 사용하는 모습이 그 돈이 올바른 우선 순위에 있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라는 겁니다. 음. 예전에 아주 예전인데 제가 어 너이 성도들을 위해서 돈을 얼마나 써 봤어라고 했을 때 한 푼도 쓴 적이 없어요.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걸들을 때 이제 충격적인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의 어떤 우선순이나 가치관이 잘못됐다라고 지금 말하는게 아니라 잘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거든요. 그니까 지금 알려 드리는 겁니다. 돈이 나의 최고 목적이
아니고 물질이 최고의 가치가 있는게 아니다라는 것은 여러분이 돈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라는 거예요. 나타나야 한다라는 겁니다. 어 여러분이 주님께 드리는 헌금이 될 수도 있고요. 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는 그러한 자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함으로써 진짜 나는 경건을 나의
삶의 목적으로 두고 있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 지금 청년의 시기에 돈은 어느 정도 여유로울 수도 있거든요. 뭐 학자금 대출하신 분도 있겠지만 여유로울 수 있어요. 그런데 갈수록 돈이 더 필요한 삶이 됩니다. 나 혼자 사는게 아니고 이제 남편과 혹은 아내가 생기고요. 자녀가 생기면 돈이 더 많이 필요하고요. 그러니까 갈수록 더 돈이 많이 필요하고 돈에 더 얽매이게 되는 삶을 여러분 살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지금 여러분이 연습해야 될 때입니다. 지금
충분히 연습을 하시면 더 어려워진 그러한 성경이 됐을 때도 그렇게 살아갈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오늘 말씀에 따라서 자족하는 마음을 연습하시고요. 그리고이 재물을 하나님을 위해서, 경건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청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경건과 직결된 문제다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면 좋겠어요. 단지 재정 관리,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돈을 사용할 것인가이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닮아가는데 있어서 정말로 직결된 문제다라는 것을 분명히 아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신 귀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이 물질들에 감사하고 또 만족하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하여 주님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주신 것들을 달란트로 여겨서 하나님 다시 우리를 만나러 오실 때에 하나님 제가 이렇게 사용했습니다라고 하나님께 자랑할 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돈을 사용하는 모습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또 간절히 구합니다. 경건을 향하여 우리가 나아갈 때에 물질이 방해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