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메섹으로 출발했던 바울과 다메섹에 도착한 바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출발했던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가득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옥에 넘기면서 죄책감이 아니라 뿌듯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 곁에 서서 찬성하고 사람들의 옷을 지켰던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메섹에 도착한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서 자신이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모두 해로 여겼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빌 3:7-9).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다메섹에 도착한 바울을 그냥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교제한 사람들은 바울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의가 가득했던 바울이 이제는 예수님의 의로 옷 입고 있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의로웠던 그가 이제는 죄인 중에 괴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아무리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해도, 그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 경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경험은 그저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무용담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그런 무용담이 될 수 없습니다. 온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삶의 주인으로 영접했는데, 삶은 그대로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으로 출발했던 바울과 다메섹에 도착한 바울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은 당연합니다. 그 길에서 그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기 전의 나와 구원 받은 후의 나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나도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자랑했던 것을 이제는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나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남들은 경험하지 못한 어떤 특별한 경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항상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 삶은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구원 받은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날마다 더 은혜에 기대어 살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이 그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