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루어 가는 구원

최종혁 · 2024.09.13 · 빌립보서 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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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신자의 ‘구원’을 말할 때는 그 안에 세 가지 시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죄인이 믿고 구원 받을 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하시는 칭의’는 구원의 과거 시제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신자의 경우 칭의의 측면에서 구원을 말할 때는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이고 다시 반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처럼 구원을 ’이루라’고 명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신자의 거룩한 삶을 의미하는 성화로서 구원의 현재 시제에 해당됩니다. 이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는 것이 성화이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은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됩니다. 칭의와 다르게 성화는 지속성과 반복성이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구원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경우 성경은 하나님께서 구원 ’하실 것’이라는 미래형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최종적으로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는 신도들이 지금은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반드시 이루어질 미래입니다. 이 역시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신도는 칭의에서 영화까지 성화의 과정을 거쳐 도달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 구원의 과정에서 일부라도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으로 남아있는 부분이 있다면 구원의 완성은 보장될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궁극적으로 구원은 하나님께 달린 일이지 우리에게 달린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야할 일을 주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이루십니다. 그 과정에서의 모든 것을 관리 감독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일하게 하십니다. 구원에 있어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특히 성화에 있어 그런 면이 강합니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렇게 하고 싶은 ‘소원’을 주시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거룩함을 이루시는 방법입니다. 구원 받은 모든 성도가 칭의와 영화의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성화의 기쁨도 누립니다. 칭의와 영화를 경험하지 않는 성도가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성화를 경험하지 않는 성도도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성화는 ’우리‘ 측면이 강하게 느껴져서 우리가 잘하면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성화에 대해서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때로는 그 생각이 지나쳐서 불가능한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실제로 성화의 과정이 어려운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만 집중하다보면 성화를 오해하게 됩니다. 성화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생각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실패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소원을 따라 행하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 성도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두렵고 떨림으로”)를 동기와 결부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과와 결부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진정한 회개에 이르지 못합니다. 결국 “내가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선한 일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순종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성화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 성화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행해야 합니다. 날마다 기도로 지혜와 힘을 구하며 우리에게 주신 성화의 명령에 우리가 더욱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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