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내게도 필요한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

최종혁 · 2026.07.22 · 요나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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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혹은 예언자의 주된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 제사장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주된 방향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제사장은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선지자는 하나님 편에서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역할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앞선 호세아나 에스겔, 예레미야의 경우처럼 그것을 위해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했던 사람들이 선지자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요나는 좀 특별(혹은, 이상)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를 책망하라고 하셨을 때(욘 1:2), 오히려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가려고 배를 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나는 큰 바람과 큰 물고기를 통해 니느웨로 가게 하셔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때도 요나는 마지못해 그렇게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니느웨는 사흘동안 걸을 만큼 큰 성읍이었지만, 요나는 하루 동안 다니면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만 선포했을 뿐이었습니다(욘 3:3-4). 마치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행동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왕부터 시작해서 짐승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욘 3:5-9). 회개의 부흥이 니느웨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도대체 요나가 왜 그랬을까 싶은데, 그 이유가 오늘 본문의 1-2절에서 언급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노하기를 더디하심과 인애가 그들에게는 나타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럼, 요나는 왜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를 원했을까요?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괴롭했던 앗수르의 수도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신을 보내시는 것은 그들로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셔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요나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기를 원했습니다.

얼마나 그랬던지, 요나는 그 후에도 정말 니느웨가 멸망하지 않는지 성읍 동쪽에 초막을 짓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5절). 하나님은 이 상황을 통해 요나를 교훈하셨습니다. 뜨거운 태양을 가릴 수 있는 박넝쿨을 주셨다가, 다음날 벌레가 다 갉아먹게 하시고는 뜨거운 동풍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상황에 요나가 크게 분노할 때 하나님은 물으셨습니다.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9절) 요나는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다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이 박넝쿨 하나를 네가 그렇게 아끼는게 당연하다면, 내가 이 많은 사람들을 아끼는 것이 어떻게 당연하지 않겠느냐.”

우리도 요나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나를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는 남을 위한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작은 잘못에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야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영혼이든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러니 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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