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정말 열심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열심도 순수했습니다. 다만 그는 영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영적인 어리석음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는 나름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잡아 옥에 가두었지만, 실상 그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이 사실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의 눈을 잠시 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5절) 이 말씀에 바울의 마음이 어떻게 무너지고 그가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한 묘사는 없습니다. 다만 그 육적인 어둠 속에서 그의 영적인 눈은 밝게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바울은 무엇이 진리인지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핍박했던 교회였습니다. 바울의 그동안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바울을 그냥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른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염려할만한 일이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아나니아와 바나바를 통해 바울을 도우셨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교회 안에 들어와 교제하며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받아들인 교회는 그의 복음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바울은 이방인을 위해 세워진 그릇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바울을 알고 있는 우리는 사실 바울이 회심한 직후 성도들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얼마나 위대한 그리스도의 사도로 쓰임을 받았는지 알고 있지만, 당시의 성도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예수님께서 아나니아를 바울에게 보내실 때 아나니아의 반응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니느웨로 가서 예언하라는 말씀을 들었던 요나보다 더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나니아는 순종하여 바울에게로 갔습니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바나바가 보였던 모습도 주목할만 합니다. 그는 오해 받고 있는 바울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습니다. 바울에 대해 어떤 편견도 가지지 않고 그를 받아주고 또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그를 받아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 이름처럼 바나바는 바울을 위로하고 세워주었던 것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 선입견이나 편견은 정말 무섭습니다. 만들어지기는 쉽지만 바꾸기는 정말 어렵고, 또한 어떤 사람에 대해서 선입견을 만드는 순간 그 사람을 쉽게 단정하고 그것이 곧 차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선입견들이 모여 당 짓는 일도 쉽게 생겨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시각을 버리고 주님의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려고 하기보다, 먼저는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세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에게 아나니아가 되어주고 바나바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복음의 동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선입견이나 오해없이 성도를 바라보고 바르게 세워줄 수 있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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