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모든 일을 첫사랑으로 하는 교회

최종혁 · 2024.12.19 · 요한계시록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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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교회는 밖에서 볼 때 분명 좋은 교회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수고하고 인내했습니다. 특히 진리를 지키는데 힘썼습니다. 악한 자를 그들 가운데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면서 교회를 거짓으로 물들이려던 자들을 시험하여 드러냈습니다.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이들도 미워했습니다. 고난이 있었지만 주님을 위해 참고 견뎠고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장로들을 만나면 어떻게 그렇게 교회를 바르게 인도했는지 묻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주님도 에베소 교회의 이런 면을 칭찬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아셨던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도 아셨던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겉으로 볼 때는 아무 문제 없어 보였던 이 교회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모든 좋은 일들을 사랑을 동기로 하지 않았고 주님은 그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이런 면도 좀 신경써라 정도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강하게 책망하셨고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서 촛대를 옮길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든 주님을 위한 일만하면 교회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해야합니다.

사랑과 그에 따른 행위의 관계는 참 묘한 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시면서(4절)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명령하셨습니다(5절). 문맥 상 5절에서 “처음 사랑”을 가지라고 할 것 같은데 “처음 행위”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마치 행위가 사랑인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행위가 강조되었었습니다. 하지만 ‘행위=사랑’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행위가 올바른 교회를 사랑이 없다고 책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그에 따른 행위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사랑은 행위로 반드시 드러나야 합니다. 하지만 행위 자체가 사랑은 아닙니다. 어떤 관계든 처음 사랑을 할 때는 이 말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고 어렵지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행위를 사랑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데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그런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보이는 모든 행위가 사랑의 행위가 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궁금한 것은 ’어떻게’입니다. 어떻게 처음 사랑을 처음 행위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나 ’어떻게‘ 보다 ’누구’와 ‘왜’에 집중하는 것일 것입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에 시간과 에너지를 전부 쏟고 있다면, 누구를 위해 왜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관계의 즐거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쨌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사랑 없이 일을 한 지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후로도 그들은 열심히 일했겠지만 실제로는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이런 책망을 받는 교회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여 모든 일을 하는, 그런 행위가 있는 교회이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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