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사랑의 순종 가운데 거하는 구원의 확신

최종혁 · 2024.12.10 · 요한일서 3: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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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이 구원의 가장 분명한 증거로서 강조하는 것은 ‘형제 사랑’입니다. 그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14절). 반대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여전히 사망에 머물러 있고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14-15절).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기에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16절). 사랑은 실제적인 사랑입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보고 돕는 것입니다(17절).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항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18절).

베드로도 같은 맥락에서 구원 받은 자들은 거짓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미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합니다(벧전 1:22). 사도들이 이렇게 형제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일 것입니다.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회복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 중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은 형제 사랑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이 죄인의 특징인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를 사랑할 때 그것이 자연스럽게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징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에 분명히 ’아멘’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운 마음도 함께 있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형제를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난 나의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하고 있는데 혹시 나의 확신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 3: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우리 마음은 우리를 책망합니다. 정죄합니다. 이것이 없는 것도 정상이 아닙니다. ‘사랑’은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난 이미 충분히 사랑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진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더 사랑하고 싶어하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얼마나 사랑했느냐에 관계없이 항상 충분히 더 사랑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그런 생각이 우리를 정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사탄은 그런 마음을 이용해서 우리의 확신을 흔들고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에게 확신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은 우리를 정죄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롬 8:1). 흔들리는 내 마음에서 확신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게서 확신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 가운데 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23절). 하지만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정량적으로 판단하여 확신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확신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서 찾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구하는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늘 확신 가운데 거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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