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가 어둠이라면 룻기는 빛입니다. 하지만 룻기의 시작은 그렇지 않습니다. 룻기는 사사기의 극한 어둠에 대한 기록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베들레헴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룻 1:1-2).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도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살기위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남자들은 모두 죽고 여자들만 남게 됩니다(룻 1:3-5). 여성이 경제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이는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뒤로 룻기도 사사기처럼 어떤 죄악된 역사가 이어질 것만 같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룻 1:6). 돌아간 베들레헴에서도 여전히 힘든 삶을 이어가지만 ‘보아스’라는 친족에게 은혜를 입습니다. 나오미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고(룻 2:20), 룻에게 보아스를 찾아가서 그에게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알리라고 합니다. 바로 이 ‘기업 무를 자’에 대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기업 무를(되찾을) 자’는 친족구속자(고엘)라고도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은 율법에 따라 가까운 친족이 종으로 팔려간 친족을 돈을 주고 속량하거나, 팔려고 하는 땅을 자신이 사거나 혹은 팔린 땅을 되찾아 주거나, 계대결혼(미망인과의 결혼)을 통해 집안의 이름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어야 했습니다.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은 이 의무를 거절했고, 보아스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6절), 룻과 결혼하여 모든 책임을 기꺼이 졌습니다. 그렇게 보아스는 룻을 통해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아 왕의 족보에 들게 되고, 결국 다윗의 자손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셨기에 그 족보에도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보아스의 모습은 우리의 궁극적인 친족구속자이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룻과 나오미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그들을 구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기꺼이 자신의 책무를 다 했습니다. 사실 그 이상을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주신 일입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였고, 하늘에 속한 모든 기업을 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참된 삶을 살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구속, 즉 댓가를 지불하고 사신 것입니다.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가 잃은 모든 것을 되찾게 하시고, 본래 누렸어야 할 참된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꺼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이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속자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룻 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