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사랑하기에 섬기기로 굳게 마음먹기

최종혁 · 2024.06.24 · 고린도전서 1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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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에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결국은 모두 사랑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되지 않았을 때 교회는 세상이 겪는 죄의 문제를 교회 안에서 그대로 겪게 되는 것을 (안타깝지만) 고린도 교회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 말할 수 있겠지만, 바울이 스데바나의 집에 대해서 말한 것이 실제적으로 가장 좋은 설명일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 중에서 “섬기는 자”로 계셨던 것처럼, 이들도 그렇게 성도를 섬기는데 온 맘과 온 힘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관계가 흥미롭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섬김을 받고 싶어하지 섬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남이 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하지 못할 일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여나 희생을 하면 그것을 매우 크게 봅니다. 부부가 다툼을 하는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함께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희생을 해야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엄청나게 희생을 하고 있고 상대방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데, 이 사람은 왜 이 정도도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섬김 받고 싶은 죄성에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정말로 사랑하면, 사람은 섬기고 싶어 합니다. (죄의) 본성을 거스려서 희생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남이 생각하지 못할 일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억울하게 생각하거나 손해보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즐거이 그렇게 합니다. 더 그렇게 하고 싶어 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답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곧 섬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추상적인 사랑을 구체화 하는 것이 섬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사랑해야겠다”가 어렵거나 잘 와닿지 않는다면 “섬겨야겠다”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만약 서로 “섬겨야겠다”는 마음으로 모였다면 아마도 고린도 전서는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른 내용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겨야겠다는 마음으로 모이고 살아간다면 우리 삶도 지금과는 다를 것입니다.

섬기는 것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일 수 있지만, 그 전에 마음의 태도입니다. 섬기기로 굳게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야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께서 사랑하신 성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바울의 말은 “성도를 섬기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와 같은 말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면 성도를 섬기는 것도 그러합니다. 주님처럼 사랑하고, 주님처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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