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기쁨에 대한 말씀입니다. 선지서는 반복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예언합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결국은 이스라엘을 온전히 회복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들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성취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대적을 제거하실 것입니다(15절). 그래서 이스라엘은 더 이상은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다시 수치를 당하지 않고 칭찬과 명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19-20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이 구원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맞이했었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었습니다. 그들이 참된 구원자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회복의 날에 예수님은 실제 이스라엘의 대적을 제거하시고 그들의 왕으로서 그들을 다스리고 그들을 높이실 것입니다. 메시야로 인한 참된 기쁨이 그들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만 그렇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회복된 이스라엘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실 것입니다(17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그들을 징계하시지만, 그 자체를 기뻐하지는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징계의 목적도 언제나 회복에 있지 단순히 그들이 잘못했으니까 벌을 주는게 목적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회복을 기뻐하시고 구원을 기뻐하십니다.
이는 비단 이스라엘의 구원 뿐 아니라, 모든 구원에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은 받는 자에게 당연히 기쁨이 되지만, 그 기쁨을 베푸시는 하나님께도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이런 기쁨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쁨,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기쁨, 잃은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기쁨과 비교할 수 없이 하나님은 죄인 한 사람을 찾으실 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바라볼 때 회복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때 기쁨의 노래가 듀엣으로 불려집니다. 우리의 노래와 하나님의 노래가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늘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