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게으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책임감

최종혁 · 2026.06.18 · 잠언 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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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게으름을 단순히 생활 습관이나 태도의 문제로 보지만, 성경은 게으름을 죄의 문제로 봅니다. 게으르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해야할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게 하는 것이 게으름입니다. 잠언 21:25은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고 말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일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욕망을 따르는 일은 부지런히 잘 합니다. 하지만 해야할 일은 귀찮아하고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죽입니다.

게으름은 자신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도 죽게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는 게으른 자들에 대해서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살후 3:11). 바울은 이런 자들 때문에 본을 보이기 위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 일부러 주야로 일을 하기도 했다고 말합니다(살후 3:8-9). 그럼에도 이들은 게으름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일은 하지 않고 일만 만들었습니다. 이들을 돌보느라 교회는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했을 것이고, 또한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습니다(살후 3:10). 게으름은 할 수 없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기 싫어하는 ‘의지’의 문제입니다. 불순종의 문제, 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그런 자에게 “개미에게 가서 … 지혜를 얻으라”고 말합니다(6절). 개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해야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7-8절). 그런데 게으른 자는 그냥 누워 있습니다(9절). 항상 ‘좀더’를 말합니다(10절). 잠언은 그런 자에게 빈궁이 강도 같이,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11절). 결국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그 자체로서도 죄이기 때문에 버려야 하지만, 그 결과를 생각해서도 반드시 버려야 하는 죄입니다.

문제는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이런 게으름을 너무 가볍게 본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의 게으름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나의 게으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해야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의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삶에 숨어 있는 게으름의 죄를 색출해 내야 합니다. 그 죄가 나를 죽이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죽이기 전에 찾아내어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개미에게 가서라도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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