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성막과 제사 제도는 모세가 자기가 생각한대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모세가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셨던 것은 아름다움이나 효율성 같은 것 아니었고,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하기 원하시지만, 그들은 그냥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지만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법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것이 동물의 피를 흘리는 제사 제도가 의미했던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은 다른 무언가의 죽음으로 그 값을 갚는 ‘대속’이 가능함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동물이 그 죄를 지은 것이 아니기에 이는 ’희생’이 됩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런 희생 제사가 드려져야 했다는 것은 동물로는 사람의 죄의 값을 온전히 갚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그렇게 동물의 제사를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임재를 두신 지성소에까지 나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성막 안의 뜰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을 뿐 성소로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택함 받은 자손인 레위 지파 중 제사장들만이 성소에 매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6절). 하지만 그들조차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7절).
이 모든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이루실 온전한 실체의 그림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 되셨고 또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온전한 제사장과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12절).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28절). 다른 제사장들처럼 계속해서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로 들어가시는데 제약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참 것의 그림자인 이 땅의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24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있어 우리의 문제는 ‘죄’였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제는 ’죄와 상관 없는 자’들이 되었습니다(28절).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단번에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26절). 그래서, 믿는 자에게 죄는 더 이상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이 세상에 살면서 죄의 무서운 영향력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이보다 확실한 위로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영원히 안전한 속죄를 이루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매일 예수님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기쁨을 온전히 체험하게 될, 주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