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끝없이 죄와 싸우며 의를 향하는 삶

최종혁 · 2024.12.04 · 요한일서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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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천국 갈 수 있는 티켓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이같이 큰 구원”을 너무 작게만 이해하는 것이고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힘든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고 있을 때 ‘천국 갈 수 있는 티켓인 구원’은 매우 강력한 소망을 주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그것 하나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큰 그림을 이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물질적으로 풍족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구원을 천국행 티켓으로 생각하면 지금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 죄와의 싸움, 성화와 같은 얘기들은 선택일 뿐이고 좋게 얘기해봐야 하늘에서 상을 많이 얻냐 적게 얻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상 욕심이 없는 겸손한 사람(?)에겐 의미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요한일서의 시작에서 사도 요한이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은 구원의 의미가 사귐, 즉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구원으로 하나님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가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요한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분께는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1:5). 빛과 어둠이 함께 있지 못하듯 하나님과 죄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죄인입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과는 함께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구원 받은 자들은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계신 빛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2:1-2). 이제 그들은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한 관점은 명확해집니다. 구원 이후의 삶은 천국 가는 것과 아무런 상관 없는 얘기가 되지 않습니다. 단지 상을 얼마나 얻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애초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회복된 것이 맞는지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결혼한 남녀가 이제는 결혼했으니 마음대로 다른 사람도 만나며 살아도 상관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두 사람은 올바른 결혼관계 안에 들어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가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고 하나님보다 죄를 더 사랑하며 산다면,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죄에 더 민감해집니다.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에 대해 어차피 용서받은 죄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를 멀어지게 만드는 더러운 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죄에서 실제로는 더 멀어지지만 그만큼 작은 죄에도 민감해져서 스스로는 더 죄인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만큼 더 하나님께 나아가고 죄를 자백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구원 받은 자의 삶은 완전히 의로워진 삶이 아니라 끊임없이 죄와 싸우며 그 의로움을 향해가는 삶입니다. 우릴위한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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