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그 구원의 단 하나에 대해서도 자신의 공로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구원을 은혜가 아닌 보수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도, 심지어 아브라함 때에도 (또한 그 전에도 마찬가지로)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입니다. 죄인은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로마서에서 봤던 것처럼 죄인이 하는 일은 한걸음씩 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행위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우리 의를 세워서 힘껏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것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시고 고뇌하시며 아버지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최후의 최후까지 예수님은 십자가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자기 죄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그들의 죄를 대신 감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 2: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 2: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나의 도덕적 무력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만큼 가치를 잃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맞습니다. 바울이 그의 약함을 자랑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의 무엇이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루신 일입니다.
그래서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만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합니다. 나의 입술과 삶으로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