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작은 자를 주님께 하듯 사랑하는 삶

최종혁 · 2024.03.27 · 마태복음 2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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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보다 크신 예수님께서 정말로 작고 보잘 것 없는 우리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무시 당하기 쉬운 사람들을 언급하시면서 그들을 돌본 것이 곧 예수님 자신을 돌본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합당한 복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에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좀 신기한 것은, 우리는 오히려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은 돌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는데,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마음이 오히려 잘 생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가난한 성도에게 밥을 사주는 것은 어떤 면에서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경제적으로 부족해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아픈 누군가에게 관심을 표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힘든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히려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 대해서는 그들을 존중하거나 그들의 어려움을 돌보려는 마음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짜 큰 어려움이 닥치면 당연히 돌보려고 하겠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잘 안다는 이유로 쉽게 나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말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내뱉습니다. 어떤 성도가 나에게 그렇게 하면 웃어 넘길 일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지금 나에게 있어 “지극히 작은 자”는 가난한 성도도 아니고, 병든 성도도 아닐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자들도 당연히 내가 예수님을 대하듯 대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자들만 생각하면서 오히려 가까운 사람은 내가 무시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자”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누구든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난한 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병든 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중요하게 보시는만큼, 우리가 남편을, 아내를, 부모를, 자녀를, 형 오빠 언니 누나 동생을, 친구를, 성도를, 동료를 어떻게 대하는지도 동일하게 중요하게 보십니다. 그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주께 하듯이 했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편한 사이가 무례한 사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이든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께 하듯이 남을 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만큼 정말로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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