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사귐

최종혁 · 2024.12.13 · 요한일서 5: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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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편지의 마무리에서 기록의 목적을 분명히 밝힙니다.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는 ‘중간’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너무 극단적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오히려 요한은 “믿는 자”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사실 너무 당연한 논리입니다. 요한은 믿는 자의 특징을 기록한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구원을 재점검해보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그런 목적으로 요한일서를 기록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면에서 오늘날 요한일서는 너무나 중요한 편지가 된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 ’애매한‘ 신자들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원 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구원 받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교회도 점점 구원의 여부를 분별하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교회 잘 나오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 그게 구원받은 것이겠지라는 막연한 소망만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그렇게 막연한 소망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면 그만’이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지’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타도 안전 장치를 여러 번 확인합니다. 혹시라도 모를 결함이나 문제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여러 번 반복해서 여러사람이 확인을 합니다.

하물며 구원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영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확신’을 가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봐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복해서 점검해야 합니다. 애매한 기준이 아니라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속했는지 악한 자에게 속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분명한 기준이 바로 요한일서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구원 받은 자에게 요한일서는 확신과 위로, 그리고 도전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부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들으실 줄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악에서 지켜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것은 나를 지켜 하나님이 아닌 모든 우상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확신을 무너뜨려는 우상들, 우리를 낙심하게 만드는 우상들, 그래서 우리로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악한 자를 따르게 하는 우상들에게서 나를 지켜야 합니다. 그 우상은 나일 수도 있고 남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가지고 싶어하는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나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면, 그것에서 내가 멀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영생을 얻은 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영원한 사귐이 우리 각자의 삶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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